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산풀
2005/4/11(월)
조회: 4085
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서정록(마지막회)  

[북미 원주민 이야기21]
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

검은호수 서정록

회의는 여러 사람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것입니다. 단순한 모임같지만 거기에는 참가자들의 영적인 태도와 그 사회의 문화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모두가 하나 되고 행복해지는 문화를 지향한다면 회의 방식 또한 그에 맞춰 사려 깊게 짜여질 필요가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여러 모로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언제나 '생명의 원', '원 안의 원'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원의 형태로 둥글게 둘러앉아 시계 방향으로 돌며 차례로 발언을 한 뒤, 다시 보충 발언을 하며 의견을 조정·통합해 가는 방식이지요. 북유라시아 유목민들의 후예인 북유럽인들은 이러한 회의 방식을 원탁 회의라 부르는데, 기본적인 원리는 대체로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의 화백 회의 역시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서구인들은 이러한 회의 방식을 고대 그리스의 회의 전통에 따라 '만장일치제'라 합니다. 하지만 만장 일치는 그다지 썩 좋은 표현은 아닌 듯싶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말이 모두 일치했다는 뜻은 있지만, 참가자가 원으로 둥글게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시계 방향으로 차례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둥글게 둘러앉아, 그것도 시계 방향으로 참가자 전원이 모두 발언을 한 뒤, 부족할 경우 다시 보충 발언을 하여 조정 ·통합하는 방식에는 원이 갖는 독특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이란 모든 참가자가 하나의 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와 함께 모두가 평등한 주권자라는 의미를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크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말하는 원(Talking Circle)'으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회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로쿼이 연합의 '평화의 법'에 기초한 회의 방식이 그것입니다. 전자가 일반적인 부족 회의의 방식이라면, 후자는 부족 연합의 형태를 갖고 있는 이로쿼이의 독특한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의 법은 미국의 연방 헌법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회의 방식 또한 전자의 회의 방식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이라면 전자의 회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전자의 회의 방식을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원으로 둘러앉는다. 모닥불이나 화롯불 등을 중심으로 둥글게 앉는다.
2. 동쪽으로부터 차례로 들어와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자리에 앉는다. 맨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이 '말하는 나무(Talking Stick)'를 들고 들어와 그 날 회의의 안건을 낸다.
3. 말하는 나무는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상징하며 이 나무를 가진 사람만이 발언을 할 수 있다. 말하는 나무를 가진 사람이 발언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 발언 시간의 길이에는 제한이 없다.
4. 발언한 사람은 말을 마친 뒤, 말하는 나무를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넘긴다(시계 방향으로). 말하는 나무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진실된 생각을 거짓이나 왜곡 없이 발언한다. 이 때 말할 것이 없거나, 자신보다 옆 사람이 더 적절한 발언을 해 줄 것이라 생각되면 말하는 나무를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곧바로 넘길 수 있다.
5. 말하는 나무가 시계 방향으로 일순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발언한 사람은 말하는 나무를 맨 처음 발언한 사람에게 다시 넘긴다. 말하는 원이 완성되고 나면, 맨 처음 발언한 사람은 말하는 나무를 한 차례 더 순환시킬 것인지, 아니면 순환을 중지하고 가운데에 갖다 놓을 것인지 결정한다. 한 차례의 순환만으로는 기본 발언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맨 처음 발언한 사람은 말하는 나무를 다시 한 바퀴 더 돌리며, 기본 발언이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말하는 나무를 원의 가운데에 갖다 놓는다.
6. 말하는 나무가 원의 가운데에 있을 때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지고 제자리에 와서 발언을 할 수 있다.
7. 발언하는 도중, 말하는 원에 참가한 사람들의 질의·응답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말하는 나무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질문을 하거나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다.
8. 회의 도중, 발언자의 순서나 회의 내용 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회의 전에 별도로 사회자 내지 진행자를 둘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처음에 말하는 나무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마지막으로 회의 내용을 마무리한다. 별도로 사회자가 있을 때는 시작과 마무리를 사회자가 한다.

이상이 북미 인디언들의 기본적인 회의 방식입니다. 전통 시대에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담뱃대에 불을 붙여 담배를 돌려 피우고 난 뒤에 회의를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참가자들의 생명의 숨결을 바침으로써 위대한 신령께 감사드리는 것과 함께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약속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참가자가 하나의 원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제요, 가족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옛날처럼 반드시 담뱃대를 피우지는 않는 듯합니다. 회의의 성격에 따라 피울 때도 있고, 피우지 않을 때도 있다는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회의 진행 방식에도 다소 융통성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말하는 나무를 일순하지 않고 곧바로 발언을 원하는 사람에게 넘기는 형태로 진행한다든지, 발언을 원할 때 자신이 발언을 할 수 있도록 말하는 나무를 요구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회의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든 다른 사람이 발언할 때는 반드시 침묵을 지킵니다. 그가 몇 시간, 아니 하루 종일 발언을 한다고 해도 인위적인 제지는 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나무는 보통 팔뚝 정도의 길이에 독수리 깃털을 달고 구슬이나 가죽끈으로 중요한 상징 문양 등을 장식한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나무일 필요는 없으며, 깃털이나 상징성이 있는 돌 같은 것도 무방합니다.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가는 참가자들이 그 가치와 의미를 서로 공유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다만, 말하는 원에 참석한 사람들은 반드시 다음의 내용을 지켜야 합니다.

