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래나무 아래에서 ▒  


이름: 가래나무
2013/12/23(월)
아네스의 기도 - 작자 미상  

아네스의 기도

작자 미상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 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마음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볼 수 있기를






+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주인공 ‘미자’가 쓴 마지막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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