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연구소
2019/9/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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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인가 환경운동가인가? 잭 존슨 / 한겨레  
가수인가 환경운동가인가? 잭 존슨

이재익 / SBS 피디


도시의 삶은 편리하다. 편리하다는 말은 얼핏 가치중립적으로 들리지만, 많은 경우 그 단어는 무책임하다는 그림자를 숨기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잠깐 떠올려 봐도 얼마나 편리하게, 동시에 무책임하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용변을 볼 때 물만 내리지 그 뒤의 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대체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로 보면 매일 얼마나 많은 ‘똥오줌’이 처리되는 걸까? 쓰레기는 또 어떻고?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놓은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에어컨을 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화석연료를 태우는지는 모른다. 식당에서 먹고 남긴 음식에 대해서도 처리를 고민하지 않고, 내가 운전하는 차가 뿜어내는 매연에 대해서도 미세먼지가 많은 날 외에는 무심하다. 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편하게, 무책임하게 살고 있다.

나의 편리함이 자연 어머니의 고통임을 자각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문명을 거부하면서 일부러 불편하게 살지는 않는다. 나 역시 앞으로도 편리하고 무책임하게 살아갈 것이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 ‘잭 존슨’은 이러한 자각을 행동으로 옮긴, 그러면서도 문명의 최첨단인 미국 팝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산골에 귀농해서 살면서 음악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 무대에 오르는 아저씨 정도?



나하고 동갑인 이 ‘미국 아재’의 이력이 몹시 특이하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는 서핑 선수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촉망받는 서퍼로 자랐다. 10대의 나이에 프로선수들과 대회에서 겨룰 정도로 유망주였으나 17살이 되던 해에 큰 사고를 당한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 150 바늘이나 꿰매는 수술을 받고 서퍼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예전처럼 마음껏 파도를 가를 수 없었던 그는 음악과 영화를 통해 위로받았고,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노래를 만들며 20대를 보냈다. 그러다가 기적이 일어났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기계음과 현란한 랩이 세계 음악시장을 점령한 21세기에, 그 흔한 전자기타 소리조차 하나 없이 순도 백퍼센트의 어쿠스틱 악기들로만 만든 음악으로 그래미상을 받은 것이다. 인생 2장이 화려하게 펼쳐지나 싶었지만 잭 존슨은 화려한 삶을 원하지 않았다. 더 큰 성공을 원하지도 않았다. 열광하는 팬들이 머쓱해질 만큼 그는 담담하게 예전의 일상을 지켰다. 한가로운 바닷가에서 취미로 서핑하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일. 그걸 20년 동안 해오고 있다. 오직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베이스로 소박하게 빚어내는 그의 음악처럼 소박하기 짝이 없는 팝스타의 삶이다.

삶에서는 소박하지만 환경을 지키는 일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음악을 만들 때는 모든 녹음 과정을 태양열 전력으로만 진행하고 음반 재킷도 친환경 잉크 및 재생지로 만든다니 말 다 했지. 공연할 때도 그렇다. 모든 소모품은 재활용 소재로 된 것들만 사용하며 음식은 항상 유기농으로, 심지어 투어버스마저도 재활용 가능한 기름으로 움직이는 버스를 사용한단다. 그렇게 번 돈마저 전액을 환경재단에 기부한다고 하니 자연 어머니에게는 가장 효심 지극한 아들이 아닐까.

올 초였나? 미세먼지가 심했을 때 발표된 대책 중에서 학교에 대량으로 공기청정기를 들여놓겠다는 대책이 있었다. 미세먼지의 대부분이 공기청정기 같은 공산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날이 더워서 자꾸 늘어나는 에어컨 때문에 지구가 더 뜨거워지는 악순환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편리를 위해 자연을 불편하게 하고, 우리의 건강을 위해 자연을 아프게 하고, 그 결과로 우리는 뿌연 하늘과 플라스틱 섬을 얻었다. 플라스틱 섬이 뭐냐고?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바다를 떠돌다가 태평양에 한데 모였는데 그 넓이가 일본도 아니고 인도대륙만 하다고 한다. 태초의 생명을 잉태시킨 바다에 우리 인간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이렇게 격한 감정으로 글을 쓰면서도 나는 자가용을 타고 출근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 차는 전기차를 타보려고 한다. 그 전에 툭하면 차를 바꾸던 자신을 반성하고 지금 타는 차를 최대한 오래 타볼 생각이다. 작년부터 매일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빨대와 플라스틱 컵을 쓰지 않고, 비닐봉지도 거의 쓰지 않는다. 배달음식이나 택배는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엔간하면 직접 가서 먹고 가서 사온다. 잭 존슨만큼은 아니어도 잭 존슨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만큼의 자연보호를 실천해보려고 한다.

독자님들도 알아서들 하실 테지만, 좋은 노래를 들으면 자발적으로 불편을 감수하고 자연을 지키려는 마음이 더욱 뿜뿜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 노래 한 곡을 추천해드린다. 환경보호 이야기를 실컷 해놓고 러브송 추천이요. ‘아이 갓 유’. 잭 존슨의 노래가 다 그렇듯 잔잔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나에겐 니가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는, 이미 수백 수천 곡의 노래에 등장하는 진부한 가사인데도 그의 목소리로 들으니 처음 듣는 말처럼 눈물이 날 것 같다. 그치. 원래 난 너만 있으면 충분했어.

초저예산으로, 쓰레기 한 점 나올 일 없이 찍은 자연주의 뮤직비디오도 감상해보시길.

* 한겨레, 20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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