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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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찬드라 구릉, 만났습니다 -2001.4.27  
다녀와서야 게시판을 통해 늦은 인사를 드렸지만, 왕풀님과 천샘 꿋꿋씨, 그의 친구 홍나현(루피풀), 그리고 저, 이렇게 네 사람은 지난 3월23일, 네팔 히말라야에 갔다가 4월23일, 풀꽃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떠날 때, 밀린 일들로 인해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음을 우리 사이트에 자주 들르시는 풀씨 여러분께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모두들 잘 돌아왔건만, 델리를 경유하면서 부친 짐 2개가 증발해 버리는 불상사도 있었습니다. 인도-네팔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 애써 자위하고 있지만 그 속에 든 필름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드릴 소박한 선물들이 날아간 생각을 하면 마음 답답했습니다.

이번 히말라야행은 7회 풀꽃상 준비를 하기 전에 풀꽃세상 태동 이후, 특히 지난 2년여 동안 왕풀님께 쌓인 만성피로도 풀 겸, 더욱이 그분의 따님 꿋꿋씨와의 첫 여행이라 이때밖에 시간을 낼 수 없었던 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여행지가 히말라야였던 점은 지난 해 정신병원에 6년4개월여 감금되어 있던 네팔인 노동자 찬드라 구릉의 초대에 응하기 위했던 점도 있었습니다. 찬드라 구릉은 우리 책, <풀씨> 5집에 잘 소개되어 있듯이 음식점에서의 작은 시비로 파출서로 연행, 이후 행려병자-정신병자로 간주되어 그런 참혹한 인권유린을 당한 네팔 여성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우리 풀씨인 네팔인 케이피 시토우라를 통해 알게 된 후, 풀꽃세상은 그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작업을 했고, 그녀가 그런 여론작업의 결과 병원에서 나오게 되자, 그녀를 위로하는 세레모니를 풀꽃세상에서 만들었던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이근후 풀씨께서 당시 두 차례에 걸친 위로행사에 협조해 주신 점 또한 우리는 고맙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두 번째 위로의 시간 때, 찬드라 구릉은 우리에게 "우리나라 놀러 와!", 라고 말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던 것입니다. 그 말이 찬드라 구릉이 한 유일한 한국말이었던 것을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풀꽃세상에 대한 고마움을 그녀는 그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1년여 시간이 흐른 후, 네팔로 갔고 포카라를 경유해서 그녀가 말한 간드룽(GANDRUNG/K : '간드룩'이라고도 표기합니다), 그 한 마디 말만 의존해 지도를 찾아 안나푸르나로 들어가 마침내 지난 3월29일 간드룽을 찾아 찬드라 구릉을 만났습니다. 29일에 간드룽에 도착해서 찬드라를 찾았더니 그 아래 마을 김체(KIMCHE) 언저리에 그녀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안나푸르나의 네팔리 살림살이는 모두 트레커들이 다니는 외길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길 언저리의 모든 마을에서 찬드라 구릉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나푸르나 서킷 자체가 거대한 네팔 국립공원이지만, 그 외길은 외국인을 위한 길이기 이전의 그들 히말라야 산군의 네팔리들의 생활공간이지요. 그 길을 중심으로 수많은 네팔리들이 산악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데, 간드룽 언저리의 모든 네팔리들에게 찬드라 구릉은 한국에 가서 보상받을 수 없는 상처를 안은 여성으로서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외국인이든 누구든 편견없이 밝은 웃음으로 대하는 이들이건만, 찬드라 구릉 사건으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아주 나쁜 인상이 깊이 박혀 있는 곳이 바로 간드룽 언저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방문은 더욱 의미 있었고, 이유 있었습니다.

이튿날 3월30일, 다시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와 마침내 김체라는 곳 못 미쳐서 곱게 사리를 차려 입고 우리를 기다리는 찬드라 구릉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전날 간드룽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구릉족 한 사람이 공교롭게 찬드라 구릉과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밤길을 재촉해 찬드라에게 달려가 "한국에서 누군가 당신을 찾아왔고, 그들은 지금 간드룽에 있는데 내일 당신을 만나러 내려올 것"이라고 전했던 것입니다.

찬드라의 얼굴은 한국을 떠날 때와는 달리 아주 안정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멀리에서 손님이 왔다고, 아침부터 곱게 사리를 차려 입은 찬드라 구릉은 색이 많이 들어간 네팔 전통의상인 사리보다 더 아름답고 화사했습니다.
왕풀님과 찬드라는 마치 오래 보지 못한 여동생을 만난 듯이 서로 얼싸안았고, 꿋꿋씨와 홍나연 루피풀은 얼떨떨한 감동에 빠졌습니다. 찬드라를 만나 법석을 떠는 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네팔리들의 얼굴에는 밝고 환한 평화가 맴돌았습니다.
그녀를 따라 김체에서 20분간 숨이 턱에 차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당도한 찬드라의 고향마을에서 일어난 일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해발 3천 언저리의 티벳불교를 믿는 구릉족 마을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다 모였고, 우리는 한국에서 찬드라에게 광명을 찾아준 특별한 사람들로서 극진하고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찬드라는 음식을 만들었고, 마당의 닭들과 병아리들은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데 대해 이상하다는 듯이 때없이 꼬꼬닥거렸고, 마당에 세워진 룽다(불교도임을 나타내는 표지)는 다른 때보다 더 요란하게 바람에 펄럭였습니다. 마을 소년은 피리를 불었고, 일찍이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는 찬드라의 아버지는 행복하고 여유있는 얼굴로 동양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촌장인 그의 형과 함께 맞이했습니다.

