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소금쟁이
2004/10/12(화)
조회: 6087
노래와 춤1-덴스모어와 인디언 음악-서정록  
북미원주민 이야기 15

검은호수 서정록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음악에 대해서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랜시스 덴스모어(Frances Densmore)'라는 백인 여성 음악가가 바로 그입니다. 그녀는 대평원과 알곤킨족 인디언들을 두루 답사하면서 그들의 음악을 채록하고 분석하였으며, 음악과 관계된 그들의 문화를 소상히 조사하여 10여 권의 책과 100여 편의 관련 글들을 남겼습니다. 그녀의 노력으로 유실될 뻔한 많은 북미 인디언 음악들이 채록되었습니다. 또한 그녀가 수집한 많은 이야기들과 사진 자료들은 귀중한 민속자료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녀가 수우족으로부터 채록한 곡만도 240곡에 이르며, 다른 부족들로부터 채록한 곡들까지 합치면 발표된 곡들이 모두 1000곡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녀는 1867년에 미시시피 강둑에 있는 작은 도시 '레드 윙'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인디언 음악을 연구하게 되었냐고 물으면 그녀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 인디언 북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에 들은 인디언 북소리를 평생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인디언 북 소리는 무의식 속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플로리다의 에버랜드까지, 그리고 대평원과 산악 지대를 넘고 황무지를 가로질러 그 소리를 따라갔다. 늘 인디언들의 북 소리는 나를 불렀다. 나는 낯선 곳에서도, 새벽에도, 그리고 한밤중에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는 뭔가 모를 신비한 감동과 울림이 있었다.
내 어릴 때 집은 미시시피 강 근처에 있었다. 그때 도시 건너편에 있는 강 가운데 있는 섬에는 수우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춤을 추면, 우리는 북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모닥불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 저녁 하늘이 검붉게 변하고 내가 잠자리에 들 때쯤 나는 늘 그들의 북 소리를 듣곤 했다. 그때 어머니는 말씀하시곤 했다. "인디언들은 우리와 다른 관습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선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미시시피 강 저 편의 선한 사람들에 대한 환상에 가득 차서 잠이 들었다.
성장해서 나는 피아노 교사와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지만 내 마음 속에는 늘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던 강 건너 인디언들에 대한 경이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인디언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1893년 시카고 박람회 때였습니다. 당시의 느낌을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디언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듣고, 그들이 춤추는 것을 보았으며, 그들이 소리지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노래는 너무도 신성하고 영적이어서 나는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뒤로 인디언들에 관한 자료라면 닥치는 대로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1903년 레드 윙 근처에 있는 다코타 보호구역에서 처음으로 '착한곰여인'이라는 이름의 한 인디언 여인이 부르는 노래를 채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04년 세인트루이스 전람회에서 아파치족의 유명한 전사 추장 '제로니모'를 만나 그의 노래를 채록하게 됩니다. 그때의 일을 그녀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는 쇠테 안경 뒤의 예리한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전사라기보다는 철학자처럼 보였다. 당시 제로니모는 전쟁 포로였다. 그는 무려 25년 동안이나 백인 병사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불굴의 전사였다.
나는 며칠 뒤 그가 앉아 있는 울타리로 다가갔다. 한 소년이 그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제로니모의 천막에는 그의 상징인 기품 있는 녹색의 천둥새가 그려져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제로니모에게 내가 그와 악수하고 싶어한다고 말해 줘."
늙은 전사는 주저없이 나의 청에 응했다. 그때 내가 잡은 그의 손은 전사의 손이라기보다는 여인의 손처럼 가냘프고 부드러웠다.
나는 다시 소년에게 말했다.
"제로니모에게 말해 줘. 내가 인디언 노래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한다고."
그러자 쇠테 안경 뒤의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그는 노래를 불러 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소년을 통해 거듭 내 의사를 전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그는 화살을 손질하며 콧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주위를 끌지 않으려고 그의 뒤에 숨어서 그의 노래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는 부드럽게 노래를 불렀다. 그는 가볍게 몸을 흔들며 리듬에 맞춰 발을 굴렀다. 다행히 전람회에 구경 온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알아듣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들은 한 늙은 인디언이 그저 상자에 앉아 화살을 다듬고 있거니 하며 지나갔다. 그러나 제로니모의 눈앞에는 대평원과 산맥들이 펼쳐져 있었고, 결코 백인들은 그 아름다움을 막을 수 없었다.

