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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1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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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흘렀지만, 강정마을에 봄은 오지 않았다 / 박정주  
10년이 흘렀지만, 강정마을에 봄은 오지 않았다

박정주 평화교육가

구럼비와 나

나는 제주도 남단에 위치한 강정마을에 산다. 이 마을에는 '구럼비'라는 화산 용암이 바다에서 굳은 넓은 바위가 있다. 구럼비는 제주남방큰돌고래, 새뱅이, 맹꽁이, 붉은발말똥게 같이 멸종위기종 생명체들의 서식처였다. 500년 넘게 지속되어 온 강정마을 주민들에게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용천수가 솟는 치유 장소이자, 부드럽고 따뜻한 표면에 누워 바위가 머금은 볕의 온기에 몸을 데우곤 했던 보살핌 장소이기도 했다.

2010년 외국에 있을 때였다. 구럼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800년 된 나무 '루나'를 벌목회사로부터 지키기 위해 3년 넘게 그 나무 위에서 살았던 환경운동가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이 떠올랐다. 줄리아처럼 구럼비 위에서 살며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정확히 4년 뒤, 나는 강정마을로 이주했다. 그때는 이미 굴착기와 폭발물로 구럼비는 산산조각이 나고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 아래 매장돼 있었다. 그리고 그 위 머지않은 날에 미군기지로 사용될 제주해군기지가 세워졌다.

오늘은 해군기지 반대 싸움이 시작된 지 3877일째 되는 날이다. 구럼비 바위가 발파되기 전에도 그 뒤에도 해군기지공사를 막기 위해 땅바닥에 주저앉아 서로를 엮어야 했던 사람들, 불법의 'ㅂ'자도 모르던 선량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던 사람들. 이들은 한순간에 종북좌파, 빨갱이, 불법을 행한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물어야 했다. 강정에 살며 우리가 겪어야 했던 그 시간들은 가슴 한 켠 멍든 채로 남아있다. 여전히 그 기억들은 살아있는 박제물로 존재하는 듯하다. 10년이 흘렀지만, 강정마을에는 여전히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아직도 진실은 구럼비와 함께 억류돼 있고, 해군기지는 보란 듯 불법으로 주둔하고 있으며, 폭력에 가담한 행위자들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무심하기만 한 시간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간다. 그리고 우리 역시 계속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진오



우리들의 날들은 아름다워

강정은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 물 많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토양도 좋고 햇빛도 많아 과거에는 쌀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대부분 과실 농사에 종사해 온통 과수나무밭이다. 감귤, 천혜양, 한라봉 농가가 많다 보니 하루가 굉장히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한편, 해군기지반대를 위한 일상의 저항 행동도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오전 7시 해군기지 정문에서 '생명평화백배기도문'을 틀어두고 백배를 한다. 출근하는 해군들이 절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간다. 차량 출입로에도 한 친구가 피켓을 들고 선다. 피켓에는 '제주해군기지 때문에, 연행 700명, 기소 587건, 구속 60명, 벌금 4억 원, 구상금(손해배상) 34억 5000만 원. 해군! 당신의 월급은 우리의 눈물 값!' 이라고 쓰여 있다. 헌병에게 출입증을 내보이는 해군기지 종사자들은 심기가 불편한지 시종일관 시선을 피한다. 오전 7시 45분경 백배가 끝난다. 해군들이 주로 출근하는 오전 8시 30분까지 피켓 시위도 계속된다.

오전 9시 도로 가 거리 미사 천막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오전 11시 매일 미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그 옆 트럭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며 아침 요기를 하는 사람들, 오가며 들리는 사람들까지 마치 마을 사랑방 같다. 바로 옆 은어들이 사는 1급수 강정천에서 불어오는 맑은 공기에 함께 실린 커피 향이 얼마나 좋은지.

오전 11시 미사가 시작된다. 전국에서, 제주에서 그리고 마을에 온 신자들과 방문자들이 함께 한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라는 노래가 들리면, 지금 시간이 정오라는 것을 강정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제도,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또 내일도 정오가 되면, 이 노래가 들려올 것이다.

정오가 될 무렵, 미사를 끝내고 서둘러 정리를 한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해군기지로 내려가는 큰 로터리로 향한다. 거기에서 2013년부터 시작되어 온 '인간띠잇기 문화제'가 날마다 열린다. 강정에 온 누구나 자유롭게 연대를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다. 노래와 춤이 손을 잡고 선 우리를 엮어 준다. 어디에서 왔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내가 누구인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국가 폭력과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무수한 존재들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다. 비바람이 불어치는 날에도, 혹한의 추위와 무더위에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지키며 동시에 나 자신도 함께하는 동료들도 지켜왔다.

