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래나무 아래에서 ▒  


이름: 가래나무
2014/10/27(월)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 윤재철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윤재철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쟤들이 낼 거야
옆 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빗돌을 세우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답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그림 : 청전 이상범)



왕풀: 끄덕끄덕! -[10/30-19:38: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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