1. 정직하게 가슴으로 말을 해야 하고,
2. 말할 때는 간략하고 짧게 하며,
3.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는 귀를 열고 경청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1. 인디언들은 종교 의례와 마찬가지로 회의할 때도 반드시 정화 의례를 합니다. 이 때 정화는 쑥이나 향초, 또는 시다(cedar, 서남부 지역은 향나무) 잎을 태운 향훈을 가지고 합니다. 이렇게 정화를 하는 이유는 회의 그 자체가 매우 영적인 행위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혹시라도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기운을 정화하기 위해 쑥이나 향초, 시다 등을 태워 정화를 하는 것입니다. 또다른 이유는 우리 안에 잠자는 영적인 지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2. 인디언들은 회의를 하기 전에 먼저, 그 날 참석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위대한 신령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다음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건만,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동물 가족, 식물 가족, 해와 달, 별, 산과 강 등 자연의 존재들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3. 다른 사람들이 발언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진지한 태도로 그 말을 듣습니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에 대한 공경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듣는 동안 말하는 사람의 발언 내용에 대해서 깊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생각을 이해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는 동안 한 개인의 발언은 말하는 원 전체의 것이 되고, 나아가 '사회적 명상'으로 확대됩니다. 사회적 명상이란 어떤 발언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깊이 숙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히 발언자의 의도를 넘어 좀더 넓은 차원에서 다각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명상은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디언들은 말하는 원에서 말한 것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말하는 원에 속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자연히 발언의 내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겠지요. 자신의 발언 내용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4. 회의를 통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 결정은 번복하지 않습니다. 잘못되었더라도 그대로 따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고, 그것은 다음 번 회의에서 수정이 됩니다.
다만, 결정된 내용이 자라나는 세대, 또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다음 세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다시 회의를 열어 잘못된 결정을 지체 없이 폐기합니다.
5. 회의를 마칠 때는 회의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지켜 주신 위대한 신령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참가한 모든 사람들과,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지만 회의에 함께 했던 자연의 존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사람은 물론, 동식물과 자연까지 모두 고려하는 심고원려(深顧遠慮)의 회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회의의 목표는 언제나 어머니 대지와 자연의 생태적 영적 질서에 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현대의 일반적인 회의 방식과는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서양의 브레인 스토밍처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인위적으로 짜내는 회의 방식과는 그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생물학적, 사회적, 우주적 차원의 관계 속에서 삽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관계는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을 일으키겠지요. 자연히 우리의 삶에 부조화와 불균형이 넘쳐날 테고요. 그래서 인디언들은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모두가 하나 되고 행복해지는 결론을 얻는 데 무엇보다 주안점을 둡니다. 이런 점은 현대의 기업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시대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추구한다면, 새로운 창조적인 아이디어보다는 어떻게 내 주위의 다른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다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인디언 문화에서는 말발을 세워 주는 문화가 없다는 점입니다.
인디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나를 내세우고 잘난 체하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침묵하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흔히 인디언들 보고 원시적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들은 말합니다. 아마도 자기들만큼 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 이들도 없을 거라고. 그만큼 그들은 많은 생각을 하며 삽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말발을 세워 주기보다는 오히려 너 자신을 낮추라고 가르칩니다. 늘 겸손하라고 말이지요. 대신, 말할 때는 늘 가슴으로 말하라고 가르칩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이지요.

셋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생태적, 생명적, 우주적 차원의 회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미 인디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서구의 민주주의는 인간 중심의 회의 방식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참여하여 투표하고, 회의를 합니다. 그러나 북미 인디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자연의 모든 동식물이 다 함께 참여하는 민주주의입니다. 마치 큰 나무가 있으면 그 아래 사람도 와서 쉬고, 벌레도 오고, 새들도 오고 짐승도 와서 쉬었다 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인디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생명(영혼)을 갖고 있고, 영적으로 평등하며,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과 식물, 자연의 존재들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물론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지요. 그러나 인디언들은 회의할 때 그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회의의 내용이 다음 세대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될 때는 지체없이 폐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다음은 이상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참고될까 싶어 두어 글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입니다.

