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평화의 책들 :::

지은이: 일레인 스캐리
출판사: 오월의봄
2018/10/8(월)
조회: 45
고통받는 몸  


고통받는 몸
일레인 스캐리 / 메이 옮김 / 오월의봄 / 652쪽 / 37,000원 / 2018년.

* 몸이 보내는 고통의 신호들을 포착하다
《고통받는 몸》의 세부적인 논의들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이 쓰인 시대적 배경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레인 스캐리가 《고통받는 몸》을 쓴 1970년대는 과연 어떤 시기였을까? 이 물음을 이렇게 바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70년대는 인간의 몸에 어떠한 폭력과 위협이 가해지던 시기였을까?
《고통받는 몸》이 쓰인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은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로, 미·소 갈등과 핵무기 군비 경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1979년에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해 미국 사회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집필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국제앰네스티의 고문 철폐 캠페인이었다. 1972년에 시작되어 10년간 지속된 이 캠페인은 세계 곳곳 독재정권하의 고문의 실상을 드러냈다. 이 캠페인을 통해 국제앰네스티는 신뢰받는 조직으로 크게 성장해 노벨상(1977년)과 유엔인권상(1978년)을 수상하게 된다.
이렇듯 《고통받는 몸》은 인간이 대규모로 상해를 입었고 입고 있으며 앞으로도 입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 당대의 상황을 기민하게 인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고통받는 몸》을 시작으로 스캐리는 인간이 겪는 상해와 고통, 그리고 그처럼 언어로 표현되기 힘든 것들을 표현하는 문제를 끈질기게 탐구해나갔다. 2001년의 9.11 사건과 뒤이은 ‘대테러 전쟁’ 의 맥락에서 나온 《누가 나라를 지켰는가》(2003), 《법의 지배, 인간의 실정》(2010) 및 핵무기의 위험과 그에 맞설 수 있는 민주주의와 법을 논하는 《핵무기 군주제》(2014) 등은 모두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쓰여진 저작들이다. 1970년대를 관통한 고문 철폐 캠페인부터 냉전 시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핵무기 위험까지, 스캐리는 폭력과 상해로 인한 몸의 고통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고통은 표현될 수 있는가

