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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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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고등학교, 꿀벌 치는 학생들 / 전광진  
시골 고등학교, 꿀벌 치는 학생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옆집 컴퓨터 안되는 것을 조금 손봤다가, 꿀을 한 병 받은 적이 있다. 컴퓨터나 TV 봐달라고 하는 것들이 대개는 간단한 스위치 몇 번 누르거나, 자동숨김 된 작업줄 꺼내는 정도이다. 한데 그것 하나 해주고 뭐 받을 때는 황송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들려주실 때가 많다. 간단한 사용법 알려드리고 꿀 한 병이라니. 그런데, 이 집이 벌도 치고 있었네. 소 키우는 일에, 농사에, 일 있을 때는 공사판에도 다니시는데. 벌통은 대체 어디에 놓고, 언제 돌봐가며 치시는 것인지.

시골에서는 벌을 전업으로 하지는 않아도, 몇 통씩 벌통을 놓고 있는 집이 적지 않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도 벌통을 놓고 꿀벌을 치는 학생들이 있다. 양봉 동아리를 만들어서 직접 벌을 치고, 꿀을 따고, 그 꿀로 지역 특산품이 될 만한 음식을 만드는 청소년들. 벌을 치면서 학생들은 벌을 키우는 마을과 벌이 살아가는 자연에 대해서도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아쉽게도 이것은 옆나라 일본의 이야기이다. 일본에서도 고등학교 양봉부라는 것은 많지 않아서 사람들 사이에 이야깃거리가 되고, 책으로도 나왔다. 그 책을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펴냈다.
처음에는 꿀벌 이야기인가 싶어 살펴보게 된 책이었는데, 시골에 사는 우리 아이들 이야기였다. 일본도 좋은 대학을 찾는 입시 환경은 우리와 비슷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소위 명문대로 대도시로 나가고, 시골 고등학교에 남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남겨진 아이들’ 취급이다. 자신 스스로도 그러하고,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계속 말하고. 시골은 이미 사람이 너무 적지만, 그중에서도 20대 청년은 거의 진공 상태에 가깝다. 그래도 초등학생은 조금 있는데, 중학교·고등학교를 지나는 사이 하나씩 둘씩 줄어든다. 고등학교 앞에는 늘 이제는 돌아오지 않게 될 이름들, 그러니까 대도시 명문 학교로 가는 학생들의 이름만 나부낀다(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교육 예산이라는 것도 이런 몇몇 학생들한테만 집중적으로 쓰이고 있고, 이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렇게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에 남겨진 아이들이 꿀벌을 치는 일을 알게 되고, 스스로 학교에 양봉 동아리를 만들고 벌을 치기 시작했다. 벌통을 만드는 일, 벌을 받아 오는 일, 무사히 겨울나기를 하는 일, 꿀을 따는 일.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 아이들은 지역의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고, 배우고, 같이 일하는 법을 깨우쳐 나갔다. 벌이 살기에 더 좋은 마을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도 생겨 숲과 마을 사이사이 빈터를 가꾸는 일에까지 힘을 쏟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한 학생이 말했다. 우리 학교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학생들이 오는 학교, 중학교 때 수업을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던 학생들도 오는 학교라고. 처음에는 나도 그런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그러던 자신이 바뀌었다고 했다. 바뀌는 일이 간단치는 않았지만, 그때마다 벌통 앞에 쪼그려 앉아 벌을 봤다고 했다. 양봉부를 나온 학생들은 다 같이 온 힘을 다해 꿀벌 치는 일을 한 다음, 졸업을 하고 저마다 다른 제 길을 찾았다. 요리사가 되거나, 숲을 가꾸고 연구하거나, 관광업에 종사하거나, 정말로 양봉업에 뛰어들거나. 모양새는 다 다른데, 누구든 자기 삶이 태어나 자란 곳에서 너무 떨어지지는 않으려고 했다. 그걸 즐거워하고 귀하게 여기며 지낸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내고 한참 뒤에야 나는 평창의 한 중학교에도 양봉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일이 고등학교까지 이어지기를. 꼭 꿀벌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겠지. 아이들이 제가 태어나 자란 땅과 그곳의 사람들을 깊게 바라보고, 함께 일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체험이니 뭐니 하면서, 이름만 알고 건너뛰는(그래서 오히려 독이 되는 그런) 것 말고. 제 앞가림을 할 줄 알고, 어울려 사는 법도 깨치는 교육이라면, 이런 과정이야말로 필수가 되어야 하겠지.

* 경향신문, 20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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