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평화의 책들 :::

지은이: 이반 일리치
출판사: 사월의책
2018/7/23(월)
조회: 196
깨달음의 혁명  


깨달음의 혁명
이반 일리치 / 허택 옮김 / 사월의책 / 308쪽 / 18,000원 / 2018년.

■ 복종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깨어있는 시민만이 세상을 바꾼다
- 성장이 가져온 불평등을 넘어 인간을 회복하는 제도 혁명의 길!

‘더 타임스’는 그를 “20세기 후반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라 불렀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사상을 “가장 인본적인 급진주의”(humanist radicalism)라 평했다. 평화, 평등, 생태, 반성장주의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에 대한 평이다. 이 책 『깨달음의 혁명』은 일리치 사상과 활동의 최초 청사진을 담은 책이다. 1960~70년대에 걸쳐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12편의 글을 모아 펴낸 일리치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일리치는 이 책에서 학교교육, 교회, 경제개발, 미국의 전쟁개입 등 1960년대 이후 현대 사회를 움직여온 각종 제도들과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폭로하고, 깨어있는 시민의 저항을 촉구한다. 학교교육이 계급 이동의 불가능한 꿈을 내세워 쭉정이 골라내기의 수단이 된 현실, 교회가 성직자의 기득권만을 보장하는 제도로 추락한 이유, 나아가 인간의 타고난 자율적 삶이 발전, 복지, 원조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 뒤에서 어떻게 상품 소비를 위한 산업주의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지를 가차 없이 폭로한다.

저자는 다수를 위한다는 구호 아래 소수에게만 이익을 몰아주는 ‘제도들’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제도 혁명을 위한 호소”(A Call for Institutional Revolution)라는 책의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엘리트들과 소수 계급과 부자나라들이 고안하고 강요하는 제도들, 현대의 빛나는 성과처럼 취급되는 거짓 발전의 구호들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회복하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일리치는 이 모든 제도의 억압과 허구적 선전에서 벗어나는 길은 시민의 깨달음, 곧 시민들 각자가 일으키는 ‘문화 혁명’에 있다고 본다. 깨어있는 시민의 탄생을 기쁨으로 축하하는 책이다.

■ 그들이 섬기는 ‘제도’의 진짜 의미

이 책 『깨달음의 혁명』(Celebration of Awareness)의 원제목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깨어있음에 대한 예찬”쯤 될 것이다. 시민의 자각을 호소하고 그것을 축하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의 자각’이란 현대사회가 경제성장과 풍요의 겉치레 아래 숨기고 있는 지독한 불평등, 인간성 말살, 전체주의화된 권력에 대한 깨달음을 말한다. 저자는 그저 권력의 자리바꿈에 그쳤던 과거의 사회주의 혁명으로는 이런 현대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말하자면 풀뿌리 민중의 자각에서 출발하는 문화적 혁명만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제도 혁명을 위한 호소’를 부제로 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리치가 이 책에서 주로 문제 삼는 제도적 억압들로는 학교교육, 교회제도, 발전주의 경제, 제3세계 경제원조, 미국의 전쟁개입 등을 들 수 있다. 일리치는 이후에 의료, 에너지, 전문가주의, 노동, 젠더 문제 등으로 시야를 넓히지만, 이 책에서 최초로 보여준 밑그림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 밑그림이란 (1) 끝없는 성장의 추구는 반드시 사회적 다수인 약자들에 대한 착취와 불평등을 낳고, (2) 제도는 그 제도 운영자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며, (3) 이 모든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의 무능력은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다.

■ 학교, 교회, 경제원조 - 독점과 차별을 위한 제도들

이러한 제도적 타락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학교교육이다. 모두가 공평하게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지도 못하는 나라가 일정 연한의 학교교육을 의무화하면 그 즉시 교육에 의한 차별이 발생한다. 아무리 국가가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해도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하느라,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느라, 나아가 교육에 쏟는 뒷받침(학원 같은) 때문에 교육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학교는 ‘수월성’과 ‘학력평가’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소수를 발탁하고 사회적으로 유리한 출발을 보장한다. 이렇게 하여 대다수는 열등한 사람이나 탈락자가 되는데, 이 대다수가 처음부터 사회적 약자임은 분명하다. 결국 학교라는 제도는 교사, 관리자, 정책입안자, 교육산업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뿐, ‘교육을 통한 입신출세’는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제8장, 제9장 참조]

마찬가지 논리로 오늘의 교회(주로 가톨릭교회) 역시 하나의 제도로서 ‘카르텔’을 구성한다. 성직자 독신주의, 성직자의 사제직 독점이 그 카르텔을 만드는 주요 수단이다. 신성(神聖)과 순결로 벽을 쌓고는, 교회에 모이는 돈과 권력의 대부분을 성직자들의 신분보장을 위해 쓴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점점 신자들의 신뢰를 잃고, 책임감과 자부심을 잃은 성직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하는 것은 교회의 이런 독점에 있다는 것이다. [제6장, 제7장 참조]

