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연구소
2018/1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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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아,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자유롭게(한겨레)  
돼지들아,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자유롭게

의식주 자립 꿈꾸며 ’생태적 귀농’한 김성만·송유하씨
자연사료로 키우고 발골도 직접…“그 느낌까지 알고서 먹자는 것”



경북 봉화 하하농장의 돼지가 푹신한 볏짚에 몸을 묻은 채 쉬고 있다. 김성만씨 제공


돼지들이 탈출했다. 돼지농장 문을 열기도 전이었다. 지난 7월 경북 봉화에 있는 자연양돈 하하농장의 종돈과 모돈이 될 돼지들이 들어오던 날, 두 마리가 차에서 뛰어내려 도망갔다.

풀숲으로 달려간 돼지 뒤를 쫓으며 농장주 김성만(38)씨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갇힌 동물들이 다 탈출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였다. 그냥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속내와 동시에 탈출한 녀석들이 인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민원이 쏟아질 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돼지들을 다시 잡아왔다.

돼지가 도망가길 빌었던 김씨와 아내 송유하(35)씨는 ‘전’ 채식주의자다. 두 사람 모두 고기를 좋아했지만, 육류가 생산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입 속에 죄책감이 함께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돼지들은 사육장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농장주 김성만씨는 돼지 1마리당 1평 이상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김성만씨 제공



기름기 도는 고기와 함께 악몽같은 잔상이 눈에 일었다. 전염병이 돌면 폐기처분하는 물건처럼 생매장되고,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100㎏ 거구로 부풀려지는 돼지들, 온갖 약품과 악취가 뒤섞인 창문 하나 없는 공장식 축사…. 그런데 악몽과 함께 끊었던 고기를 다시 먹고, 심지어 생산자가 되기까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도시탈출, 의식주 자립선언?

2012년 9월, 두 사람은 서울에서 봉화로 주거지를 옮겼다. 이주 전 성만씨는 녹색연합에서 일하며 환경운동을 했고, 유하씨는 참여연대, 공정여행사에서 일했다. 대도시에서의 삶은 두 사람을 옥죄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었어요. 도시에서는 의식주가 너무 남의 손에 좌우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유하씨가 말했다. 두 사람은 “땅값이 싸고, 복잡하지 않고, 의정부와 부산에 있는 양가의 꼭 중간에 있는 곳”이라는 이유도 꼽았다.

이주의 키워드는 ‘생태적 귀농’이었다. 목표는 창대했다. 의식주 자립을 위해 논과 밭을 일구고 2년에 걸쳐 직접 집을 지었다. 이주 첫 해엔 옷을 지어 입을 생각으로 목화씨도 심었다. “적게 써서 많이 안 벌어도 되는, 여유 있는 삶”을 꿈꿨다.

현실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번번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을 만났다. 자연농법을 기반으로 한 농사는 만만치 않았다. 제초제와 화학비료로부터 해방하려 했으나 쉼없이 일해도 수확량이 너무 적었다. 하늘도 돕지 않았다. 날이 가물어 벼가 마른다거나 토종 씨앗으로 기른 작은 모종은 잡초보다 성장 속도가 더뎌 결국 밭 전체를 포기한 적도 있다.



하하농장 돼지들은 농작물 부산물을 발효한 사료와 풀을 먹고 산다. 김성만씨 제공



채식을 이어나가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의식적으로 고기나 유제품 등을 피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동네 어른들과 같이 밭일하다 참으로 나온 컵라면을, 일 마치고 다같이 한그릇 먹는 순대국밥을 거부하기란 지역 정서상 쉽지 않았다.

모하(5), 유하(2)가 태어나며 아이들에게 채식 밥상을 차려주는 것도 아이들 의지와 상관없이 강요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기를 먹어도, 먹지 않아도 불편한 노릇이었다. 고기가 필요할 때면, 그나마 돼지 꼬리와 이빨을 자르지 않고, 유전자변형작물(GMO) 사료와 항생제를 안 쓰는 농가를 수소문해 사먹었지만 햄 등 육가공식품의 경우 공장식 축산의 그림자를 피하기 어려웠다.

“바뀌길 원한다면 우리가 바꾸자”

3년 간의 고민 끝에, 다시 채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직접 고기를 생산해보자는 데 이르렀다. “아니, 돼지를 키우겠다고? 왜?” 육식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만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해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에 드디어 마음 먹었는데 주변에서 뜻밖의 반응을 보여왔다.

미묘한 혐오 의식이 있었다. 지역 어른들은 돼지를 소, 닭, 오리 등 다른 가축보다 더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돼지는 온몸에 오물을 묻히고, 돼지 축사는 썩은내가 진동하는 곳이라 여겼다.

하지만 돼지를 ‘더러운 동물’로 만든 것은 사람이다. 바닥에 똥오줌이 흥건히 고이고, 오물이 묻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의 축사는 누가 만든 것일까. 돼지는 냄새나는 동물이 아니었다. 올 11월 완공되는 하하농장 축사를 열기 전에 임시로 쓰는 7평의 작은 사육장에 사는 돼지 7마리는 공간을 알뜰하게 나눠 썼다. 잠잘 곳과 배변 자리를 구획했다. 까맣고 촘촘한 털은 윤기가 흘렀다.



하하농장 돼지들이 농장 인근에서 베어온 풀을 먹으려 다가오고 있다.
이 곳 돼지들이 특히 좋아하는 풀은 환삼덩굴이다. 김성만씨 제공



하하농장의 두 운영자는 도축을 제외한 모든 과정을 직접 할 계획이다. 돼지를 기르고 먹이는 일부터 도축한 돼지를 발골해 고기로 재단해 판매하는 일까지. 두 사람은 눈 맞추고 밥 주며 기르던 돼지의 뼈와 살을 가르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하지만 철저히 분업화된 공정 안에서 ‘더러운’ 돼지가 환한 조명 아래 매끈한 상품으로 진열되는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

유하씨는 “분업화된 공정이 생명감수성을 떨어트린다. 발골하면서 느끼는 감정까지 알고 먹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하농장은 사육장부터 정육점까지 전 과정을 ‘보이는 돈사’, ‘보이는 정육점’ 등으로 홈페이지에 중계할 계획도 있다. 육류가 가공되어 우리에게 오기까지 하나로 합치는 과정은 돼지에 대한 오해도 거두는 일일 것이다.

완전한 해방을 꿈꾸진 못하지만

구수한 빵 냄새가 바람을 타고 마당을 지나 거실까지 스며들었다. 쌀껍질, 깻묵에 감자, 고구마 등 밭에서 나온 부산물을 섞은 자연사료는 3일이 지나면 스스로 50도까지 온도를 올리며 발효된다. 여기서 며칠이 더 지나면 빵 냄새가 쿰쿰한 된장 냄새로 변한다. 자연사료는 소화가 잘 돼 돼지 분변 냄새도 덜하다. 성만씨와 유하씨는 축사에 햇볕이 잘 들도록 하고 바닥에는 톱밥과 흙, 미생물을 섞어 푹신하고 도톰하게 만들 예정이다.

첫날 돈사를 탈출한 돼지처럼 완전한 해방을 꿈꾸진 못하지만 적어도 돼지들이 살아 숨쉬는 동안은 최대한 자연을 끌어들인 공간에서, 두려움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게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도시에서 온 두 사람이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다른 농가에도 조금씩 영향을 줄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다. 봉화/신소윤 기자

* 한겨레, 201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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