“육체적 고통엔 목소리가 없다. 하지만 고통이 마침내 목소리를 찾을 때 고통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캐리는 《고통받는 몸》이 다루는 주제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육체적 고통을 표현하는 일의 어려움이 첫 번째 주제이며, 그다음으로는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발생하는 정치적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는 인간의 창조가 지니는 본성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어떻게 ‘창조’를 고통을 극복하는 하나의 윤리로 탐구할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육체적 고통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표현 불가능성은 《고통받는 몸》의 첫 문을 여는 논의가 된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고통은 너무도 자명한 현실이지만, 타인이 그 고통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설령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통해 그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타인이 이해하는 그 괴로움은 실제 고통의 미미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고통을 겪는 사람의 ‘고통스러워하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확신이지만, 그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고통에 관해 듣기’는 ‘의심하기’의 가장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스캐리는 고통을 언어의 문제에 밀착해 사유한다. 소포클레스 작품의 영어판에서 등장하는 ‘아!’ ‘아!!!’와 같은 외마디의 비명이 시사하듯, 고통 앞에서 언어는 철저히 부서진다. 고통스러워하는 필록테테스의 울부짖음과 비명이 영어에서는 상응하는 말을 찾지 못해 ‘아’ 같은 단일 음절로 표현된 것인데, 스캐리는 이것이 특정 언어의 표현 문제가 아니라 언어를 굳게 하는 고통의 완전한 경직성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한다. 스캐리에 따르면, 고통은 애초에 언어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언어를 적극적으로 분쇄하여 언어 이전의 소리와 울부짖음으로 되돌리는 본성을 갖는다. 이는 고통이 우리 의식의 다른 상태들과 다른 예외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연유한다. 말하자면 고통은 의식의 내적 상태가 외부의 대상을 수반한다는 인식 자체를 중단시킨다. 사랑, 증오, 두려움 등과 같은 상태들은 항상 무언가에 대해 형성되거나 무언가를 향해 있다. 우리가 ‘~에 대한 사랑’ ‘~를 향한 증오’ 등과 같은 목록들을 어렵지 않게 나열할 수 있는 이유다. 무한히 나열될 수 있는 이런 언어 목록들은 몸의 경계를 넘어 외부의 공유할 수 있는 세계로 이동해나가는 인간의 능력을 시사한다. 하지만 고통이 개입하는 순간 인간의 이러한 능력은 중단된다. 즉 고통은 지시 대상을 갖지 않는다. 바로 이 이 이유 때문에 고통은 다른 어떤 현상보다도 더 언어로 대상화되는 데 저항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통이 언어적 대상화에 저항한다는 사실, 즉 고통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모종의 정치적, 지각적 문제들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이 정치적, 지각적 문제들을 살펴보면 고통이 ‘권력 문제’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통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에 관심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고통을 언어적으로 재현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 곧 고통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일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고통의 존재 자체가 아예 부인되기도 한다. 이처럼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은 고통받는 사람의 현실과 다른 이들의 현실 사이에 완전한 단절을 일으킨다. 나아가 우리는 고문과 전쟁에서 고통의 실제성이 고통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이전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고문과 전쟁에서 고통받는 몸, 상해를 입은 몸, 없애기 어려운 죽은 몸 등 몸의 논박할 수 없는 실제성은 자신의 원천에서 분리되어 권력의 이데올로기나 쟁점에 부여된다. 한 인간이 겪는 절대적 고통이 절대적 권력 및 전쟁 결과라는 허구로 대체, 전시되는 것이다.
* ‘함께’ 고통의 언어를 만들어내기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은 역설적으로 고통의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들을 촉발해왔다. 고통은 그 본성상 언어를 거부하지만, 고통을 감소시키고자 할 때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고통 이외의 다른 의식 상태는 대상이 박탈되면 고통에 가까워지지만, 반대로 고통은 대상화된 상태로 변환됨으로써 일부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고통의 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언어에 가닿는 것이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고통의 영역에 손을 뻗어 그 경험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 구조를 만들려는 노력이며, 언어와 대상화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고통에 대한 또 다른 필사적인 저항에 가깝다. 대상화를 향한 길 위에 고통 자체를 올려놓음으로써 고통의 본성을 뒤집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실로 매우 중요한 실질적, 윤리적 기획으로 제시되어왔고, 여전히 중대한 이슈이다.
그렇다면 언어적 대상화를 거부하는 고통의 본성을 전도하려는 이들은 누구일까? 다시 말해 고통을 말하기 위한 언어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고통을 말하기 위한 언어를 고안하는 사람은 몸소 큰 고통을 겪은 당사자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그를 대신해 고통의 언어를 만들어내곤 한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보통 말할 수 있는 자원을 전부 잃은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이렇듯 언어를 마련함으로써 고통이라는 철저히 사적인 경험은 공적 담론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고통을 공적으로 담론화할 수 있게 해주는 몇몇 통로들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의학은 가장 명백해 보이는 통로이다. 고통이라는 육체적 문제를 다루는 의학 연구는 무엇보다도 언어를 만드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의사가 하는 작업의 성공 여부가 고통을 말하는 조각 난 언어를 듣는 데 필요한 예민함, 또는 그 조각난 언어를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이끄는 데 필요한 예민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의사들이 인간의 목소리를 신뢰하지 않고, 따라서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자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설명할 때 의사들이 환자를 ‘신뢰할 수 없는 해설자’로 여기며 환자의 말에 별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사실 너무도 흔한 풍경이다. 물론 그럼에도 고통의 본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치료하는 의학적 시도들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왔고, 현재에도 활발히 진행 중임은 부인할 수 없다.
《고통받는 몸》의 집필에 큰 영감을 제공한 원천으로 스캐리가 언급한 국제앰네스티의 작업들에서도 언어의 문제는 막중하다. 《고통받는 몸》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자료인 고문 보고서를 비롯해 국제앰네스티의 여러 출판물, 상해 재판 기록에는 고통이 언어로 이행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고문 중단’을 이끄는 국네앰네스티의 능력의 핵심은 실제로 누군가의 고통이라는 현실을 고통받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앰네스티의 소식지를 우편으로 받는다고 할 때, 그 소식지의 말들은 누군가의 몸에서 경험되고 있는 고통을 전달할 수 있어야만 한다. 독자가 고문 관련 정보를 수용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독자가 고문 철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이외에도 법정, 예술 등을 통해 고통은 언어의 문턱으로 들어오게 된다. 소송 역시 고통을 표현하는 일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며, 이런 압력 아래에서 변호사는 언어의 발명자가 되어야 한다. 문학 작품들의 경우,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의 위안을 제공한다. 스캐리는 여러 예술가들의 이야기 속에서 고통이 표현되는 방식에 주목하며, 우리가 그 말들을 빌려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다. 고통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위기가 찾아올 때 이러한 이야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 파괴하기 그리고 창조하기
‘고통받는 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세계를) ‘파괴하기’와 ‘창조하기’이다. 크게 ‘파괴하기’와 ‘창조하기’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의 구성은 스캐리가 인간의 몸 그리고 몸이 겪는 고통들을 어떤 지평 위에서 이해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고통받는 몸》에서 독자들은 육체적 고통을 표현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창조라는 더 큰 틀 안으로 열려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캐리는 창조를 기본적으로 고통에서 촉발된 행위로 본다. 창조란 인간의 몸을 투사한 인공물을 만듦으로써 몸이 겪는 고통과 불편을 줄이려는 시도이며, 인류 문명 전체가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 행위의 정반대 지점에는 고문과 전쟁으로 대표되는 파괴 행위가 놓여 있다. 그러나 스캐리의 사유에 따르면, 파괴하기와 창조하기라는 단순한 대립 구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스캐리는 파괴하기를 창조하기와의 관계 속에서 좀 더 복잡하게 사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고문과 전쟁이라는 두 사건을 면밀히 분석하는 과정에서 스캐리는 파괴가 단순히 무언가를 없애거나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혹은 창조된 것을 모방하고 전유하여 뒤집고 거슬러 올라가면서 지우는 활동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창조가 대상/사물을 지어내고 실제화하는 과정, 즉 인공물을 고안해냄으로써 불편과 고통을 제거하고 인간의 신체를 연장하는 활동이라면, 고문과 전쟁은 역으로 그러한 인공물들을 해체해 고통을 생산한다. 인공물을 해체한다는 것은 벽, 창문, 거처, 의학, 법, 친구 등 문명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무기로 전환해 절멸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문명을 떠받치고 있던 모든 인공물들이 파괴를 위한 무기로 전도되는 것이다. 스캐리가 국제앰네스티의 고문 보고서에서 얻은 깨달음도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잔혹함의 구조가 창조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이라는 그 깨달음을 스캐리는 고문과 전쟁에 대한 정교한 분석으로 구체화했다.