제로니모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녀는 1905년부터 틈 날 때마다 여동생과 함께 오지브웨족, 다코타족, 히다차족, 만단족 등의 음악을 채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본격적으로 인디언 음악을 채록하기 시작한 것은 북부 다코타에 있는 수우족 보호 구역에 머물며 그들의 음악을 채록하기 시작한 1911년부터였습니다. 마침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당시 새로 보급되기 시작한 왁스 실린더 녹음기를 그녀에게 제공했던 것입니다. 이 녹음기의 도움으로 그녀는 좀더 수월하게 채록 작업을 할 수 있었음은 물론, 그들의 생생한 노래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18년 『테톤 수우족 음악』이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 후, 그녀의 인디언 음악 채록 여행은 우테족, 포니족, 파파고족, 마카족, 위넨바고족, 메노미니족, 유마족, 아코마족, 모하브족, 야키족, 그리고 멀리 알래스카와 플로리다까지 이어지면서 계속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1957년에 죽을 때까지 여동생의 도움을 받으며 인디언 음악을 채록하는 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마치 에드워드 커티스가 인디언들의 모습을 찍는 데 평생을 헌신한 것처럼. 실제로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 사람은 인디언 음악을, 또 한 사람은 인디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했으며, 두 사람 모두 인디언 문화를 세상에 알리고 그들의 문화를 보존하는 데 역사에 남을 큰 역할을 했습니다.
평생 동안 그녀를 사로잡은 인디언들의 음악에 대해 그녀는 한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디언들의 노래는 그들의 삶과 관습의 역사와 전쟁과 종교 의례,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냥꾼은 동물들에게 주술적 힘을 발휘하는 노래들을 알고 있었고, 덫을 놓은 후 동물들에게 그 노래를 들려 주었다. 마을의 아이들은 조약돌을 공중에 던진 다음 다른 손으로 받으며 돌을 잘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내 대장을 따르라'라는 노래를 부르는 다른 아이들과 합세했다. 천둥 번개 꿈을 꾸는 이들은 그들의 얼굴에 천둥의 빛깔인 푸른 반점을 칠하고 태풍의 신비로운 영을 불렀다. 그들은 비를 부르는 힘을 갖고 있었고, 적을 치기 위해 번개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들의 노래는 활이었고, 불타는 번개는 그들의 치명적인 화살이었다. 종종 사람들이 아플 때면 그들은 환자들이 쾌차할 수 있도록 영적인 노래를 불러 주었고, 그들의 조롱박을 흔들었으며, 신성한 주술을 행하였다. 그러면 환자는 나았다. 이른 아침 장밋빛 여명이 천막에 비칠 무렵, 젊은 청년은 천막 옆에 서서 막 잠에서 깨어나는 연인을 위해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저녁이면 여인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닥불 근처에 모였고, 그때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토끼는 어떻게 해서 꼬리가 그처럼 짧아지게 되었을까]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인디언들은 그들의 신인 '와칸탕카'를 위한 제단을 갖고 있었고, 어머니들은 기도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공터에서는 이삼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합창을 하며 몇 시간이고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인디언들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신세계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인디언들은 보호 구역 생활을 하며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백인들의 방식으로 인디언들의 음악을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았던 듯합니다. 1954년에 쓴 한 글에서 인디언의 음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인디언 음악에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인디언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인디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우리는 인디언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인디언 음악을 들은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들의 커다란 북 소리와 거친 노랫소리를. 아마도 인디언들은 우리의 재즈 음악에 대해서도 똑같은 그런 불편한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춤에 수반되는 것들이다. 인디언들은 다양한 형식의 노래를 부른다. 그들의 노래를 번역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인디언들이 노래를 부르는 방식은 그들만의 것이다. 나는 일찍이 내게 노래를 불러 준 '작은늑대'에게 내가 옮겨 적은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를 테니 한번 들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는 내 노래에 귀를 기울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멜로디는 옳지만, 당신의 목소리는 전혀 인디언답지 않습니다."
인디언들은 결코 예쁘고 아름답게 꾸며 노래하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인디언들은 결코 많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데 두세 개의 어휘면 충분한 것이다. 그 단어들은 노래의 중간쯤에 나타난다. 노래의 나머지 부분은 그들의 독특한 인디언 발성으로 채워진다. 오마하 인디언은 만한다.
"우리는 노래할 때 많은 것을 말합니다."
그들의 많은 '꿈 노래'는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신령스러운 새나 동물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대평원의 인디언들은 버펄로나 늑대의 영들이 준 노래를 부르고, 북서 해안의 인디언들은 고래의 영이 준 노래를 부른다. 아마도 이런 노래들은 우리 서구인들에게 의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노래들은 인디언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노래들 속에서 인간을 돕고자 하는 자연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한 노래들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시킨다. 우리는 자연의 정복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것은 인디언 방식이 아니다.
북서 해안에서 내가 밴쿠버 섬의 서부 지역 출신의 한 여인으로부터 노래를 채록할 때였다. 그녀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녀는 "성난 바다야, 조금만 더 부드럽게 파도치거라."하며 성난 바다를 진정시키는 노래를 불렀다.
내가 사람들에게 "바다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성이 났는냐?"고 묻자, 그들은 몹시 놀라서 수군대었다. 잠시 후 통역사가 말했다. "사람들은 왜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음식과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데, 어떻게 바다가 우리에게 화를 낼 수 있겠습니까?"
인디언 문화에 깊숙이 배어 있는 자연과의 소통은 그들 음악의 핵심이다. 그것은 우리 같은 이방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깊고 심오한 것이다.

