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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가래나무
2014/8/18(월)
왕십리(往十里) - 김소월  

왕십리(往十里)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무학: 옛날 왕십리는 유독 서민들이 많이 살고, 산동네가 많아서인지 민주화 전에 전 서울 지역이 야당 국회의원 일색인데도 왕십리를 중심으로 한 성동구는 여당이 당선되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습니다.지금은 몹쓸 한강 개발사업과 4대강 사업 등으로 한강에서 수영한다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지만 60, 70년대는 모래사장이 기가막힌 왕십리 인근 뚝섬 일대의 해수욕장은 여느 동해안 해수욕장 보다도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뚝섬과 왕십리 사이에서 배를 타고 건너면 수박밭, 참외밭이던 청담동 역시 개발 지상주의로 인해 이제는 부의 상징 처럼 되어있어 씁쓸한 느낌도 있구요.
조선 건국 초기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천도할 곳을 찾던 무학대사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넌 뒤 왕십리 일대의 넓은 들판을 보고 새 도읍지로 여기던 차, 소를 몰고 가던 노인(도선대사)이 무학대사를 꾸짖으면서 북서쪽으로 십리를 더 가라고 알려주어 지금의 한양 도성을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이로인해 무학대사가 노인을 만난 곳, 즉 지금의 왕십리가 ‘십리를 가다’라는 뜻의 왕십리(往十里)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왕십리의 지명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민담일 -[08/19-22:39:1801]-
무학: 뿐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에 이미 서울은 남경(南京)이라 불리며 중요한 행정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그리서인지 고려 말기의 문인인 이색의 시문을 모은 《목은시고(牧隱詩藁)》에 “무포(務浦)에 와서 배에서 내린 뒤에 남경(南京) 동촌(東村) 왕심리(旺心里) 민가에서 묵었다”며 ‘왕심리(旺心里)’라는 지명이 나오고, 17세기 조태억의 문집인 《겸재집(謙齋集)》에도 “종암(鍾岩)에 모여 왕심리(旺心里)로 향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합니다. 따라서 왕십리라는 지명은 고려 때부터 전해진 ‘왕심리’라는 명칭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 주장이 신뢰가 갑니다. 오늘 소월 시처럼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오는> 하루입니다. -[08/19-22:43:7649]-
산짐승: <무학>이란 닉네임을 쓰시는데 굉장히 <유학>하시군요. 이런 걸 반전이라고 하나요 아니면 요즘 유행어로 '망언'이라고 하나요. 장동건이 스스로 못 생겼다고 하는 뭐 그런... 소월은 아마 이 시에서 떠나가는 자의 서러움을 노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학님 말씀대로 왕십리는 변두리를 의미하고 걸어다디던 시절 서울 중심가에서 그 곳을 향해 가는 쓸쓸함이 시적 소재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촌놈이라 서울의 지역별 동네별 애환은 잘 모르지만 왕십리라면 어딘지 변두리를 상징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제 아들놈도 그 곳에 삽니다만 중랑구 등이 개발되기 전에는 서울 갓 올라온 촌놈들이 우선 정착하는 강북의 서민거주지의 아이콘이었던 모양입니다. -[08/20-23:31:4100]-
대사: 왕십리에서 평생을 산 사람으로서 추억과 소회를 말씀 드렸을 뿐인데, 망언(?)으로 들린 모양입니다.그렇다치고, 좀 더 말씀 드리면 왕십리 서민들은 유일한 야권 도시였던 서울에서 잘 살게해주겠다는 빈 공약에 속아 여당을 당선시킨 곳이기도 한, 울부짖음이 가득한 지역이 왕십리이기도 합니다. 올레TV 단편 영화모음에 보면 왕십리 재개발에 따른 기록영화가 있습니다. 그 짧은 기록에는 순박한 산동네 주민들이 투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결사항전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한편으로는 재개발로 인해 어릴적 추억들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숙연하면서도 심란했던 기억이 납니다. 덧붙여 왕십리 바로 지척에 청계천이 있었는데, 50,60년대는 천 주변으로 판자집들이 빼곡히 들어서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이들은 청계천 개발로 철거되고, 쫓겨나 그 자리에는 맨션 · 상점가가 건설되었지요. 이 과정에서 청계천 주변에 살던 많은 사람들은 봉천동, 신림동, 상계동 등으로 강제로 이주당했지요. 그런 애환들이 소월시를 오랜만에 접하면서 감정 이입이 되어 <왕십리>를 복기해 본 것입니다. -[08/21-01:03:7400]-
대사: 소월은 쓸쓸함과 이별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데, 어줍잖게 왕십리 지명과 추억을 들먹이는 <봉창>을 뚫은데 대하여 문학전공이신 <산짐승>님의 비위를 거슬린점, 그 넉넉한 풍채만큼이나 넓은 아량으로 용서바랍니다. 이 시가 발표된 것이 1920년대이니 그 당시에는 1910년대에 개설한 왕십리에서 을지로 6가까지 전차가 다닐때일겁니다.
