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래나무 아래에서 ▒  


이름: 가래나무
2014/4/28(월)
이름짓지 못한 시 - 고은  

이름짓지 못한 시

고 은


지금 나라초상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상감마마 승하가 아닙니다
두 눈에 넣어둔
내 새끼들의 꽃 생명이 초록생명이
어이없이 몰살된 바다 밑창에
모두 머리 박고 있어야 할 국민상 중입니다

세상에
세상에
이 찬란한 아이들 생때같은 새끼들을
앞세우고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몹쓸 살 판입니까

지난 열흘 내내
지난 열며칠 내내
엄마는 넋 놓아 내 새끼 이름을 불러댔습니다
제발 살아있으라고
살아서
연꽃봉오리 심청으로 떠오르라고
아빠는 안절부절 섰다 앉았다 할 따름
저 맹골수도 밤바다에 외쳤습니다

나라의 방방곡곡 슬픔의 한사리로 차올랐습니다
너도나도 쌍주먹 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분노도 아닌
슬픔도 아닌 뒤범벅의 시꺼먼 핏덩어리가
이내 가슴속을 굴렀습니다

나라라니오
이런 나라에서
인간이라는 것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무슨무슨 세계1위는
자살 1위의 겉이었습니다
무슨무슨 세계 10위는
절망 10위의 앞장이었습니다
사회라니오
그 어디에도 함께 사는 골목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신뢰라니오
그 어느 비탈에도
서로 믿어 마지않는 오랜 우애가 자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흔히 공이 없고 사만 있다 합니다
아닙니다
사도 없습니다
제대로 선 사만이 공을 낳습니다
신성한 사들이 다 썩어문드러진 것입니다
이런 사로
권세를 틀어쥐고
부귀를 꽉 움켜잡고 있는 죽음의 세월입니다

오늘도 저 남녘 앞바다 화면 앞에 있습니다
아무리 땅을 친들
땅을 쳐
피멍들 손바닥뿐인들
내 새끼의 환한 얼굴이 달려올 리 없건만
밤 지새울
멍한 아침바다를 바라봅니다

어찌 엄마아빠뿐이겠습니까
이 나라 풀 같은 나무 같은 백성 남녀노소라면
저 과체중의 선체가 기울었을 때부터
하루 내내 실시간의 눈길이 꽂혀왔습니다
그 선체마저 잠겨
겨우 꼬리만 들린 채
나라와 세상살이 갖은 부실 갖은 비리
하나하나 드러내는 통탄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런 역적 같은
이런 강도 같은 참변 앞에서
과연 이 나라가 나라 꼬라지인가 물었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야만이 저지른 희생 앞에서
이 사회가
언제나 청정한 하루하루일 것인가를 따졌습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얼마나 인간이었던가를 뉘우쳤습니다
영혼이라는 말
양심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몰라야 했습니다 알아야 했습니다

내 새끼야
내 새끼야
내 새끼야
꽃들아 초록들아

이토록 외치는 이 내 심신 차라리 풍덩 내던져
우리 모두 빵(영)으로 돌아가
다시 하나둘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나도 너도
나라도 무엇도 다시 첫걸음 내디뎌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고도성장의 탐욕으로 마비된 것
이른바 무한경쟁으로 미쳐버린 것
이른바 역대권력에 취해버린 것
하나하나 각고로 육탈로 떨쳐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1인과 10인의 향연이 아닌
만인의 영광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못 박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태는
올가을이면
내년 봄이면 파묻어버릴 사태가 아닙니다
1백년 내내 애도해야 합니다
죽은 꽃들을 그 앳된 초록들을
이 내 피눈물의 새끼들을 망각을 물리치고 불러내야 하겠습니다
허나 지금
아 이 나라는 울음 복 울부짖음 복이 터진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분노의 복이 터진 나라입니다

내 새끼야
내 새끼야
내 새끼들아



이자풀: 할 말이 없습니다 -[05/01-22:59: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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