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언 공부 :::

이름: 산풀
2005/3/15(화)
조회: 3643
질문하는 법-서정록  
질문하는 법

검은 호수 서정록

인디언 교육의 핵심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제 스스로 삶의 지혜를 터득해 갈 수 있도록, 그래서 이 세상의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균형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그들 교육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은 필요하면 그때그때 배워서 사용할 수 있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는 남이 대신해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오직 삶의 경험만이 지혜를 가져다 준다고...
그래서 인디언들은 아이들에게 생활 속에서 다른 존재들을 공경하고 그들과 관계 맺는 법을 가르칩니다. 사냥할 때도 제일 약한 놈을 꼭 필요한 만큼만 잡도록 가르치고, 과실이나 뿌리를 채취할 때도 그 중 일부만 취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가져가도 이듬해에 더 번성할 수 있을 만큼 남겨 두도록 가르칩니다. 그래야 삶은 계속될 수 있고 함께 나눌 수 있기에...
그리고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가르칩니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행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말과 행위가 중한 것임을 스스로 깨우치게 합니다.
결코 지식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지혜를 얻으면 지식은 저절로 따라오는 법. 그래서 그들은 '질문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질문하는 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대로 질문만 할 줄 알아도 이미 절반을 안 거나 다름없다고...
다음은 찰스 이스트맨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회상입니다.

내가 열다섯 살 때까지 교육을 맡으셨던 나이 아저씨는 엄격한 훈련을 시키셨으며, 또한 훌륭한 교사였다. 아침에 내가 티피를 나설 때면 그 분은 말씀하셨다.
"불쌍한 막내야. 모든 사물을 꼼꼼히 살펴보거라."
그리고 저녁때, 내가 돌아오면 한 시간씩 내게 물으셨다.
"나무들은 어느 쪽 껍질의 색깔이 더 밝더냐? 어느쪽 가지들이 가장 균형 있게 자라더냐?"
뿐만 아니라, 그 분은 낮동안 처음 본 새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 설명하도록 하셨다. 때문에 나는 처음 만나는 새들에게 그들의 부리 색깔이나 모양, 그들의 울음소리와 생김새, 그리고 둥지의 위치 등을 살펴 이름을 붙여 주곤 했다. 그렇게 이름을 붙여 준 새들 중에 어떤 것들은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내가 새의 특징을 잘못 파악하였을 경우, 아저씨는 내게 정확한 새 이름을 가르쳐 주셨다. 어쩌다 정확한 새 이름을 맞추면 따뜻한 말로 격려해 주셨다.
내 좀 더 나이를 먹어 8살이나 9살쯤 되었을 때, 아저씨의 가르침은 더욱 깊어졌다. 예를 들어, 그 분은 이렇게 물으시곤 했다.
"저 쪽 호수에 물고기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그건 말이죠, 한낮에 녀석들이 파리를 잡아먹으려고 물 위로 뛰어오르거든요. 그래서 알았어요."
아저씨는 나의 자신 있는, 그러나 피상적인 대답에 미소를 지으시곤 했다.
"얕은 물 속에 모여 있는 작은 조약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물가의 모래바닥에 새겨진 작은 곡선이나 작은 모래 언덕들은 어떻게 해서 생겼지? 물고기를 잡아먹는 새들을 어디서 보았지? 호수에 물이 드나드는 곳은 이들과 어떤 관계가 있지?"
그 분은 내게 던진 그 많은 질문에 대해 내가 정확한 대답을 할 것을 기대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나를 관찰력이 뛰어난 훌륭한 학생으로 키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내게 말씀하시곤 했다.
"불쌍한 막내야, 늑대를 보고 잘 배워야 한다. 그 놈은 놀라서 목숨을 걸고 도망칠 때조차도 마지막 은신처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멈추어 주변을 한 번 더 살펴본단다. 그러니 너도 사물을 볼 때 반드시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해라."