아마 그 길을 걸으며 일제 하의 암울했던 시기에 소월의 마음이 어땠을까...산짐승님의 지적에 힘입어 한번 헤아려 봅니다. -[08/21-03:52:1736]-
산짐승: 아이구 무학대사님 몇 줄만 읽어도 그 내공을 알 수 있어 농담삼아 드린 말씀입니다. 김흥국이 <59년 왕십리>를 노래했던데 그 무렵 거기 사셨었군요. 저는 어릴 때 마장동에 직행버스터미널이 있어 그 쪽에 이따금씩 갔었고, 그래서 인제 원통쪽 중동부전선쪽 군인들이 영종여객 버스타고 휴가온 뒤 마장동에서 쇠고기 숯불구이로 마지막 회식을 하고 영호남 등 각자 고향으로 흩어졌던 기억도 생각나네요. 버스 아래로 왕숙천이라 불리던 개울을 내려다본 적도 있는데 그 개울은 아마 한강의 샛강이겠지요. 있지요.그런데 제 기억엔 월곡동 등이 왕십리보다 집이 더 게닦지처럼 작었던 것 같은데.. .. . -[08/21-18:52:6976]-
막각: 왕십리에는 저도 추억이 좀 있지요. 이제는 공개해도 될 추억이란 별 게 아니라, 70년대 중후반 제가 그때 맨날 만나던 여학생이 신당동에 하숙을 했습니다. 그래서 늘 밤이면 신당동의 그의 하숙집 골목까지 바래다 주고, 다시 큰길로 나와 동대문운동장에서 내려오는 차와 퇴계로에서 시구문을 겅쳐 내려오는 버스들 중에서 그때 제가 살던 청량리 경유 이문동까지 가는 밤버스를 기다려, 타고 방금 전에 헤어진 그 여학생과 보냈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하며 왕십리를 흘러 동마장으로 꺾어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버스를 기다리던 버스정류장 맞은편에는 낡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시전문지 <심상>지의 사무실이 거기 있었지요. 그래서 어떤 때, 거기서 박목월선생도 잠깐 뵌 적이 있었지요.
그때 골목은 지금 모두 달라졌찌만, 제 머리속의 그 골목은 35년쯤 지났는데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지요.
무학대사님께서 청계천 7가,8가 이야기도 하시는데, 제가 학교 다니던 70년대에도 청계천 7,8가에는 개천 양안에 판자집들이 즐비했고, 거기 시궁창 같은 개천이 흐르고, 빨래가 걸려 있고, 아침이면 흙언덕에 올라서서 개천을 바라보며 -[08/23-00:35:3209]-
막각: 양치질하던 소녀도 있었고, 소년도 있었지요.

그나저나 무학대사께서는 산짐승님이 풍채가 좋다는 것도 알고 계시는 것을 보아, 아주 먼 곳의 모르는 인사는 아닌 듯합니다. 산짐승님이 지독한 문학청년이라는 것도 느끼고 계시고, 풍채까지 알고 계신다면, 정체를 드러내셔도 좋을 듯싶은데, 어디 제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반갑다는 인사 드립니다.
-[08/23-00:35: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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