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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연구소
2019/7/15(월)
조회: 1
학대받는 바다, 플라스틱은 국경이 없다 / 한겨레  
학대받는 바다, 플라스틱은 국경이 없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 『동물 미술관』 저자

14. 피터 멀케이, 바다, 플라스틱



최초의 생명태가 잉태되었던 바다는 이제 플라스틱 폐기물에 노출돼 고통과 죽음의 장소로 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1898년 출간된 <바다>에서 쥘 미슐레(Jules Michelet)는 대륙의 윤곽을 짓는 것은 바다이고, 따라서 지리학은 바다에서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다고 쓰고 있다. 백 년도 전에 그는 지구의 지형을 보는 시각을 육지 중심주의에서 해양 중심주의로 바꾸자고 주문한 것이다. 미슐레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도 쓰고 있다.

“세상의 큰 운명인 굶주림은 육지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바다는 거대한 지구의 암컷이다. 영원한 수태로 새끼를 낳는다. 절대로 끝이란 없다.”

그렇다. 지구가 생명으로 가득 찬 특이한 행성이라면, 지구의 그런 성격은 바다가 가장 잘 알려준다. 바다에 만물의 생성 원리가 있다고 보았던 호메로스가 옳았다. 최초의 생명체가 잉태되었고 생명의 진화사가 수십억 년간 진행되었던 곳, 우리 인간이 온 곳, 우리를 늘 살려줄 곳, 지구의 중심인 바다.

이러한 바다를 우리는 그간 세계의 주변부로 취급하며 너무나도 학대해왔고, 그 결과 바다로부터 자발적으로 소외됐다. 인간중심적, 생산제일주의적 사고방식의 노예가 되어, 바다를 일개 (식량, 에너지) 자원의 매장소, 폐기물 투척 장소로 취급한 지 오래인 것이다.

그러나 물극즉반(物極卽反, 사물이 극에 도달하면 원위치로 되돌아간다)이라 했던가. 플라스틱 폐기물에 노출된 바다거북, 물범, 고래들의 고통과 죽음이, 반(反)의 현상이 되어 우리가 어떤 극점에 이르렀음을 웅변하고 있다.



2015년 그린피스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거리에 설치한 ‘플라스틱 물고기’ 형상물.


얼마나 극단적인 걸까? 바다를 떠도는 플라스틱의 총량은 약 1억5천만 톤이고, 여기에 매년 800만 톤이 추가되고 있다고 추정된다.(‘오션 컨서번시 Ocean Conservancy’ 추정) 추가분의 양을 환산해보면 “폐기물 트럭 1대 분량의 플라스틱”이 1분마다 쉼 없이 투여되는 꼴이다.

해양 플라스틱이 만든 지옥을 알려주는 또 다른 지표는 영향 받는 동물의 숫자다. 한 연구에 따르면, 태평양 6000미터 이상 깊은 심해에 있는 6개 해구를 조사한 결과, 이곳 동물(90 마리가 표본)의 72%에서 미세플라스틱과 합성 섬유가 발견되었다.



2017년 영국 런던의 리사이클링 회사 바이워터스가 제작한 ‘플라스틱 고래’ 조각상.


2015년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그린피스가 800여개의 플라스틱 백(비닐봉지)을 엮어 비엔나의 한 거리에 설치한 ‘플라스틱 물고기’ 형상물은 그 어떤 설치예술작품보다 큰 울림을 남겼다. 이 울림, 이 파장은 계속되었다. 2017년엔 런던의 한 리사이클링 회사(바이워터스)가 10미터 길이의 ‘플라스틱 고래’ 조각상을 제작했다. 이것의 무게는 1초마다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총량과 동일했는데, 무려 250kg이었다. 이 조각상은 2017년 하반기 유럽을 순회했다.

세계의 움직임에 비하면 늦은 감이 크지만, 녹색의 불모지인 이곳에서도 플라스틱이 핫 이슈로 부상했다. 심지어 정부까지 나섰다. 지난 5월31일, 2019년을 ‘해양 플라스틱 제로화 원년’으로 선포하고 ‘해양 플라스틱 저감 종합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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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도 바다도 국경을 모른다

한편으로 반갑기 그지없지만, 어쩐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저감하고 제로화하고자 하는 ‘해양’ 플라스틱은 한국 영토 내 바다, 즉 연해(緣海)의 플라스틱만인가, 아니면 태평양을 돌고 있는 거대 플라스틱 섬들(이 중 하나는 프랑스 영토보다 3배 넓은 면적으로 추정된다)의 플라스틱이기도 한가? 해수부는 물론 전자를 저감하자는 말이겠지만, 불행히도 대양의 플라스틱은 국경을 모르며 이 나라의 연해로, 연해에 사는 물고기의 몸속으로, 그리하여 우리의 식탁 위로 끊임없이 밀려들 것이다.



태평양을 돌고 있는 거대 플라스틱 섬들.


그렇다 해도, 아니 그렇기에 우리는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국립생태원은 해양 플라스틱 관련 전시를 열며, 약속 5가지를 시민들에게 주문했다. 일회용품 사용 저감, 에코백과 텀블러 사용, 분리 배출, 플라스틱 과대포장 제품 불매의 약속이 그것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실천(소확실)이 아닌가.

그러나 정말 ‘확실한’ 실천일까? 그저 소소하기만 한 실천은 아닐까? 물극즉반의 시대, 우리는 가능한 모든 실천을 해야겠지만(‘약속 5가지’는 기본) 가장 중요한 실천은 우리의 생산과 소비 행위 전체, 행동 전체를 혁신할 새로운 문화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소비만이 아니라 생산의 방식(경제의 체질, 석유화학산업, 어업)이 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연 또는 바다를 우리를 위해 마련된(하느님이 주신) 자원의 매장소가 아니라 인간 외 다른 지구의 주체들이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집으로, 우리 모두의 시간으로 재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의 경제활동을 좌우하는 제 1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강의 차원들’(River Dimensions), 피터 멀케이


재인식이라 한 것은, 인류가 지금처럼 극단적인 동물이 되기 이전엔 이러한 인식을 했기 때문이다. 수천 년 역사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예술을 현대화하고 있는 아티스트 피터 멀케이(Peter Mulcahy)의 작품들은, 이미 수천 년 전 이들에게 뭇 생명이 삶의 동료이자 주체로 이해되었음을 알려준다.

그중 한 점인 ‘강의 차원들’(River Dimensions)에 잠시 시선을 던져 보자. 이 작품에서 우리는 우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동료 생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영혼이 있고, 고유한 삶의 운명이 있고, 삶을 지속할 권리가 있다. 이것이 세계의 실상이다.

그런데, 위와 옆과 아래에서 뻗어 나온 손은, 마치 ‘이 그림’과도 같은 존재다. 그 실상을 실상으로 이해하여 그림으로 표출한 인간의 정신, 물극즉반의 사태를 알아보는 정신, 바다거북과 물범과 고래들을 보호하려는 정신, 바로 우리의 정신 말이다. 이 ‘손’이 있는 한,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 한겨레, 201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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