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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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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칼럼] 한국인의 얼굴(한겨레)  
[공선옥 칼럼] 한국인의 얼굴

공선옥 / 소설가


사진 ; 강운구, 수분리(1972년)


집값에 관한 흉흉한 소식들을 듣는다. 그 소식들이란, 이제는 노인이 됐을 장수 수분리 사람들에게나, 담양장 가면서 내가 보는 사람들에게나, 해당사항 없는 남의 나라 얘기일 게다. ‘하룻밤새, 억’ 소리에도 심장 떨리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는 궁금할 뿐이다.

발전이라는 것이 정말로 발전인가, 강력한 의문을 가지면서 최근 강운구 사진가의 사진집 <우연 또는 필연>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1973년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 수분리 사람들이 신작로 가상 논두렁에서 더러는 앉고 더러는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장날인 모양이다. 그들의 뒤편으로는 초가집도 보인다. 어쩌면 담배나 성냥, 술 같은 것을 파는 가게를 겸한 집인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오는 모양이다.

사진이지만 부산하게 일어서는 사람들의 동작이 거의 동영상 수준이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차에 오른다. 특이한 것은 여자들은 앞으로, 남자들은 뒷문으로 탄다는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그리된 것 같다. 차는 꽁무니에 먼지를 일으키며 신작로 굽이댕이를 돌아간다. 사람들이 떠난 신작로 가상 논두렁은 적막하다.

나도 버스를 타고 장에 간다. 2018년, 전라남도 담양군 대방리 사람인 나는, 1973년 장수군 수분리 사람들처럼 논두렁에 하염없이 쭈그리고 앉아 장에 갈 버스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서 플러스마이너스 5분 정도면 정확히 온다. 버스 손님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1973년 논두렁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수분리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들도 1973년이나 2018년이나 한가지로 버스를 타고 장에 가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변한 것은 다만 그때는 젊었고 지금은 노인이라는 것.

버스 타고 장에 가면 물건을 많이 살 수가 없다. 내게 차가 있던 시절에는 차가 감당할 만큼 물건을 샀다면 지금은 내 몸이 감당할 만큼만 사게 된다. ‘차가 감당할 만큼’과 ‘내 몸이 감당할 만큼’의 차이는 엄청날 텐데도, 이상하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나처럼 자신들이 감당할 만큼의 장을 본 노인들이 정류장에 한가득이다. 버스 안에서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거의 농사와 날씨에 관한 것이다. 봄의 냉해, 여름의 한해, 가을 초입의 태풍과 그리고 자신들이 심고 가꾼 농작물들의 근황을 나는 듣는다. 나는 그들에게서 오른 집값 같은 이야기는 듣지 못한다.

최근 서울에서 광주 오는 심야 고속버스를 탔다. 심야버스는 불을 다 끈다. 그러나 요새는 불을 꺼도 차 안이 환하다. 환한 것이 아니고 사방에서 휴대폰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에 휴대폰 불이 내 눈을 쏜다. 눈을 감고 있어도 휴대폰의 강한 불빛이 내 눈자위를 자극한다. 휴대폰 화면 강도와 각도를 좀 조절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잘 차려입기로는 패션잡지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나로서는 늘 보아도 생경하고, 잘생겼음에도 정이 안 가는 얼굴을 한 청년이 나를 쏘아본다. “왜 여기를 보는데요?”라는 반문과 함께. 더는 끽소리도 못하고 눈을 질끈 감는다.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데 골목에서 차가 튀어나온다. 택시기사가 경적을 울리며 튀어나온 차를 향해 악을 쓴다. 튀어나온 차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바로 그 최소한의 사과의 제스처도 취하지 않음에 대해서 분개하는 기사에게 휴대폰 청년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라디오에서 집값 뉴스가 나와서인지 기사가 바로 그자들이, 그리고 사과하지 않는 저자들이 집값 올리는 불한당(?)들이라고 분기탱천한다. “불한당이 다 뭐여, 매국노들이여, 매국노!” 분기탱천하는 기사에게, 차마, 집값 못 잡는다고 야단치는 국회의원, 재벌 언론인 중 다수가 집부자, 땅부자라는 소리는 할 수가 없다. 종부세, 거래세가 누구한테 해당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집값에 관한 흉흉한 소식들을 듣는다. 그 소식들이란, 이제는 노인이 됐을 장수 수분리 사람들에게나, 담양장 가면서 내가 보는 사람들에게나, 해당사항 없는 남의 나라 얘기일 게다. 그러면 집값 올리는 사람들은 택시기사 말마따나, 휴대폰 불빛 좀 줄여달라는 부탁에 발끈하는 청년이나, 불시에 튀어나와서 택시기사를 놀라게 해놓고도 사과하지 않는 몰염치배들이나 하는 짓인가? 올린 가격으로 거래하지 않으면 집단징치를 가해야 된다고 기세를 올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가?

지금 집값 올라가는 소식은 내게 하나의 ‘범죄’ 소식으로 들린다. 그러면 이제 한국인은 어떤 얼굴이 되었는가? 범죄자의 얼굴이 되었다고는 차마 말을 못하겠다. 다만, ‘하룻밤새, 억’ 소리에도 심장 떨리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는 궁금할 뿐이다.

* 한겨레, 2018.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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