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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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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마을이 사라졌다 / 문정현(한겨레)  
[기고] 마을이 사라졌다 / 문정현

문정현
평화바람 신부


마을이 사라졌다. 평택에서 강정까지 수많은 마을이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하나의 마을이 사라졌다. 그곳은 군산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사라진 하제마을이다. 군산 해안가에 위치한 하제마을은 식민지 시기 일제가 전투기 훈련을 하던 비행학교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그대로 미군기지가 들어선 한반도의 불행한 역사가 숨겨져 있는 곳이다. 전투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을 위로 날았고 주민들은 싸우듯 소리쳐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미군들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은 아랑곳없이 마을과 맞닿은 기지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탄약고를 세웠다. 일제강점기에 한번, 미군기지가 들어오며 또 한번 밀려난 하제마을 주민들은 2005년 이후 49만평의 땅이 강제수용 당하면서 이번에는 완전히 마을에서 떠나야 했다. 총 6개 마을 644가구가 고향을 떠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마을공동체가 해체되고 평생을 함께 살던 사람들이 강제로 쫓겨나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지난해 12월, 내가 몸담고 있는 ‘평화바람’에서 사라져가는 하제마을의 모습을 담은 전시회 ‘안녕하제’를 열었다. 전시회가 열린 곳은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이라는 곳이었다. 1960년에 지어져 2007년까지 여인숙으로 운영되다 10여년 전 군산 지역의 예술가들이 새로 꾸린 조그마한 문화공간이었다. 전시 준비를 하던 중, 눈에 띄는 사진 하나가 있었다. 하제의 600년 된 고목인 팽나무 사진이었다. 마을을 지키는 나무라고 했다. 좁은 골목 사이로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섰던 마을이 부서져 폐허가 된 모습을 보는 것은 충격이었다. 강제수용 된 평택 대추리 마을과 굴착기로 파헤쳐진 강정의 구럼비 해안이 겹쳐 보였다. 철거되고 부서진 잔해들 뒤로 홀로 남은 팽나무가 나를 노려봤다. 마치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강정에 가 있는 동안 나의 고향과도 같은 군산은 이렇게 폐허가 되고 파괴되었구나! 하는 자책과 슬픔이 밀려왔다. 그런데 전시회 여는 행사가 있던 날,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이 이 전시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 많은 사람이 오가는 이 공간에 불평등한 한-미 관계와 미군기지의 역사를 제대로 보여주는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 후대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정에 있는 내 처지를 생각 않고 또 일을 저질렀다.

얼마 전 나는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한국의 평택-군산-강정으로 이어지는 서해안 전쟁벨트가 오키나와에까지 이어져 작은 섬들까지 군사기지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군산미군기지를 통해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알게 된 1997년 이후 평화를 위해 온몸으로 노력해왔건만 한국-일본-오키나와를 군사화하는 미국의 계획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달라진 남북 관계는 이제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종전을 말하고 있지만 서해안 전쟁벨트는 더욱 강화되고 미군기지가 있는 현장은 평화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제는 늙고 연약해진 몸과 마음을 하루하루 받아들이는 처지이다. 팔십을 살아온 내 삶도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이 투쟁을 멈추지 못한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당하기 때문에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사람들과 더불어 군산의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 평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군산에서부터 대추리, 강정으로 이어지는 이 평화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

* 한겨레, 201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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