* 성냥갑 안 작은 쪽지에 담긴 치유: “용기를!”
어느 순간부터 세계는 창조보다는 파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기술문명의 파괴성이 극에 달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문명과 문명이 고안한 갖가지 인공물들을 창조보다는 일종의 파괴로 바라보는 관점이 더욱 손쉽고 우세해진 것도 사실이다. 최첨단의 기술을 활용한 살상 무기들이 대규모로 생산되고, 인간의 창조 때문에 생태계의 고통이 늘어만 가고 있는 시대에 창조를 긍정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기는 한 것일까?
우리가 창조의 전망이 밝다고 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캐리의 사유를 매우 낯설게 느끼는 이유다. 스캐리는 창조 행위에 여전한 중요성과 가능성을 부여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스캐리는 창조를 취약성이라는 인간의 조건에 내재한 가능성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몸을 가짐으로써 고통받고 상처 입을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조건 속에서 인간이 창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이 창조를 문명 밖이 아닌 문명 안에서 상상한다. 지나친 생산과 팽창이 인간은 물론 여타의 생태계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퇴행이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해답 역시 ‘창조’에서 구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스캐리는 ‘속세’를 떠나거나 숲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자는 식의 비전을 결코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문명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문명의 인공물들을 치열하게 고심하고 궁리하는 와중에 치유와 구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고통받는 몸》이 전하는 극진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고통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겪는 육체적 고통은 문명 안에서, 문명이 고안해낸 인공물들에 의해 생겨나지만, 그 고통을 줄여나가는 것 역시 문명 안에서 가능하다. 고통의 언어를 만드는 활동에 대한 상세한 논의에서 알 수 있듯, 《고통받는 몸》은 자아와 세계가 붕괴하고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 다시 목소리와 세계를 회복하고자 할 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고통을 제거하는 데 필수적인 표현하고 형상화하고 재현하고 ‘대상화’하는 작업이 고통받고 있지 않은 다른 이들과 함께여야만 이뤄질 수 있다는 유의미한 통찰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들의 세계를 초월한 어딘가가 아닌 인간들 사이, 또는 인간들 안에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고통받는 몸》을 한 장의 쪽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한 일화를 떠올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랫동안 독방에 감금된 채 고문당한 죄수가 어느 날 빵 덩이 속에서 성냥갑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안에는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 딱 한 마디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용기를Coraggio!”. 《고통받는 몸》은 결국 세계가 파괴되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묻는 책이다. 그 단서는 바로 “용기를Coraggio!”이라는 한 마디, 고통 속에 있는 이에게 가닿는 누군가의 한 마디 말 속에 있다.