인디언 아이들의 교육에서 중요한 점은 생활 속에서 제 스스로 배우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신명 탐구(vision quest)에서 광주리 만드는 장인이 될 신명을 받은 아이가 광주리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자 하면, 그는 그 방면의 장인한테 도제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는 그 도제 밑에서 단순히 광주리 만드는 기술뿐 아니라 갈대를 거두는 법, 제물을 바치고 갈대의 혼령을 위로하는 법, 일 년 중 어느 시기에 나무와 갈대를 거두는지, 그리고 숲과 들판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고 갈대를 선별하는 법 등을 함께 배웁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식물과 계절이 가져오는 변화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어른을 공경하는 법, 자연의 대상들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것 등을 배웁니다.
그렇게 스승이 하는 것을 열심히 따라 하는 동안,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광주리 만드는 장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광주리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동안 그 기술과 관련된 신화에 대해서, 자연과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공경과 경외심에 대해서 배웁니다. 말 그대로 삶 그 자체를 배우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디언 어른들은 지식을 전수하기보다는 아이의 마음에 씨앗을 심어주는 겁니다. 문제를 던져 주고 스스로 풀어 가도록 말이지요.

인디언들은 말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묻지 말고 '어떻게'를 물으라고, 무엇에 대한 질문은 본질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지식은 이 무엇에 대한 것입니다. 현대 문명도, 과학의 발전도, 의학의 발전도 모두 무엇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 이룩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의 축적을 가져다 주긴 해도,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에게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나?"
그에게 아인슈타인이 말했습니다.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것은 한낱 지식의 나열에 불과해.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을 파동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야."
지식은 도구적인 것입니다. 삶에 필요하긴 하나 그것이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의미 있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지식만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잘못된 지식은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나 핵무기와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이지요. 그런 지식은 결국 재앙을 만들 뿐입니다.
그에 견주어, '어떻게'에 대한 질문은 과정과 방법, 그리고 삶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들판에 핀 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그걸 먹고 크는 소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고 해 봅시다. '꽃이 무엇이냐', '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막상 대답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대답한다고 해도 거기엔 우리의 삶을 비춰 주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들판에 핀 꽃을 보며 느끼는 것에 대해 묻는다면, 또 그 풀을 뜯어 먹고 크는 소를 보며 느끼는 것에 대해 묻는다면, 또 그 풀을 뜯어 먹고 크는 소를 보며 느끼는 것에 대해 묻는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는 그 꽃이 아름답다거나 신선하다고 대답할 것이고, 그것은 그 꽃이 내게 주는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그 속에 나와 꽃의 관계가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주술사인 이스트치마는 후에 『일곱 개의 화살(Seven Arrows)』을 쓰게 될 그의 제자 하이유메이요스츠 태풍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프레이리 초원 어머니와 아버지라 불리는 대지 위에서
인생을 만난다.
우리는 프레이리 초원 어머니와 아버지라 불리는 대지 위에서
죽음을 만난다.

풀과 꽃들은 프레이리 초원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자라고
우리는 사람으로서 자란다.

싱그러운 노래가 울려 퍼진다.
우리는 프레이리 초원의 꽃들 때문에 자란다.

우리는 인생을 노래한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프레이리 초원의 꽃들이야말로
우리들을 향해 춤추는 질문들이다.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존재에 대해서

여기서 이스트치마는 꽃을 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녀에게 프레이리 들판의 꽃들은 그저 한낱 들판에 핀 야생화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할 수 있도록 그에게 생명을 준 존재이며, 자신이 힘들 때 친구가 되어 준 존재이며, 자신이 노래 부를 수 있게 감흥을 준 존재이며, 삶과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깨닫게 해 준 귀중한 존재입니다. 이스트치마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야생화 여인, 토마시아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버펄로를 공경하도록 가르쳤는지 듣고 싶지 않니? 토마시아사는 야생화에 대해서 말했다. 풀-꽃들이바로 버펄로라고, 버펄로들은 그들이 먹는 풀-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때문에 우리 생명의 원 추장들은 버펄로를 풀-꽃이라 부른다. 북부 지역에 사는 크리족과 오지브웨족 또한 버펄로를 풀-꽃이라 부른다. 네가 먹는 식물과 동물들을 공경하라. 삶을 공경하라. 죽음을 공경하라. 네가 살생하는 모든 식물들과 동물들에 대해서 책임을 져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공경하라.

