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평화의 책들 :::

지은이: 유상균
출판사: 플루토
2018/7/30(월)
조회: 133
시민의 물리학  


시민의 물리학
유상균 / 플루토 / 312쪽 / 16,500원 / 2018년.

시민과 물리학의 낯선 조합?

이 책의 제목인 ‘시민의 물리학’에서 ‘시민’과 ‘물리학’의 조합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면? 우선 ‘시민’이란 단순히 ‘시(市)’에 사는 구성원을 뜻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한 도시를 넘어 한 국가, 또는 국가마저 넘는 범위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인 권리를 갖고 그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동시에 가지고 있는 권리를 제대로,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하는 의무도 갖고 있다. ‘시민정신’이나 ‘시민혁명’의 ‘시민’이 이런 의미의 시민일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과학(물리학이 원래 자연을 탐구하는 오래된 학문이므로)과 시민이 만난다.

깨어 있는 시민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되어왔다. 가깝게는 지난 2016년 촛불집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과학 역시 그렇다. 과학의 역사는 세상을 바꿔온 혁명의 역사다. 과학은 한 단계씩 발전할 때마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해주었고, 인류의 역사를 바꿨다. 지동설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몰아냈고, 진화론은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박탈했으며, 만유인력 법칙은 분리되었던 하늘과 땅의 세계를 통합시켰고, 상대성이론은 절대 시공간의 가능성을 끝내버렸으며, 양자역학은 우주가 관찰자와 무관하게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뉴턴의 세계관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이제 현대과학은 기존의 관점을 또 한 번 넘어서 물질과 생명과 인간을 연결 짓는 또 다른 변화의 물줄기를 만들고 있다.

합리적 태도, 비판적 입장, 개방적 자세, 보편성이 과학이 가진 미덕이다. 이러한 과학의 특성이 없었다면 과학은 지금까지 발전해올 수가 없었고, 우리는 여전히 몇 천 년 전 조상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시민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우리 시민이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포용력 넘치는 개방성과 보편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과연 지금 같은 기본권을 누리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시민이라면 알아야 할 ‘과학’ 갖춰야 할 ‘과학정신’

몇 년 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비극이 있었다. 바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몇 십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회사에서는 제품에 들어간 물질의 유해성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가장 큰 문제는 그 물질을 조사한 후 안전성을 보증해준 과학자들이다. 실제로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전문가 집단에 대한 맹신이 너무나 위험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현대사회가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사회이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사례는 부지기수였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보통 사람이라면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처럼 어려운 과학지식, 그 맹점을 파고들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주장을 하며 사리사욕만 챙기는 일부 전문가 집단들. 이들이 우리 시민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는 게 과격하기만 한 주장일까?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신기술, 신제품의 위해성을 알기 위해 모든 과학지식을 다 이해하면 좋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의심해볼 수는 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거다. 시민이라면 알아야 할 과학은 과학지식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바로 ‘과학한다는 것’의 본질인 ‘과학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2,500년 동안의 물리학 혁명들, 세계관의 혁명들

상당히 거창하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시민의 물리학』은 물리학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물리학의 기본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게 핵심 목표인 정통 물리학 책이다. 다만 어려운 이론과 법칙, 복잡한 수식이 아니라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역사를 통해 설명한다. 더불어 지금까지의 물리학을 세워온 인류의 지성들이 ‘당대 진리’에 대한 비판적 생각과 합리적 의심이 없었다면, 상식에 반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에 개방적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물리학과 과학은 결코 없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물리학은 2,500년 전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시작해 몇 번의 ‘혁명’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과학이 혁명을 거치면서 세상 보는 눈을 바꿀 때마다 인류는 세상 보는 눈을 변화시켰다. 과학 발전의 역사는 곧 혁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잠깐! 다른 과학 분야도 많은데 하필 물리학이냐고? 물리학은 본래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지금은 물리학 분야 자체도 많이 세분화되어 있지만, 근대과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은 곧 물리학이었다. 자연을 살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물리학』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까지 멀리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이유는 이때 ‘과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자연에 대해 인간을 지배하는 존재, 의심을 품을 여지도 없이 그냥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탈레스를 위시해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주어진 그대로 보기를 거부했다. 합리성과 비판성이라는 과학정신의 시작이자 과학의 시작이다. 당대 많은 철학자들이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펼쳤지만 중요한 건 ‘의심’과 ‘질문’이기에 이들은 ‘과학의 문을 열어젖힌’ 사람들이 맞다!(1장)