저 : 일레인 스캐리
하버드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첫 저서이자 대표작인 《고통받는 몸》(1985)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으면서 단숨에 석학의 반열에 올랐다. ‘독창적인 사유’의 학자 스캐리의 참고문헌은 영문학 정전은 물론 군 실무참고서, 미 해군 잡지와 항공기술 잡지에까지 이른다. 문학·법·군사·기술·정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고 광범위한 소재를 다루면서 집필과 강의를 해왔지만, 스캐리의 작업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인간의 고통을 향한 연민이 있다. 《고통받는 몸》부터 시작하여, 스캐리는 인간 몸이 훼손되는 상황과 사건들에 민감히 반응하면서 육체적 고통과 언어, 상상과 창조, 아름다움과 정의, 핵무기의 위험, 시민권과 동의 등의 관심사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일반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고통받는 몸》은 출간과 함께 지식인 사회의 뜨거운 관심과 찬사를 받았으며, 고통이 지니는 철학적·사회적·정치적 함의를 논할 때 필수 문헌이 됐다. 이후 스캐리의 주저로는 《재현에 저항하기Resisting Representation》(1994), 트루먼 커포티 문학비평상을 받은 《책으로 꿈꾸기Dreaming by the Book》(1999),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관하여On Beauty and Being Just》(1999), 《누가 나라를 수호했는가Who Defended the Country?》(2003), 《법의 지배, 인간의 실정Rule of Law, Misrule of Men》(2010), 《비상상황에서 사고하기Thinking in an Emergency》(2011), 《핵무기 군주제Thermonuclear Monarchy》(2014), 《그대에게 이름을 주다Naming Thy Name》(2016)가 있다.  

역 : 메이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연구활동가. 살을 빚어내는 말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만큼이나 말을 만드는 작업에 매혹과 책임도 느낀다. 개별 몸의 고통을 사람들 사이로 끌어내는 일의 (불)가능성에 천착해 질병과 고통에 관한 텍스트를 읽고 생산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옮긴 책으로 《아픈 몸을 살다》,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근간)가 있다.

* 오월의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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