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마당 사금파리 :::

이름: 연구소
2020/1/14(화)
조회: 1
빵 하나 두유 한병에…할머니는 180㎏ 리어카를 끌었다 / 한겨레  
빵 하나 두유 한병에…할머니는 180㎏ 리어카를 끌었다

[2020 노동자의 밥상] ⑤폐지 줍는 노인

고물수레 한가득 채워 번 5천원
“여기는 부촌이라 뭐가 많이 나와”
논현동 강남대로를 쉬지 않고 돌아
도로옆 아슬아슬…다리 치인 적도
서너차례 날라 하루벌이 1만5천원

공짜 빵 먹는 날은 ‘운수 좋은 날’
슈퍼에서 준 날짜 다 된 식품이 한끼
제대로 된 점심식사는 해본 적 없어
교회서 운영하는 공짜식당 가봤지만
“밥 다 떨어졌는데…” 결국 발길 돌려



박영분씨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골목길에서 폐지로 만든 의자에 앉아 슈퍼에서 얻은 카스텔라 빵과 두유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끼니때가 되자 서울 강남의 빌딩에서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온다. 점심 식당을 찾는 발길이 분주하다. 인적 드문 이면도로 한편에서 박영분(가명·78)도 허기를 달랠 채비를 시작한다. 손수레 위 겹겹이 쌓은 고물 속에서 우선 ‘적당한 물건’을 찾는다. 단단한 고구마 상자다. 상자를 접어 양지바른 자리에 놓고 박영분은 150㎝ 남짓 작은 몸을 옹그려 앉았다. 두겹의 목장갑을 벗자 땀으로 흥건해진 손에서 김이 솟았다. 슈퍼마켓 주인이 쥐여준 검은 비닐봉지에서 그가 점심거리를 꺼냈다. 카스텔라 하나, 두유 한병. 이 빵을 먹고, 박영분은 180㎏ 손수레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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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 뒷골목, 180㎏ 손수레 끄는 노인

경기 시흥에 사는 박영분은 매일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논현동으로 ‘출근’한다. 아침 7시에 시흥에서 출발해 9시께 논현동 고물상에 도착하면 일과가 시작된다. 논현동에선 돈이 되는 고물이 많이 나온다. “우리 동네는 할머니들이 하루 꼬박 주워도 4천원 번다고 하더라고. 여기는 부촌이니까 뭐가 많이 나오거든.” 지난 12월23일 아침 논현동 ㅇ자원 앞에서 만난 박영분이 말했다.

길을 나서면 박영분은 쉬는 법이 없다. 가파른 언덕길에선 작은 손수레를 끌고 오가며 폐지를 담는다. 캔이나 병처럼 작은 고물은 25㎏짜리 큰 포대에 담아 싣는다. 고물 높이가 쓰러질 정도로 높아지면 손수레에 묶인 노끈으로 폐지들을 칭칭 동여맨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은 들어가기 힘든 비좁은 골목 고샅고샅 박영분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다. 먹고 남은 맥주캔과 배달 음식 쓰레기, 택배 상자를 닥치는 대로 실으니, 박영분이 지나간 자리는 멀끔한 강남의 얼굴을 되찾았다.

이렇게 그러모은 손수레를 하루 서너차례 비운다. 고물은 1㎏당 40원. 강남대로 주변을 2시간 돌아 손수레를 가득 채우면 120㎏쯤 된다. 손수레 무게 60㎏까지 포함해 180㎏이 되면 고물상 주인은 5천원을 건넨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2500원, 최저시급의 4분의 1 수준이다. 9시에 도착해 오후 6시에 퇴근하기까지, 박영분은 1만5천원 안팎을 번다. 이날은 전날 비가 와서 폐지가 물을 머금은 탓에 무게가 평소보다 더 나왔다. “원래 이 정도면 3천원인데, 기자들이 와서 그런가? 많이 쳐줬네.” 5천원을 손에 쥔 박영분이 횡재라도 한 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박영분씨가 고물상에 폐지 120㎏을 건네고 받은 돈 5천원. 김명진 기자


하루 1만5천원 돈을 벌기 위한 박영분의 여정은 위험천만하다. ‘서울○○ 나○○○○’. 반쯤 깨진 초록색 번호판을 단 그의 손수레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고급 수입차들의 위협을 받는다. “빵빵.” 비좁은 도로를 막고 선 박영분의 손수레가 움찔거리며 비켜서는 동안, 늘어선 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재촉했다. 박영분이 어떻게든 손수레를 도로 귀퉁이로 끌고 가려는 순간, 운전자들은 손수레를 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제치고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박영분은 조그만 몸을 바짝 웅크려 사고를 피했다. 미처 사고를 피하지 못한 3년 전 어느 날 박영분은 차에 다리를 치여 1년 넘게 일어서지 못했다.

