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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가래나무
2014/7/14(월)
가만히 있으라 - 변홍철  

가만히 있으라

변홍철


특등실, 1등실, 2등실 구분은 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가만히 있으라
수업 끝나고 보충, 야자, 학원, 인강, 그래도 남은 시간은 자유다. 에어포켓이다.
가많이 있으라
조금만 참으면 된다, 대학만 가면 된다, 선착순이긴 하지만 구명보트도 있다
그러니 안심하라, 가만히 있으라

이 배은 어디에서 출항한 것일까
이 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저들은 우리에게 끝없이 가만히 있으라 명령하는가
주위데 라는 배는 없는가, 다른 항로는 없은 것인가
이 배는 기울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명보트는 펴지기나 할까, 우리는 정말 안전한가

서주와 노동자, 정규직, 비정규직, 알바,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위치에 충실하라, 가만히 있으라
이 배는 선진화, 민영화된 호화 여객선,
공장을, 학교를, 사무실을 벗어나기만 하면
국장, 노래방, 스마트폰, 생수병과 통조림에 담긴 자유,
24시간 불을 밝힌 편의점, 진열된 민주주의가 넘치나니,
불안을 조성하지 말라, 소빗심리를 위축시키지 말라
가만히 있으라

이 배의 좌표는 어디인가
이 배의 수명은 얼마나 연장되어도 좋은 것인가

왜 쇠붙이로 만든 방은 기울어
이토록 위태로운가, 왜 우리의 호흡은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가빠지는가, 이것은 정말 배가 맞나,
우리는 한번도 배 바깥의 세계를 만나 본 적이 없지 않나

질문은 허용되는가
가만히 있으라
불복종은 허용되는가
가만히 있으라
탈출은 허용되는가
가만히 있으라
자유는 허락되는가
가만히 있으라

지금은 밤인가 낮인가
어디가 천장이고 어디가 바닥인가
우리는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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