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마당 사금파리 :::

이름: 연구소
2018/9/3(월)
조회: 10
개농장은 되는데, 유기 친환경 닭농장은 안 된다고? / 전진경  
개농장은 되는데, 유기 친환경 닭농장은 안 된다고?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이사

[애니멀피플] 동물의 친구들

경북, 친환경 산란계 농장 설립 불허
인근 주거 환경 고통 등 이유 들어
4년 전 대규모 개농장은 허가해 논란


2017년 8월15일, 농식품부는 모든 계란의 출하를 중지하고 3000마리 이상 사육 농장에 대한 전수검사에 들어갔다. 대형 식품 유통 3사도 계란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었다. 고조되는 위기감 속에서 이낙연 총리는 공장식축산과 행정의 맹점 같은 적폐를 청산할 중장기 계획을 세워 실행하겠으며 과거 정부의 잘못도 끌어안고 시정하겠다고 했다.

2018년 8월27일, 경상북도행정심판위원회는 소규모 친환경 산란계 농장을 설립할 수 있게 해 달라며 유기 친환경 농장주가 제기한 행정심판을 기각했다. 앞서 농장주는 유기 친환경 농장의 설립을 위해 포항 북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포항북구청이 설립 불허 처분을 내리자 농장주가 불복해 상급 관청인 경상북도에 판단을 구한 것이다. 그러나 경상북도행정심판위원회는 유기 친환경 농장 설립을 불허한 포항북구청의 손을 들어 주었다.

포항북구청과 경상북도행정심판위원회가 설립을 불허한 이유는 단 하나다. 인근 주민들이 농장의 설립에 집단으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주민들이 계사 등 축사시설로 인해 ‘수십 년 전부터’ 악취 등 환경오염으로 주거 생활에 큰 고통을 겪어 왔고 이에 주민 의견을 반영하여 건축허가처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의 이익보다 다수 주민의 이익이 더 크다고도 했다.

2014년 경상북도 김천. 수십 년 동안 1,000여 마리 대규모 개농장을 운영하던 개농장주가 인근 마을에 훨씬 더 큰 규모의 개농장을 추가로 짓겠다며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개농장이 들어서지 않게 하려고 민원 제기에 소송까지 불사한 주민들이 안타까워 동물권행동 카라가 대구지방법원, 대구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무려 3년간의 소송을 지원하며 막아보려 했지만 결국 6,000마리 수용 규모의 거대한 개농장은 설립되고 말았다.


지역 토박이였던 개농장주의 힘은 아주 셌다. 수십 년 전 개 몇 마리 먹여보겠다고 이웃에게 읍소하여 만든 개농장은 사육규모가 1,000마리를 훌쩍 넘겼다. 현장 조사를 나갔더니 “새벽이면 개들의 비명소리와 흘러나오는 핏물, 무엇보다 분뇨에 더해진 음식쓰레기 냄새로 살 수가 없다”는 주민들의 호소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적극적인 민원을 제기하기보다 오랜 이웃이 더 이상은 염치없는 행동을 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듯 했다. 불씨는 이웃 마을로 번졌다. 더 큰 개농장의 건립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김천시에 제기한 민원이 수용되자 문제는 해결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개농장주는 이에 불복하고 경상북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경상북도행정심판위원회는 김천시의 처분을 뒤집고 무법 영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며 음식쓰레기 냄새, 개 짖는 소음 등 심각한 주민 민원을 유발해 온 개농장의 신규 설립을 허가했다.

참 이상하다. 김천 개농장 허가 사례를 놓고 보면 경상북도행정심판위원회가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과 육성을 표방한 모범적 동물복지산란계농장 건축허가를 주민 민원을 근거로 들며 불허한 일은 누가 봐도 전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농장 설립을 막아달라는 민원에 대해서는 “아직 발생하지 아니하였고 관리와 지도·감독으로 민원 유발 요인을 막을 수 있음에도 민원이 발생할 것이라는 막연한 예측만으로 건축 허가를 불허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경상북도행정심판위원회. 이번에 유기 친환경 농장의 신규 설립 건축허가를 불허하면서는 “(건축허가 불허 처분이)비합리적이고 근거없이 막연한 우려에서 비롯되어 부당하다고 주장하나 우리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행정처리하고 있으며 인근지역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어 적법한 행정행위”라는 포항 북구청의 정반대 주장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인용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금번 건축허가가 불허된 산란계 농장주가 현재 운영 중인 농장을 약 6개월 전 낱낱이 현장 조사했다. 농장은 아담했다. 생각보다도 더 규모가 작았다. 닭들은 감옥에서 벗어나 깨끗한 환경에서 소집단 단위로 나뉘어 놀았고 아늑한 둥지 안에서 알을 낳았다. 농장에서는 마치 산속에 온 듯 청량한 냄새가 났다. 닭들은 부리가 잘려있지 않았지만 서로 쪼지 않았다. 쪼고 파며 놀 땅과 놀잇감인 짚단, 올라가 쉴 횟대,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어 서로 쪼며 싸울 일이 없었다.

철폐해야 할 무법 개농장은 민원에도 불구 버젓이 허가하고 국가가 육성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유기 친환경 농장 설립은 불허하다니. ‘수십 년 전부터’ 악취 등 환경오염으로 주거 생활에 큰 고통을 겪게 만들어 민원이 제기되게 한 ‘바로 그 원인’인 공장식 축산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설립 허가가 불허된 바로 그 유기 친환경 농장이 대안으로서 절실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설립 불허를 고수하는 경상북도는 닭을 고문하는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를 철폐할 의사가 있기는 한 건가. 혹시 수 십 년 간 유지되어 온 닭들의 0.05㎡ 감옥이 부수어지는 게 두려운,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 한겨레, 20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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