점심시간, 아침 내내 해군기지를 따라 곳곳에서 일어난 저항의 행동들이 하늘 한가운데서 잠시 멈춰선 해를 따라 쉬는 시간을 갖는다.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저벅저벅 걸음을 '할망물 식당'으로 향한다. 구럼비 위에서 시작된 공동체 식당. 마을 삼촌이 구럼비 위에서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 하신다. 반나절 동안 기지 앞에서 거대한 체제의 불합리한 권력에 짓눌려 있다가,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국 한 그릇으로 그 힘겨움을 달랜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먹기만 해도 두런두런 둘러앉아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루 치 설움을 위한 회복의 시간이다. 올레길을 지나다 만나는 할망물 식당은 겉에서 보기엔 누추한 천막에 불과하지만, 우리들에겐 그 이름처럼, 치유를 가져다주는 구럼비 바위에 솟아오르던 용천수가 고이던 곳, 할망물의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기지와 이웃하여 산다는 것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에 돌려놓고 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마당에 넌다. 주인 할머니 집과 딱 열 걸음 거리에 살고 있는데 안채인 할머니 집과 바깥채인 우리 집 사이가 마당이다. 제주로 이주해 살며 소소한 기쁨이 되는 일 가운데 하나가 햇빛과 바람이 모이는 자리에 빨래를 너는 일이다. 금세 마른 옷들을 만지작 거리다 보면 왠지 좋은 볕과 바람으로 건강히 자라나는 식물처럼, 옷도 튼튼해지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마당에서 빨래를 너는데 해군기지에서 군악대 연주가 들려왔다. 바람의 방향이 이렇게 잡힌 걸까? 낮 시간에 소리가 마을 안쪽 깊은 곳 우리 집까지 타고 흘러온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군대 음악 특유의 정확하고 짧은 박자의 딱딱 떨어지는 악기 연주가 제법 가까이서 들리는 듯하다. 누군가에겐 경쾌한 멜로디일지 모르지만, 마당 안까지 흘러들어오는 이 노랫소리에 안전한 주거환경에 살 권리마저 침해당한 것 같아 불쾌하다.

그러자 봄, 가을에 캐나다와 미국 군함이 들어올 때마다 꽃을 든 어린아이들까지 대동해 군악대 연주와 함께 성대한 환영식을 해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남의 나라에 합동훈련 한답시고 찾아와 온갖 쓰레기와 오물만 버리고, 중문관광단지와 서귀포 시내에 관광을 즐기다 떠나는 외국 군대들. 그들 뒷바라지하려고 저렇게 열심히 공연 연습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 달 전에는 미 핵잠수함이 예고도 없이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말로만 듣던 핵잠수함이 들어온 뒤 수십 대의 오물처리, 쓰레기 차량들이 줄지어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핵폐기물까지 버리고 가면 어쩌나 하는 극도의 공포감마저 들었다.

기지가 생긴 뒤 찾아온 변화들은 구럼비 파괴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스멀스멀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제는 마을 안길에 군복을 입은 해군들이 별다른 위축감 없이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보는 일이 빈번해졌다. 차량번호판에 '해'라고 쓰인 해군 차량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점심시간이면 큰 도로변 식당에 서 있는 한 무리의 해군들이며,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편의점에서 버젓이 술을 마시고 쓰레기도 치우지 않고 가는 사복 입은 해군들까지. 이들의 출현이 잦아지고, 뻔뻔해질수록 기존에 살던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지 넋 놓고 있게 된다. 내가 나고 자라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내쉬고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군사문화가 모든 일상을 침투해서 존재한 적은 없었다.

이런 변화는 예상보다 훨씬 큰 충격이고 자극이 되고 있다. 아직은…. 아직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군인이 가해자가 되고 민간인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한국이든 오키나와든 세계 어딘가 군 기지가 있는 곳에서 일어났던, 알려진 혹은 이름이 없이 묻힌 끔찍한 사건들처럼 말이다. 이곳 주민들은 무뎌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무기력해진 것일까. 기지와 이웃하여 산다는 것은, 단 한 순간도 폭력의 상황을 상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두려움과 동반하여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한진오



먼저 온 미래를 사는 사람들

나는 꿈꾸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꿈꾸게 되는 것을 즐긴다. 강정에 살며 꿈꾸지 않은 순간은 거의 없다. '해군기지사업계획 백지화', '해군기지 폐쇄', '해군기지를 평화대학으로'를 외치는 우리들에게 사람들은 너무 이상에 빠져있고 말한다. 심지어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평화가 너무나 절실한 사람들에게 평화를 외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생존을 위해 필수이다.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희망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당장에 살아내야만 하는 정언명령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주류세계의 무관심과 반대편 입장에 선 사람들로부터 박대와 조롱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꿈꾸는 일에 더 힘써 나가게 된다. 미래에 일어나길 바라는 일에 대해 상상하며 소원한다. 이야기하며 나눈다. 미래를 그저 기다리고 있기엔, 우리는 절박하고 다급하다. 그래서 미래를 먼저 살아내기로 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을 막기 위해 군대와 무기를 포기하고, 대화와 우정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한다. 민주적 절차를 모두 무시한 채 국가 안보라는 대의명분으로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고 들어 온 해군기지를 폐쇄하고 평화대학을 세우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하루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게 될 어떤 미래의 날 가운데 한 날일 것이다. 그들의 미래가 보다 평화로울 수 있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평화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채워간다. 미래는 누구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를 미래처럼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설령 우리에게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세계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먼저 온 미래를 오늘도 살아간다. 바로 여기 제주도 남단 작은 마을 강정에서.


* 프레시안, 2018.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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