인디언들은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이 될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칩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자연히 결정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디언들이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질문에 대해서 인디언 교육 전문가인 그레고리 카제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질문은 영혼과 함께 시작해서
영혼과 함께 끝난다.

그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의 깨어남을 위해

그리고 땅을 경작하고
씨앗을 심은 뒤
세상의 영혼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방금 씨앗을 심었습니다.
씨앗이 잘 자라도록 도와 주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소서.
그가 자신의 신명을 가질 수 있게 하소서."

한 마디로, 질문은 씨앗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것은 어머니 대지에 생명의 씨앗을 심은 뒤 잘 자라기를 비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우를 사냥한 사냥꾼이 여우의 새끼들을 살려 주면서 그들이 건강하게 크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 삶 속에서 만나는 그 수많은 질문은 늘 나의 삶과 우주 전체에 걸친 문제이고, 그 때마다 나의 선택은 곧 나의 영적인 성장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피가 돌지 않으면 두 눈으로 볼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없듯이...
우리는 수많은 관계의 차원 속에서 살아갑니다. 나의 행위는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나는 다른 존재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늘 나와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의미를 살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결코 단순한 방법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말합니다. 인생의 모든 행위는 끊임없는 질문의 연속이라고, 그리고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모두를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신성한 일이라고, 이스트치마는 '어떻게'와 '무엇'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질문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위해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질문은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해결하는 방법인 것이다. 우리가 쌓아 올리는 그 무엇이 아니라 쌓아올리는 과정인 것이다.
그것은 네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일하는가 하는 것, 그 모두를 의미한다! 너의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너 자신을 순치시키는가야말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에게 맨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언제나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이다.
'어떻게'는 네 영혼과 관계된 질문이다. 그에 반해, '무엇'은 대답을 강요하고 너를 규정한다.
'무엇'은 대답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오직 따르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어떻게'는 대답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참된 균형과 조화의 길을 찾게 한다.
우리의 생명의 원 추장들은 늘 '질문의 원' 속에 있다. 어떤 것을 묻고 대답하는 방식이 정의의 원의 토대다.
네가 어머니 대지에게 한 질문의 답은 네가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신이 네게 주신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가족과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속에 있다. 너의 존재와 탄생을 축복하라. 네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너를 위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나를 낮추고 모두를 위해서 살 것인가...

질문은 언제나 나 자신을 향하기 마련입니다. 변화 또한 언제나 자기 자신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말합니다. 밖에서 먼저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라고. 오직 우리들 자신이 먼저 변화할 때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이지요.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는 어머니 대지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와 탄생으로부터 왔습니다.
인디언 부모들은 아이들을 끔찍이 위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버릇없게 키우는 일은 없습니다. 언제나 반듯하게 의젓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키웁니다.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나이가 되면 듣는 법을 가르칩니다. 어른들의 말씀과 자연의 친구들이 내는 소리를, 그들이 들려 주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법을...
그렇게 아이들이 듣는 것에 익숙해진 뒤에야, 그들은 질문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 때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묻도록 가르칩니다. 그들의 신화와 전설과 이야기를 통해서... 놀랍게도 고대의 신화와 전설은 하나같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은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봄·여름·가을·겨울은 어떻게 생겨났고, 곰의 꽁지는 또 왜 그렇게 짧은지,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태어났으며, 꽃은 어디서 오는지, 또 낮과 밤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등등. 거기에는 서사가 있고, 줄거리가 있고, 모험이 있고, 감동과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격과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백인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존경심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고 인디언들은 한탄합니다. 존경심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공경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위대한 신령과 어머니 대지에 대한 공경도 잃어버립니다.
이렇게 존경심을 잃어버린 아이는 끝내는 질문하는 법도 잃어버리고 맙니다. 왜냐 하면, 공경심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인디언들이 공경심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고 만다고 한탄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생태적인 세상, 아름다운 소통 「이장」, 2005년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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