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연구소
2005/6/14(화)
조회: 27003
인디언과 다른 민족을 바라보는 칸트의 시각  
임마누엘 칸트라 하면 서양의 대표적인 철학자, 산책시간 잘 지킨 사람, 하늘의 별 내 마음속의 이성...운운 했던 영롱한(?) 말이 먼저 떠오르는 대단한 사람(유럽인)입니다. 그가 가진 다른 민족(인종)에 대한 견해를 살펴봅니다. 독일인(유럽인, 백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야만인이라는 편견에 깊이 빠져 있고, 백인중심의 인류관은 오만의 극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의 정의를 도맡아 세우겠다는 조지 부시는 손오공처럼 바위 틈에서 갑자기 돌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알 수 있습니다. -- 연구소


세상의 다른 지역으로 눈을 한번쯤 돌려보자면, 우리는 동양에서 가장 고상하지만 그럼에도 공상적인 것들에 곧잘 빠져버리는 감정의 소유자인 아라비아인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낯선 이들을 만나면 환대할뿐더러 또한 솔직하며 관대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라비아의 역사와 설화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들의 느낌은 놀랄 만한 것들과 항상 뒤섞여 있다. 그들의 뜨거운 상상력은 그들에게 사건들을 부자연스럽고도 뒤틀린 이미지들로 보여준다. 더욱이 그들의 종교도 대담무쌍하게 전개되었다. 아라비아인을 아시아의 스페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페르시아인은 아시아의 프랑스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들은 훌륭한 시인이며, 정중하고도 아주 세련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엄격하게 이슬람을 추종하지도 않으며, 유쾌함을 추구하는 [자기들의] 성정에 비추어 코란에 대한 대단히 완화된 해석을 받아들인다. 일본인은 어쩌면 아시아의 영국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마도 단호함, 즉 극단적인 완강함에 빠지고 마는 성격, 말하자면 죽음 앞에 용감히 맞서는 성격에서 볼 때 그러할 따름이다. 그것 외에 그들이 세련된 감정 자체를 가졌다는 증표는 거의 없다. 인도인은 대개 기괴함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종의 취미는 공상적인 것으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들의 종교는 기괴함에서 나온다. 무서운 형상을 한 신상(神像), 강력한 원숭이 신 하누만의 터무니없는 이빨, 떠돌이 승려의 부자연스러운 수도 등이 이런 취미에 속한다. 남편의 주검을 화장하는 장작더미 속에 부인을 일부러 던져 넣어 희생시키는 일은 몸서리쳐지는 대담함이다. 중국인의 장황하고도 노련한 찬사는 얼마나 어리석은 기괴함인가. 또한 그들의 회화는 기괴하며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상하고도 부자연스러운 형태를 띠고 있다. 게다가 그 회화의 기괴함은 유서가 깊은데, 이는 그것이 어떤 민족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태고의 관습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니그로는 본래 유치함을 넘어설 만한 감정이라고는 갖고 있지 못하다. 어떤 니그로가 재능을 보여주었다는 한 가지 예를 인용한 모든 이들에게 흄은 이의를 제기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자신의 조국에서 다른 나라로 끌려온 수십만 명의 흑인들 중에서, 물론 많은 수가 자유를 얻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서나 학문에서, 아니면 다른 훌륭한 특성에서 어떤 위대함을 보여주었던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백인들 중 몇몇은 밑바닥 삶에서 끈질기게 일어서서 빼어난 재능을 발휘함으로써 세상의 존경을 얻는다. 이처럼 두 인종간의 차이는 본질적이며, 그것은 피부색에서와 마찬가지로 심성의 역량에서도 크게 나타난다. 그들에게 만연된 물신숭배Fetisch의 종교는 인간 본성에서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기괴함으로 깊이 빠져들고 마는 어쩌면 일종의 우상숭배일 것이다. 깃털이나 소뿔, 조개, 혹은 몇 마디 말로도 신성해지는 여러 가지 흔한 일들이 신성에 대한 맹세에서 숭배와 기원의 대상이 된다. 흑인들은 너무도 허황되지만 니그로의 방식에서 그렇다. 그래서 그들은 요상한 말로 지껄이기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분명 매질만이 그들을 서로 흩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야만인들 중에서 북아메리카인만큼 숭고한 심성 특성 자체를 보여주는 민족도 없다. 그들은 명예에 대한 강한 감정을 갖고 있다. 또한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수백 마일이나 멀리 좇아갈 정도로 거친 모험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자기들만큼 강한 적에게 붙잡히면, 그 적도 끔찍한 고통을 주어 강제로 비겁한 탄식을 토로하게 하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극도로 조심한다. 그 외에도 캐나다 야만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솔직하고 성실하기도 하다. 믿지 못할만큼 저 먼 옛날부터 그랬다고 전해지는 바, 그들이 지키려는 우정은 모험적이고도 열정적이다. 캐나다 야만인들은 아주 당당하며, 자유가 지닌 모든 가치를 느껴 알고 있으며, 자기들에게 굴종을 느끼게 하는 그 어떤 상황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게끔 교육받는다. 