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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가래나무
2014/3/24(월)
썩은 밤을 줍다 - 김기택  

썩은 밤을 줍다

김기택


부풀어오르는 밤알의 힘에 못 이겨

가시 돋친 푸른 가죽이 힘차게 찢어져 있다.

숨어 있는 밤알들이 눈알처럼 초롱하다.

손라락을 찔리며 밤알들을 꺼낸다.

껍질은 흠 없이 단단하고 반들반들한데

까 보니 썩은 구멍에서 벌레가 기어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멀리 던져 버린다.

밤을 실컷 까먹고 욕심것 주워 담아

내러오는 길, 그제야 생각이 난다.

단단한 고체의 공기 속에서 숨쉬며 살던

내장이 비칠 것 같은 말랑말랑한 밤벌레,

깨어진 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처럼

부서진 집과 세상에서 쫓겨 나오던 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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