찬드라는 한국에서 볼 때와는 달리 그지없이 행복하고 안정된 얼굴이었습니다. 그렇게 평안한 얼굴의 찬드라 구릉을 한국사회는 단지 언어가 통하지 않고 남루하다는 이유만으로 자그마치 6년4개월의 시간을 정신병자로 간주, 병원에 감금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금 한국정부와 한국인의 무례한 만행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했고, 떠날 때 케피 시토우라를 통해 공항에서 들었던 고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3차 재판결과에 대해 전했습니다.
찬드라와 나눈 이야기들, 마을 사람들의 소망에 대해서는 7회 풀꽃상 시상 이후에 발행해 드릴 풀씨 7집을 통해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좋은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고 쉰 뒤, 짧았지만 잊을 수 없는 축제의 시간을 마치고 마을을 떠날 때, 우리는 준비했던 약간의 위로금을 전달했고, 찬드라 구릉은 지난 해처럼 손수 만든 야크털로 만든 네팔 방석 3장을 우리에게 답례했습니다.(그런데, 네팔-인도 수하물 체계는 찬드라의 선물이 든 가방을 우리로부터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교훈도 알맹이도 없는 수하물 분실사고일 뿐이었지만, 속 상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습니다.)

일단 네가티브 사진으로 찍은 사진만 이번 기회에 선보이고, 슬라이드로 찍은 사진은 후일 인화되는 대로, 다시 올릴 것이고 <풀씨>7집에 소개하겠습니다.(이상한 일이지만, 다른 필름 50여 통은 분실했으나, 찬드라 구릉 마을에서 찍었던 슬라이드 2통은 제 개인 백에 보관되어 무사히 지니고 왔습니다. 그 속에 지금 소개해 드리는 것보다 좋은 사진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이후, 카트만두에 계시는 금정스님과 김홍성 풀씨의 도움으로 기자를 만나, 찬드라를 만난 취재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네팔을 떠나기 하루 전이었는데, 기자는 우리가 다음날 네팔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신문을 보게 해 주고 싶었는지, 이튿날 1면 하단의 커다란 4단 기사(?)로 우리 기사를 게재해 주었습니다. 마침 네팔은 수상의 뇌물사건과 공산당과 Maoist들의 왕정철폐, 수상하야를 외치는 데모로 연일 어수선한 정국이라 기사가 넘치는 즈음이었는데도, 신문의 1면에 우리가 찬드라 구릉을 방문해서 좋은 시간을 나눈 일을 다뤄준 일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네팔 분들이 입을 모았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다녀왔다는 The Kathmandu Post지의  Binaj Gurubacharya 기자, 그리고 통역에 애쓴 꿋꿋씨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래 영문은 기사 전문입니다. 풀꽃세상이 외국 신문, 그것도 네팔처럼 그들이 꿈꾸는 코리안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가난한 나라(?)'의 신문에 실리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풀꽃세상의 공존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생각과 실천이 이번 기회에 안나푸르나 산군에도 널리 퍼져 이민족과 함께 살기에 서툴고 무례했던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이 조금이라도 희석될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 그래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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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dra Kumari recovers from her trauma

