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평화의 책들 :::

지은이: 조한진희
출판사: 동녘
2019/6/3(월)
조회: 42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조한진희 / 동녘 / 396쪽 / 16,000원 / 2019년.

자책감, 미안함, 미워하는 마음 말고 권리를!
아픈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몸과 질병에 관한 정보가 어느 때보다 넘쳐나지만, 건강을 둘러싼 사람들의 불안은 식을 줄 모른다. 정보가 아직 부족해서일까? 이 책은 이야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실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질병 서사’들은 가운데 한 토막이 뚝 끊겨 있다. 바로 아픈 사람의 ‘현재’에 관한 이야기다. 의사의 정보 전달이나 완치된 사람의 ‘과거형 이야기’는 흔하지만, 정작 당사자의 이야기는 드물다.

이 책은 당사자의 언어로 아픈 몸을 이야기한다. 열정적으로 일하며 부지런히 인생 계획을 세우는 데 여념이 없던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늘 피곤하고 무거운 자신의 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인생의 장면이 펼쳐진다. 바로 암 진단이다. 그 후 일상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의사도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는 통증들, 남들에게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시간 빈곤’, 관심을 가장한 간섭들, 무의식중에 던져지는 수많은 차별의 말들…. 질병과 함께 사는 것은 “어항 속에 돌 하나 더 얹어지는 것이 아니라 핏물 한 컵이 부어지면서 그 물의 밀도가 변하고 그에 따라 생태계가 바뀌는 일”이었다.
저자는 어느 순간부터 “반드시 건강을 되찾으라”는 격려의 말도 불편하게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과 똑같은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건강 중심의 말들은 깊은 소외감을 안겨줄 뿐이었다.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 싶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삶을 온전히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픈 사람에게는 ‘건강해질 권리’말고도 당장의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한 다른 권리들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은 아픈 몸을 둘러싼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비(非)건강’이 아니라 ‘탈(脫)건강’이다!
내 몸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묻기

이 책은 ‘건강한 몸’, ‘정상의 몸’이란 과연 어떤 상태를 뜻하는지,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런 기준을 누가 정하고 있는지도 묻는다. 흔히 사회활동에 무리가 없으면 건강하다고 하지만, 노동시간이 길고 노동강도가 높은 것으로 악명 높은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병이 없으면 건강한 것이라는 ‘상식’은 또 어떤가? 환경오염은 나날이 심해지는데 평균수명은 더 길어진 오늘날, 이런저런 질병을 안고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저자는 사람마다 질병의 양상이나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남성 몸을 기준으로 의약품이 개발되거나 여성 질환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소홀히 이루어져왔다는 점을 짚으며, 병명을 진단받기 전이나 진단받지 못하는 통증 또한 환자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아픈 사람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의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보도록 권한다. 갑상선암 과잉진료 논란이 불거지기 전, 갑상선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이 한창 유행할 때 저자가 자신의 의료 가치관에 따라 부분절제 수술을 받기까지의 과정, 병원에 갈 때마다 인격체가 아니라 장기 부위별로 취급받는 느낌에 지쳐 일본의 병원을 방문했던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정상과 표준, 그리고 건강과 의료의 기준이 사회적으로 결정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이러한 사례들은 독자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꾸준히 질문하는 태도를 놓지 않도록 이끈다.

그렇다면 건강과 관련된 현재의 많은 기준들은 쓸모없다는 뜻일까? 중요한 것은 ‘비非건강’(건강을 벗어던지고 질병을 입는 것)이 아니라 ‘탈脫건강’(건강 자체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자는 것)이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곰씹어볼 만하다.

아프다, 그래서 나는 춤춘다!
잘 아프기 위해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

이 책은 잘 아프기 위해 일상에서 시도해볼 만한 것들, 아픈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궁금한 이들이 알아두면 좋을 정보도 제공한다. ‘몸치’였던 저자는 아프고 난 뒤부터 춤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통증을 느끼는 감각만 남아 있던 몸에 새로운 감각을 깨운 좋은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또 아픈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데, 이는 ‘질병 세계’의 언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오히려 질병뿐 아니라 나이, 성별, 장애 등을 포괄한 ‘다양한 몸’의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아픈 사람을 대할 때도, ‘생각해서 말해주는’ 많은 정보들은 아픈 사람에게 혼란을 주거나 오히려 마음을 버겁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한다. 긍정적인 자세로 노력하면 나을 수 있다는 말 역시 아픈 사람의 힘겨운 상황을 ‘노력’이라는 또 다른 기준으로 옥죄는 것이 될 수 있다. 질병이 모두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착각에서 튀어나오는 비수 같은 말들(“그 사람은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래?”, “꾀병 아니야?”), 예민하다는 지적이나 밝은 표정을 지으라는 충고도 아픈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남편과 부모님만 서명할 수 있는 수술동의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생활동반자법’ 제정, ‘가구별 영향평가’ 제도, 공동 돌봄을 위한 ‘건강 두레’, 돌봄 노동 보험 상품 개발 등 아픈 1인 가구에 맞춘 다양한 정책 제안이나, 동네 주치의 제도, 양·한방 통합진료 시스템 확보와 같은 큰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자신의 아픈 몸에서 출발하지만 다양한 몸에 대한 존중,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것들로 초점을 넓혀가는 이 책에서, 위로를 받고 희망을 발견하는 건 어쩌면 아픈 사람보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저 : 조한진희(반다)
1990년대 중반 격렬한 파도 속에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사회단체 활동가, 비혼주의자, 채식주의자, 1인 가구로 사는 게 팍팍할 때마다 다정한 텃밭이 십 년 넘게 곁을 내어주고 있다.

페미니스트로서 정상성을 질문하다가 장애인운동을 만났고, 탈식민페미니스트로서 팔레스타인운동(내셔널리즘, 전쟁)을 만났다. 연결성을 중시하고, 영역과 형식에 갇히지 않는 활동을 지향한다. 2000년 여성민우회를 시작으로 사회단체들에서 상근했고, 아픈 몸이 된 뒤로는 주로 비상임위원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팔레스타인 현장 활동 이후 건강이 악화되었고, 투병과 완치 사이의 몸으로 십 년째 경력단절을 반복하고 있다. 초기 투병을 마치고는 KBS 3라디오에서 몇 년간 인권 관련 영화와 책을 소개하는 게스트로 출연해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연명했고, 아픈 몸에 조금 익숙해진 뒤에는 페미니즘 저널 《일다》와 시사월간지 《워커스》 등에서 ‘반다’라는 활동명으로 칼럼을 연재했다. 아프기 전에는 ‘다큐인’ 영상활동가로서 RTV 시사다큐 〈나는 장애인이다〉를 시작으로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바 있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동료들과 도서 《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를 함께 썼다.

* 동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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