그래도 박영분은 고물 줍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기초연금 20만원이면 자신의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지만, 아들 부부와 손주 4명의 반찬값이라도 벌어야 해서다. 몸 쓰는 일을 하는 아들은 짐을 나르다 허리가 부러져 한동안 몸져누웠다. 몽골인 며느리가 식당 일을 하지만 대가족 생활비론 빠듯하다. 50대까지만 해도 잠원동의 대형 빌딩을 청소했던 박영분은 60대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폐지 줍는 일을 시작했다. 늙은 그를 받아주는 곳은 낡고 초라한 것들이 모이는 고물상뿐이었다.

“이렇게 벌어도 난 10원도 못 써. 일주일 일하면 10만원 모이는데 7명 먹으려면 부족하니까….” 박영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산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복’인 긴소매 티셔츠 두장과 자주색 목도리, 국방 무늬의 방한바지와 요란한 무늬의 토시, 검은색 나이키 운동화와 수면양말, 주류업체에서 만든 주황색 앞치마까지…. 박영분이 걸친 옷가지는 모두 폐지를 줍다 얻은 것들이다. 박영분은 그것들을 자랑스레 내보였다.



박영분씨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골목길에서 폐지를 잔뜩 실은 손수레를 끌고 있다. 김명진 기자



박영분씨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골목길에서 폐지를 잔뜩 실은 손수레를 끌고 있다. 김명진 기자



박영분씨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고물상에서 수집한 폐지의 무게를 확인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박영분씨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폐지를 줍고 있는데 대형 레미콘 차가 아슬아슬하게 옆을 지나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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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청소에서 폐지 줍는 일로

하루 세차례씩 120㎏, 모두 360㎏의 고물을 모으려면 밥 먹을 틈은 없다. 아니, 먹으려야 돈도 없다. 강남대로에서 밥 한끼 먹으려면 120㎏을 두번은 실어야 한다. 대신 박영분은 떡이나 고구마, 밥과 김치 도시락 같은 것을 집에서 챙겨 나온다. 그나마도 챙길 것이 없는 날엔 “밥에 우유를 후루룩 말아서 먹는다”고 했다. “일하다가 정 배고프면 건빵 한봉지 사서 먹어. 난 그거면 돼.” 박영분이 배시시 웃었다. 박영분의 삶은 늘 그러했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던 때만 해도 밥은 곧잘 먹었다. 초등학교라도 잘 배워서 졸업했다면 평생 끼니 걱정 없이 살았을까. 박영분은 때때로 생각했다. 부모는 “학교가 멀다”며 박영분의 발목을 잡았다. ‘똑똑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서 넉넉한 시절이 열릴 것도 같았다. 남편은 박영분이 34살을 맞았을 때 건강이 안 좋아 세상을 먼저 떠났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올라온 뒤 박영분은 ‘점심밥’이란 걸 제때 챙겨 먹어본 기억이 없다. 식당에서 일할 땐 오후 3시가 넘어서야 허겁지겁 밥을 욱여넣었고, 빌딩 청소를 할 땐 도시락으로 틈날 때 허기를 채웠다.

그러니 이날처럼 ‘제대로 된 한끼’를 공짜로 먹은 날은 박영분에겐 ‘운수 좋은 날’이다. 논현동 뒷골목에서 20년 넘게 고물을 줍다 보니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150㎝도 안 되는 작은 키와 40㎏을 넘길 듯 말 듯 왜소한 몸, 이 동네에서 폐지 줍는 이들 가운데 유일한 ‘할머니’라는 점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박영분이 지나갈 때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남은 음식을 내어준다. 박영분은 그중에서도 달달한 카스텔라를 좋아한다.

슈퍼에서 얻은 카스텔라는 뻑뻑해 보였지만, 이날 낮 12시30분께 길모퉁이에 상자를 놓고 앉은 박영분은 허겁지겁 빵을 삼켰다. 손이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었다. 아침 6시 집에서 첫 끼를 먹은 뒤 출근해 3시간 넘게 쉬지 않고 손수레를 끌었으니 꿀맛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노동량을 고려하면 빵과 우유가 ‘제대로 된 한끼’일 수가 없어 보였다.



박영분씨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슈퍼에서 받은 카스텔라 빵과 두유를 내어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시각, 박영분은 걸음을 재촉해 인근 식당을 찾았다. 최근 개척교회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공짜 점심을 주겠다고 알려왔다. “교회 분들이 인정이 많아요.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먹을 걸 주고 그러더라고.” 마음 같아선 낮 12시에 맞춰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싶지만, 손님이 빠진 오후 2시 이후에 찾기로 한 조건 탓에 박영분은 배가 고파도 2시까지 기다린다.

박영분이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간 식당에선 종업원들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그가 먹을 1인분의 점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죠. 밥이랑 국 다 떨어지고 없는데….” 종업원이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일어났다. 박영분은 그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뒷걸음질 쳐 식당 밖으로 나왔다.

성탄을 앞둔 거리엔 축제처럼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박영분은 벌컥벌컥 맹물을 들이켠 뒤 다시 손수레를 손에 쥐었다. 경적을 울리는 차들을 피해, 작은 골목으로 손수레가 느릿느릿 사라졌다. 왜소한 박영분도 점이 되어 사라져 갔다.

권지담 기자

* 한겨레, 20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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