리쿠르고스Lykorgos는 아마도 바로 위와 같은 야만인에게 법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섯 국가 중에서 한 명의 입법자라도 나타났더라면, 사람들은 신세계에서 스파르타 공화국 하나가 건국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아르고 호의 선원들이 한 일은 이러한 인디언의 출정과 거의 다르지 않으며, 이아손의 아티카쿨라쿨라Attakakullakulla의 앞에서 다름 아닌 그리스의 명예를 내세웠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이 모든 야만인들은 도덕적인 이해의 측면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고상하고도 아름다운 무례를 관대하게 용서하는 일이 덕망임을 알지 못하며 오히려 그것을 참을 수 없는 비겁함이라고 치부해버린다. 그들에게 용기는 가장 뛰어난 공덕이며 복수는 가장 달콤한 희열이다. 이 세상의 나머지 원주민들은 세련된 느낌에 부과되었을 심성 특성의 흔적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며, 특이한 냉담함이 이런 인종들의 특색을 만들어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성별 관계를 살펴보면, 오직 유럽인들만이 강력한 경향성의 감각적인 매력을 수많은 꽃들로 장식했으며, 그들만이 그것을 여러 도덕적인 것들과 엮어놓은 비밀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기분 좋은 상태를 넘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동방에 살고 있는 이들은 좋지 않은 취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런 충동들과 결합될 수 있는 도덕적인 아름다움에 관한 그 어떤 개념도 없다. 그 때문에 그들은 감각적인 쾌락의 가치조차도 완전히 잃어버리고, 궁녀들 역시 그들에게는 불안의 마르지 않는 원천일 뿐이다. 그들은 모든 달콤한 기괴함에 빠져드는데, 그 중에서도 상상 속의 보물은 그들이 가장 소중히 지키고 싶어 하는 최고의 것이다. 그것의 모든 가치는 오직 다음과 같은 것에서 성립한다. 즉 우리는 그것을 타파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 세계의 입장에서 사람들은 흔히 그것에 대해 지나치게 악의에 찬 의심을 품는다는 점, 게다가 그들은 그것을 부당하게 존속시키며 [그렇게 하기 위해] 대개는 혐오스러운 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하여 그것 여인들은 하녀이든 아니면 야만인적인데다가 의심도 많고 무능력하기까지 한 남편 밑에 있[는 부인이]든 항상 거기에 갇혀 지낸다. 과연 흑인이 살고 있는 땅에서는 어디를 가든 가장 심각한 노예 상태에 있는 여성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어떻게 그것에서 그 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용기 없는 자는 언제나 약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엄한 주인이다. 우리의 경우 그런 사람은 항상 부엌에 있는 독재자와 꼭 같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밖에서 사람을 직접 대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자기 아내를 거만하게 대하는 니그로 목수를 보고 라바Labat 신부가 꾸짖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너희 백인들은 정말 바보다. 무엇보다도 아내에게 그토록 많은 권리를 양보하고 있으니 말이다. 너희들은 아마 그녀가 너희를 미치게 만든 후에라야 불평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해볼 만한 무엇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간단히 말해 이 녀석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검다는 사실과, 그가 한 말은 멍청했다는 명백한 증거뿐일 것이다. 캐나다 야만인이야말로 이 점에서 어쩌면 교양을 갖춘 우리 세계를 능가할지도 모르겠다. [거기] 사람들은 부인에게 비굴한 시중을 들게 하지 않는 듯 보여도, 그것은 단지 겉치레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로는 부인들이 명령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민족의 가장 중대 사안에 대해, 즉 전쟁을 할 것인지 아니면 평화를 지킬 것인지에 대해 모여서 협의를 하기도 한다. 그런 후 자기들의 대리인을 남성 협의회에 파견하는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대개 그 협의회의 목소리이다. 그래도 여성들은 이런 선택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집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시달리며 또한 남성들이 해야 할 모든 힘든 일들도 나눠 맡는 것이다.

--이마누엘 칸트 / 이재준譯 ,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책세상, 2005, 91~96쪽.  





산풀: 바로 이런 것을 '야만'이라 이름하는 것이겠지요. 머리에 가발을 얹은 그의 거짓된 '아름다움'에 절로 구토가 일어납니다. 이런 오만한 관념이 여전히 그들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한편으로는 내 속에 그런 씨앗은 없었는지 뜨거운 손으로 가슴을 짚어 봅니다... -[06/14-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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