하지만 그리스가 로마에 의해 멸망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과학은 정체를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 사이 그리스 문헌들을 끊임없이 번역하고 연구한 아랍의 과학자들과 실용적인 수학과 측정을 토대로 자연현상을 이해하려 했던 실증적 장인들 덕분에 16세기에 이르러 갈릴레이, 케플러, 데카르트 등의 거인의 어깨 위 우뚝 선 뉴턴이 등장할 수 있었다. 만유인력 법칙과 뉴턴의 운동법칙 세 가지로 이전까지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젖힌 뉴턴 역학의 등장이다.(2장) 이어 서로 별개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전기와 자기현상, 그리고 빛까지 통합시킨 전자기학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자연을 발견한다. 전자기학의 등장은 고전물리학의 완성과 동시에 현대물리학으로 넘어가는 디딤돌이 되어주었다.(3장)

바로 ‘빛’에 대한 호기심이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세우게 해주었고(4장), 플랑크와 보어를 비롯해 많은 젊은 학자들이 원자 같은 아주 작은 입자의 세계에 관해 고민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5장).

그리고 이제 인류는 또 다른 과학혁명을 마주하려고 한다. 바로 복잡계 과학의 등장이다. 고전역학이든 상대성이론이든 양자역학이든 잘 선택된 대상 두 개에 대해서만 완벽하게 운동을 기술할 수 있다. 하지만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세상은 두 개의 상호작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인류는 컴퓨터라는 기술의 발전으로 두 개가 넘는 세상에 대해서도 기술할 있게 되었다. 그것이 열역학과 카오스이론으로 대표되는 복잡계 과학이다. 복잡계 과학의 혁명성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과학으로 기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도시와 인구와의 관계, 지진이 일어나는 횟수와 규모와의 관계, 지구 역사에서 있었던 대량 멸종의 강도와 빈도, 인간이 일으킨 전쟁의 규모와 빈도의 관계 등 그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에는 과학의 영역이 아닌 곳마저도 과학의 영역에 포함되고 있다(6장).

『시민의 물리학』은 이렇듯 고대 그리스에서 뉴턴의 고전역학을 거쳐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최근의 복잡계 과학까지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혁명적 발전을 따라가면서 물리학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물리학 역사의 ‘혁명’적 관점을 짚어가면서 시민인 우리가 과학정신을 갖춰야 하는 이유와 그럴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시한다.

농사짓는 물리학자의 성실한 시도

『시민의 물리학』의 저자인 유상균은 경남 함양에서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자 일주일의 적지 않은 시간을 강의를 위해 서울로, 전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물리학자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물리학자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목격하면서 자연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한다. 환경과 생태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농사를 짓고, 물리학을 넘어 여러 영역의 사람들과 함께 부단히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대학 졸업 후 일찍 자리잡아 교수가 되었지만, 교수 자리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미국 유학 후에는 대안대학인 경남 함양의 녹색대학교, 그리고 지금은 서울의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꿈으로 가득차 있다. 대부분이 과학에 공포감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저자의 강의를 들으면서 과학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 ‘창작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저자 유상균의 쉽지만 예리하고, 푸근하지만 묵직한 설명을 읽으면 과학과 물리학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저 : 유상균
연구실뿐 아니라 생명을 일구는 들녘에서, 그리고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물리학자다. 20세기까지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이론물리학의 기초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는 것을 최대 가치로 여기며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보냈다. 그러나 대전환기인 21세기에 자본주의의 중심부인 미국에서 세상의 갖가지 문제들을 목격하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생하는 건강한 세계를 만드는 데 미력이나마 바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자연에 더 다가갈 수 있는 농촌에 살면서 물리학을 디딤돌삼아 삶과 학문이 조화를 이루며 자유로운 개인들이 공감하고 협력하는 대안대학 공간을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어렵고 딱딱한 물리학이 사실은 매우 재미있는 학문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대안사회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학문임을 대안대학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스스로도 차가운 머리뿐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또 변화시키는 데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서남대학교 교수가 되었지만, 사직한 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어바나-샴페인) 앤소니 레겟Anthony Leggett(200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그룹에서 3년간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귀국한 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대학인 함양의 녹색대학교에 합류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농사를 짓고, 물리학뿐 아니라 동양고전, 철학, 생태에 대해 공부하고 있으며, 전북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 그리고 2015년 서울에서 개교한 지식순환협동조합(지순협) 대안대학에 참여하고 있다.
녹색대학교에서는 기초교양과정을 담당하면서 ‘물질과 생명’, ‘천지인’, ‘대안문명의 탐색’ 등을 강의했고, 지순협 대안대학에서는 ‘물질과 우주’, ‘엔트로피와 생명’, ‘지구적 위기와 적녹보라 패러다임’ 등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생명,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등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대중강의를 진행했다.

* 플루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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