1. 이로쿼이 연합의 오논다가족의 부족 어머니 오드리 쉐난도어가 1990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로 「지혜는 어떻게 오는가」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 열리고 있는 이 회의와 같은 방식으로는 모임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먼저 일일이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 다음, 공경의 마음을 전하고 감사의 말씀을 드린 뒤에야 이와 같은 모임을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모든 생명을 키워 주시는 어머니 대지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어머니 대지의 가슴에서 자라는 가장 키 작은 풀들을 생각합니다. 아울러 대지의 모든 식물과 숲과 물을 생각하고 물고기와 동물과 새들을 생각하고, 네 방향의 바람을 생각합니다. 그런 뒤에 모두 하나가 되어 우리의 마음과 공경과 감사의 뜻을 하늘에 보냅니다. 모든 생명의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할머니 달에게 우리의 마음을 보냅니다. 해와 별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보냅니다. 그리고 하늘의 신령한 존재들에게도 우리의 마음을 보냅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태초에 창조주가 주셨던 가르침들을 이 위대한 '생명의 원' 속에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이 되어 우리의 마음과 공경과 감사의 뜻을 신성한 생명의 원에게 보냅니다. 인간인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자유롭게 사용하는 물질을 포함한 그 모든 선물에 감사드려야 합니다(후략).

2. 다음은 나눔의 태도에 대한 인디언 추장들이 모여 회의를 한 내용의 서두 부분으로 『나누어 줌의 명예로움』이란 책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말하는 사람들이 인디언 방식으로 둥글게 둘러앉을 수 있도록 14개의 의자가 놓여졌다. 다만 동쪽에는 의자가 놓여지지 않았는데, 원의 동쪽을 열어 두기 위함이었다. 참가자 중의 한 사람이 위대한 신령에게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고, 동쪽의 남쪽에 앉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화는 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독수리 깃털을 가진 사람이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넘김으로써 시계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오직 독수리 깃털을 가진 사람만이 말할 수 있었다. 말하는 사람은 그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할 권리를 존중했으며,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 말하는 사람이 말을 끝내면 깃털은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넘겨졌고, 그렇게 해서 원이 완성된 뒤에는 말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독수리 깃털을 요구할 수 있었다.
말하는 사람들은 동쪽 방향을 통해서 들어왔다. 그들은 의자가 놓인 대로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며 원을 존중했다. 사람들은 한 사람씩 모두 의자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독수리 깃털을 들고 들어온 사람은 돈 코히스였다. 난로 옆의 바닥에 있는 커다란 전복조개 안에는 네 가지 색깔-붉은색, 검은색, 흰색, 노란색-의 천이 펼쳐져 있었다. 돈 코히스는 마른 가지와 잎에 불을 붙였다. 시다와 쑥과 향초의 향기로운 향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돈 코히스:
좋은 아침입니다. 모히간족의 말로 우리는 이렇게 인사합니다. '퀴나몬타쉬라마퀴아'. 그 말은 '창조주와 잘 지내십니까?' 또는 '영적으로 살고 있습니까?'라는 뜻이지요. 오늘 햇빛은 밝습니다. 우리들-여기 있는 분들과 여기 없는 모든 분들-을 모두 비추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는 우리가 모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 주신 창조주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민족을 위해, 그리고 우리와 이 행성에서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의 원주민들의 주는 것에 대한 전통적 지혜를 함께 나누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 균형과 조화 속에서 말하고 함께하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과 일 속에서 균형을 찾기를,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이 원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돈 코히스는
그의 독수리 깃털을 바로 왼쪽에 앉아 있는 로널드 웰즈에게 넘겼다.)

로널드 웰즈:
이 대화는 백인들 방식의 세미나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대화의 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원 안에는 위대한 신령이 들어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원을 이루는 사람들은 모두 평등합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똑같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말들은 가슴을 통해서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들은 나중에 그대로 고스란히 기록될 것이며,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원주민들의 구비 전통에 따라 전해질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인디언들의 지혜를 참고해서 우리가 좀더 성숙한 회의 문화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좀더 살기 좋고 모두가 하나 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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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록 /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이론만이 아닌 실천으로 함께 살기를 모색하던 중, 자연과 동화된 참된 삶을 살고 있는 북미 원주민 문화에 심취하게 되어, 그 사상과 문화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백제금동대향로』,『지금은 자연과 대화할 때』가 있습니다.

* 생태적인 세상, 아름다운 소통 「이장」, 2005년4월호.



사이풀: 그동안 참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04/13-01:16]-


왕풀: 검은호수 서정록님.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그동안 연재된 검은호수님의 글을 감사와 동시에 찬탄하는 마음으로 읽어왔던 왕풀,
고개숙여 인사 드립니다.
마지막회라니 매우 서운합니다.
검은호수님의 글은 연구소 사이트 '인디안 공부방'을 기품있게 꾸몄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제 영혼을 맑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여기 올려진 글들은 한 두번 읽고 끝나는 게 아니고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읽게될 것입니다.
밖에 일로 마음이 시끄러워지면 여기와서 조용히 몰두하여 한 두편 다시 읽고 마음의 평온을 회복하려 합니다.
아름다운 글을 연재해 여러 사람들이 읽게 해 주신 '이장'도 참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판을 두드리며 수고해주신 연구소의 산풀님, 정말 수고했습니다. -[04/25-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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