■ By Binaj Gurubacharya

----KATHMANDU, April 21

Since rescued from a mental asylum in South Korea last year, Chandra Kumari Gurung has been living at her home in the foothills of Mt. Annapurna recovering from the trauma.
Though there was nothing wrong with her and she was in perfect psychological state, she was forced to live in a mental institute for over six years until she was released in April last year.
Now, human rights groups backed by the Nature Trail, the organization that picked up her case and helped rescue her, are suing the Korean government and seeking ample compensation for the loss of wages and the trauma that she faced during her time at the institute.
"We first came to know about the case from one of our members who is a Nepali. We were very angry at that she was forced to live in a mental asylum despite being in perfect health," said Sung-Kak Choi, co-director of Nature Trail: For the Beauty of this Earth.
They are suing the government for compensation amounting to US$ 65,000(Rs. 4.8 million) for lost wages for the six years.
Doctors at the institute failed to diagnose that she was okay and the whole episode was just a mistake. Since landing in South Korea in 1990, she had been slaving away at a textile factory and never had much of a chance to pick on the Korean language.
She was just one of the thousands of immigrants workers who leave their homes with their dreams and fly to foreign countries in search of better paying jobs hoping to change their lives for the better.
Her whole life changed on the night of Nov. 21, 1993, when a quarrel in a restaurant landed her in the police station. The police failing to understand what she was saying presumed she was mentally unstable and turned her over to the mental asylum.
She probably would have remained there if it had not been for another Nepali man living in Korea, KP Sitaula, who told the case to Nature Trail, an environmental organization working for the better of the world.
It was during a press conference called for the media to meet Pushkar Shah. the Nepali cyclist who is peddling around the world, that the organization announced about the case.
Pressured from media coverage, Chandra Kumari was finally released by the authorities and her father was also flown to South Korea with the help of Nepalis living there for the reunion.
Now exactly a year later, members of this organization trekked to her village near Ghandruk, on the famous Annapurna trekking route to visit the woman they helped rescue.
"When we first saw her at the mental institute in Korea she did not have any expression and all she had was terror and fear reflect in her face... now she was smiling and was very happy. She was finally at a place where she belonged," said Sang-Myung Jeong, the director of Nature Trail.
It was just not Chandra Kumari who rejoiced the visit, but the whole Kimche village celebrated with feasts and festivities. A local boy even played a flute to welcome the visitors.
Ironically it may sound but it was an environmental group that came to the rescue and managed to safely return Chndra Kumari back to her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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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Chanda Kumari Gurung, center, at her home near Ghandruk with Sang-Myung Jeong(left) Sung-Kak Choi of the Nature Trail that helped her rescue from a mental asylum in South Korea.

번역문 - "찬드라 꾸마리가 상처로부터 치유받다"
비나지 구루파카야  기자  4.21.2001

작년, 한국에 있는 정신병원으로부터 풀려나온 이후, 찬드라 꾸마리 구릉은 안나푸르나 산기슭의 작은 언덕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아픔을 치유하며살아왔다. 비록 완벽한 정신상태로 어떠한 문제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찬드라는 작년 4월에 풀려나기 직전까지 6년이상을 정신병원에 구금되어 있었다.
이 사건을 접하게되어 그녀를 돕는데 일조한 '풀꽃세상'이라는 단체에 의해 연계된 인권단체들은 현재 한국정부를 고소하여 그녀가 정신병원에 구금되었던 기간동안 대면했던 정신적 고통과 손실된 임금에 대한 충분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
"우리는 처음에  우리 회원들중 한사람이었던 네팔인으로부터 이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양호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에 구금되었다는 사실에 분개했지요." '풀꽃세상을위한모임'의 사무처장인 최성각씨가 말한다.
단체들은 찬드라의 6년동안 벌지못한 임금에 달하는 미화 육만오천불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소송을 정부에게 건 상태이다.
병원의사들은 그녀가 양호하다는 것과 이 모든 웃지못할 농담이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1990년에 한국에 온 이후, 찬드라는 방직공장에서 착취당하며 일했고 한국어를 배울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 그녀는 삶을 바꾸려는 희망 하나로 꿈꾸며 집을 떠나 고임금의 직업을 찾아오는 수많은 이주자들중의 한명이었다.
그녀의 삶 전체는 1995년 11월 21일의 밤, 음식점에서 일어난 싸움이 그녀를 경찰서로 몰고간 순간, 바뀌었다.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   듣지못한 경찰은 그녀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추정했고, 따라서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넘겨버렸다. 그녀는 아마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풀꽃세상'이라는 환경단체에 이 사건을 이야기해준 케이피 시토우라라는 또다른 네팔인이 없었더라면 계속 거기에 머물렀을 것이다.
자전거로 세계를 돌아다니는 네팔인 싸이클주자인 푸쉬카르 사의 인터뷰를 위해 소집된 기자회견에서 풀꽃세상은 찬드라의 사건을 발표했다.
언론의 보도로 인한 압력속에서 찬드라 쿠마리는 결국엔 풀려나게 되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상봉을 위해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오게되었다.
정확하게 일년이 지난 지금,  이 단체의 멤버들은  유명한 안나푸르나 트렉킹 경로를 끼고있는 간두룩근처 그녀의 고향으로 자신들이 구출을 도와준 찬드라를 만나기 위해 트렉킹 경로를 밟았다.  
"우리가 찬드라를 한국의 정신병원에서 처음 보았을때 그녀에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표현도 없고, 대신 두려움과 공포만이 서려있었습니다. 이제는 찬드라가 미소를 지으며 매우 행복하네요. 자신이 속해있는 곳에 결국은 다시 오게되어서이지요." 풀꽃세상의 정상명 대표가 말한다. 이 방문을 기뻐한 이들은 찬드라 꾸마리뿐만이 아니라 축제와 향연으로 화답한 김체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었다. 이 마을의 소년은 피리를 가져와 이 방문객들을 반기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찬드라 꾸마리 구릉을 구출해 그녀의 집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낸 이들은 바로 환경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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