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연구소
2018/10/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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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 부디 안녕히 / 고병권  
미누, 부디 안녕히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왜 아프고 그래요. 빨리 나으세요.” 통증과 피로를 느끼며 벽에 기대 쉬던 나를 일으켜 세운 목소리. 2009년에 헤어진 친구 미누였다. 20년 만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던 날이 하필이면 10년 만에 친구가 찾아온 날이라니. 반가움에 말들이 순서를 무시하고 튀어나갔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이젠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그는 조금 들뜬 소리로 답해주었다. DMZ 영화제에 초대받아 짧게 들어왔다고. 이번에 들어왔으니 또 올 수 있을 거라고. 잘 지내고 있다고. 어서 빨리 나으라고. 곧 보자고. 그러고는 수화기 너머로 사라졌다.

미누는 1992년에 한국에 왔다.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정책과 제도가 전무했던 시절이다. 그는 이주노동자의 첫 세대였다. 스무 살에 와서 18년을 살았다. 네팔에서 보낸 유년기와 한국에서 보낸 성년기가 같았다.
미누는 요즘 방송하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외국인이 아니다. 3박4일 동안 한국의 음식과 문화, 역사를 탐방하고, 한국인의 자부심을 잔뜩 올려놓고 떠나는 외국인 말이다. 그는 한국 불고기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지는 않지만 식당에서 일하며 주방아주머니에게 배웠다는 ‘목포의 눈물’을 구슬프게도 잘 불렀다. 시청률이 높진 않았지만 그도 TV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주노동자방송의 공동대표였다. 그는 이주노동자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기도 했다. 영화제에 강한 애착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레드카펫을 꿈꾸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노동자를 상징하는 블루카펫에서 노동자와 스타가 함께 걷는 날을 그리곤 했다.
미누는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한국 사회 곳곳에 전하던 인권강사였다. 소위 ‘다문화’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 처음 통용되었을 때, 그것이 추석날 한복 입고 한국 노래 부르는 외국인을 구경하는 일이어서는 안된다고 했던 사람이다. 그는 또한 다국적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리드보컬이었다. 그는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기계 사이에 끼어 팔딱이는 손을/ 비닐봉지에 싸서 품에 넣고서/ 화사한 봄빛이 흐르는 행복한 거리를/ 나는 미친놈처럼 한없이 헤매 다녔지.” 그는 붉은 고무칠이 된 목장갑을 끼고 이주노동자의 잘려나간 손에 대해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를 배웠다. 목포의 눈물을 배웠고 손무덤을 배웠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와 이주노동자방송이 함께 지냈을 때, 우리는 한국 사회에 대해 밥알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만큼 많은 꿈을 꾸었다. 자신의 꿈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그처럼 일치시켜놓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기독교가 한낱 유대인의 종교였을 때 사도 바울은 ‘영에 의한 유대인’이라는 말로 그것을 깨뜨렸다. 유대인이라는 이름을 피부색과 분리시킴으로써 기독교를 보편 종교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 아감벤이 지적한 것처럼 바울의 말은 정체성의 ‘잔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해도 빠져나가는 부분이 생긴다. ‘영에 의한 유대인’은 ‘유대인은 아니지만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음을 말해준다. 겉보기에는 유대인을 보편화하는 말이지만 실상은 유대인의 불가능, 더 나아가 정체성 일반의 불가능을 담고 있기도 하다. ‘유대인에는 유대인 아닌 사람 또한 존재한다’고 풀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울을 이런 식으로 뒤집으면 우리 안의 미누가 보인다.
니체의 말처럼, 우리 안에는 우리를 넘어선 존재가 있다. 반대로 말해도 좋다. 우리 안에 우리 아닌 존재를 품고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이상이다. 한국인이기만 한 한국인은 없다. 만약 그런 인간이 있다면 그는 법조문의 주어나 목적어로만 존재하는 인간이고, 그의 세계는 한 권의 법전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2009년 10월, 미누는 출근길에 연행되었다. 출입국관리법 위반. 한국인도 아닌 주제에 한국에 오래 머물며 무려 노래까지 불렀다고. 그는 우리 연구실 앞에서 끌려갔다. 발만 동동 굴렀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외국인보호소 면회가 허락되었을 때 아크릴판 너머에서 환하게 웃는 그를 보고 우리는 엉엉 울었다. 스피커를 통해 잘 지내라는 말만을 남긴 채 그는 한국을 떠났다. 그의 18년은 그렇게 간단히 뿌리 뽑혔고 그와 엮인 우리의 시간, 우리의 존재 일부도 그렇게 뽑혀나갔다. 그에게는 한국행 비자가 거부되었고 우리 안에 뚫린 구멍에도 접근금지의 철조망이 쳐졌다.
그런데 올해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으로 그의 이야기 [안녕, 미누]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영화제 개막식 참석을 위한 짧은 방문이 허락되었다. “왜 아프고 그래요. 빨리 나으세요.”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를 체념했던 내 안의 모든 세포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미누가 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거짓말 같은 부고가 네팔에서 전해져 왔다. 모두의 심장을 뛰게 하고는 그의 심장이 갑자기 멎어버렸다고. 이제 그는 정말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고.

결국에 내게는 다시 텅 빈 구멍만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을 구르지도 않을 것이고 체념하지도 않을 것이다. 빈자리를 빈자리로 두겠다. 이곳은 그가 앉은 자리였으므로. 그가 여기 있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안에 우리 아닌 자의 자리가 영원히 마련되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이젠 빈 곳을 껴안고 살겠다. 미누, 우리 안에서 부디 안녕히!

* 경향신문, 201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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