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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연구소
2019/6/17(월)
조회: 76
구차한 고통의 언어 / 고병권  
[고병권의 묵묵]구차한 고통의 언어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말에는 우리가 앓는 두 겹의 고통이 들어 있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상처로 인한 생리적 고통만이 아니라 그런 상처를 가졌다는 사실로 인한 해석적 고통도 앓는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의 고통과는 다른 고통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느끼고, 장애인은 손상된 몸이 주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사람들의 편견에서 느낀다. 몸의 멍에 더해 마음의 멍이 생기는 것이다.

흔히 고통은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치통처럼 간단한 것조차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저마다 자신이 앓던 치통을 떠올려볼 뿐이다. 그래도 생리적 고통은 해석적 고통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해석적 고통의 경우, 특히 그 고통이 자신이 사회적 척도에 부합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생겨난 경우, 고통의 호소는 부적합한 존재로서 자신을 확증하는 것처럼 느껴져 더 고통스럽다. 상대방은 내 호소를 내가 비정상적이고 뭔가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공감 대신 선고를 받는다. 네가 아픈 이유는 네가 아픈 존재이기 때문이야.
그러다보니 소위 소수자들은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 폭력을 고발하는 경우에도 마치 고발당한 사람처럼 변명의 언어를 쓴다. 내가 당한 폭력, 내가 느끼는 고통을 내 존재의 본래적 성격 탓으로 돌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들의 호소를 곧잘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네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폭력을 유발한 건 아닌지. 너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너무 고통을 느끼는 건 아닌지.
이것이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이때 나의 말은 한없이 구질구질해진다. 내 고통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 삶의 멍든 곳을 다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 멍은 폭력의 증거가 아니라 내 허약 체질의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자꾸 실패하다보면 설득의 고통이나마 줄이기 위해 나는 결국 나를 설득해버린다. 그래, 내가 좀 이상한 것 같아. 너무 민감하고 너무 신경질적이고, 한마디로 나는 이 세상에 적합하지 않은 체질이야. 그렇게 해서 나는 만성적으로 우울한, 그러면서 이따금씩 까닭 모를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간다.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이 문구는 최근 출간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동녘)에서 따온 것이다. 이 제목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픈 사람이 미안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픈 몸으로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미안하지만 회의가 너무 길어지는데 좀 쉬었다가 할까요?” “미안하지만 이번 주 일정을 더 잡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는 왜 미안한가. 일주일에 5일씩, 하루 8시간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서 미안하다. 2시간 넘게 회의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서 미안하다. 아픈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허약함에 대해 사과하고 양해를 구한다. 일주일에 52시간만 일하자고 해도 펄쩍 뛰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시키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정도는 해야 ‘정상’이라고 하니 그럴 수 없는 사람은 미안하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장애인들도 그렇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미안하지만 엘리베이터 버튼 좀 눌러주세요. 손이 닿지 않아서요. 미안하지만 빨대 좀 가져다주세요. 손을 쓸 수가 없어서요. 혼자서 옷을 입을 수 없어서 미안하고, 혼자서 밥을 떠먹을 수 없어서 미안하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장애인들은 한없이 구차해진다. 자신은 이런 것도 못하는 존재라는 걸 계속 고해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낮은 곳에 설치만 했어도, 음료를 서빙할 때 빨대 달린 컵을 제공만 했어도 미안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 사회가 미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미안해진다.
이런 일이 나타나는 데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 책의 저자가 ‘질병의 개인화’라고 부르는 것으로, 문제 원인을 고통의 당사자에게 찾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잘못된 습관, 타고난 체질, 불운한 운명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람을 아프게 하고 장애화하는 환경은 철저히 덮어버린다. 그러면 피해자가 오히려 사회 전체에 돌봄의 짐을 안긴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상의 몸’을 상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딘가 조금씩은 아프고 근본적으로는 어딘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돈이나 권력을 이용해서 자립의 전도된 이미지를 만들 수는 있으나(돈이나 권력을 쓰면 돌봄을 받는 자가 돌봄을 베푸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없앨 수는 없다. 사실 인간 삶의 의존성은 자립이 아니라 함께 살기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우리는 의존에서 벗어남으로써가 아니라 적절한 의존 방식을 찾음으로써 자율적 삶을 누릴 수 있다. 활동보조인과 함께할 때 장애인이 자율적 삶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저마다 조금 다른 의존 방식을 필요로 할 뿐이다. 그런데 특정한 의존 방식만을 정상과 자립으로 규정하다보니 우리 중 누군가는 양해를 구하며 계속해서 고통과 결핍의 구차한 언어를 꺼내야 하는 것이다.

* 경향신문, 201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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