한편 1960년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이 결성한 ‘진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gress)은 이러한 제도적 강요를 국제적 차원에서 실행한 것이다. 풍요와 발전을 기치로 내건 이 동맹은 미국 중산층의 생활방식을 제3세계에 강요하고, 경제수준에 맞지도 않는 기술과 설비를 수출하여 토착산업을 고사시키고, 가난한 이들의 생활에 맞지도 않는 선진국 상품의 소비를 강요함으로써, 결국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 개발도상국 상층부만 발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과 미국 대도시 슬럼과 제3세계라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전쟁, 복지, 원조 등으로 얼굴을 달리한 채 벌어지는 ‘진보’의 강요는, 결국 선진국의 상품 공급자들, 기업들, 자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자는 강하게 질타한다. [제2장, 제11장 참조]

이러한 ‘발전’의 제도들은 다른 세부 문제들에서도 똑같은 역설을 빚어낸다. 산아제한으로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구호는 이미 가족규모를 설계할 수 있는 대도시 화이트컬러들에게만 도움이 될 뿐, 피폐한 농촌 민중들에게 아무런 생활 개선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교회의 자선 활동은 선교사들에게 월급 줄 기회를 만들고 교회의 권력을 늘리며 제3세계 주교들의 권한만 강화시키는 데 이용된다. [제5장, 제10장 참조]

■ 무익한 성장의 꿈을 버리고 ‘인간’을 회복하라

저자 이반 일리치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우선 ‘성장’의 본질을 되묻는 것이다.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다음으로는 성장이 숨긴 목표가 법적, 정치적 제도들과 이데올로기로 고착화되어 민중들에게 강요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제도들은 그 자체로 무능과 저효율의 표본이기도 하다. 애초에 설계한 목표는 간 데 없이 제도의 극소수 구성원과 관리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변모해버렸기 때문이다. 학교가 학업 성취는커녕 학력 미달자만 양산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위한 대안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의 ‘문화 혁명’을 주창한다. 일리치가 말하는 문화 혁명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리치는 이렇게 말한다. “제도들은 오늘날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물품, 서비스, 복지제도의 종류들을 지시하고 감독한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에 대한 우리 자신의 통제력을 회복하는 길은 문화 혁명과 제도 혁명밖에 없다. 소수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억지로 제도를 발전시킴으로써 일으키는 폭력은 오로지 이런 혁명으로써만 막을 수 있다.” [제12장 참조]

■ 인간의 타고난 능력과 실존적 자유에 대한 깊은 신뢰

이반 일리치의 이런 생각에는 인간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와 희망이 숨어 있다. 인간 삶의 의미나 실존의 가치는 풍요나 제도로는 성취할 수 없고, 오로지 타고난 그의 자율성을 보장할 때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 개혁은 가장 인간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으로만 가능하다. 에리히 프롬이 이 책 머리말에서 이반 일리치의 사상을 “인본적 급진주의”(humanist radicalism)이라 규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리치가 이 책 마지막에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말은 일리치 사상의 근본적인 핵심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그들은 쓸모 있는 것만 만들고 싶어 하지만, 쓸모 있는 물건을 너무 많이 생산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사실은 잊고 있다.” 이 ‘쓸모’가 누구를 위한 쓸모인지는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저 : 이반 일리치 Ivan Illich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교황청 국제부 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빈민가의 아일랜드-푸에르토리코인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다. 1956년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 대학 부총장이 되었고, 1961~1976년에는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 일종의 대안 대학인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하여 연구와 사상적 교류를 이어갔다.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80년대 이후에는 독일 카셀 대학과 괴팅겐 대학 등에서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했다. 『깨달음의 혁명』 『학교 없는 사회』 『공생공락을 위한 도구』 『에너지와 공정성』 『의료의 한계』 『그림자 노동』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등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 급진적 비판을 가하는 책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사회, 경제, 역사, 철학, 언어, 여성 문제에도 깊은 통찰들을 남겼다. 2002년 12월 2일 독일 브레멘에서 타계했다.  

역 : 허택
이반 일리치의 생존한 동료인 볼프강 작스, 더글러스 러미스 등과 교류하며 일리치의 저서를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왔다.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와 『젠더』(근간)을 번역했고,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를 편집, 출간했다. 출판사 ‘느린걸음’의 대표로 일하면서 E. F. 슈마허의 『굿 워크』, 박노해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와 『다른 길』 등 여러 책을 출간했다. 현재는 이반 일리치 전기를 쓰고 있다.

* 사월의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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