그녀는 인디언들의 노래 속에는 인디언 문학의 보고인 귀중한 시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인디언 노래를 채록하며 많은 인디언 신화와 전설, 이야기를 모았고, 각 민족의 음악을 정리해서 책으로 낼 때마다 채록한 곡들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나 민속을 자세히 수록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녀의 저서들은 인디언 음악뿐 아니라 인디언 문학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알려진 많은 인디언 시들은 그녀가 채록한 인디언 악보 속에 들어 있는 시구이기도 합니다.

인디언의 노래 속에는 그들의 시가 보존되어 있다. 한번은 파나마 출신의 툴르족 인디언이 워싱턴에 왔을 때였다. 그가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그 중의 한 노래는 배가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었다.
"돛대에 부는 바람은 새의 노랫소리 같고, 마스트를 치는 소리는 구름 소리 같네."
통역사는 이 노래를 이렇게 해석해 주었다.
"그 말들은 배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산토 도밍고 푸에블로족의 노래에는 종종 멜로디 전체를 통해서 장대한 시가 불려지곤 한다. 이 노래말 시구들은 그들의 주식인 옥수수 이삭이나 수확에 관계된 것이거나 그들이 본 자연에 대한 것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프와족의 노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덤불이 나무 밑에 앉아서 노래를 부른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통역사에게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무 밑에 있는 덤불이 그의 신성한 힘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같은 노래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사슴이 꽃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치프와족의 한 노래는 프레이리 들파넹 찾아오는 봄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내 눈이 프레이리 들판에 머물 때
나는 봄 속에서 여름을 느낀다

아직 봄의 징후는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데, 인디언들은 그 봄의 공기 속에서 벌써 여름을 느끼는 것이다. 북서 해안의 마카족의 한 '고래 노래'는 다음과 같다.

나는 걸어온다
두 발로 걷지 않고 파도를 타고서
나는 사람이다

파파고족의 소녀 '코와카'의 성년식에서 불려진 노래에는 그 의미가 알려지지 않은 아래와 같은 시구가 있다.

서투른 사람은 노래를 손에 쥐고
해에게 바치려고 다가가지만
미처 노을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도중에 떨어뜨린다
보아라, 코와카야
달려가 그 노래를 손에 쥐고는 노을 밑에 공손히 놓거라


덴스모어는 그녀의 책 『누트카족과 퀼류트 음악』(1939)에서 북서 해안의 누트카족에서 만난 한 늙은 맹인 여인 '토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매우 가난했으며 집도 없이 이 집 저 집을 전전하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담벼락에 기대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리며 고운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합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너의 노래를 불러라

이 노래는 이 세상에 내재한 무한한 신성함이 얼굴에 비친 따뜻한 햇살처럼 만져질 수 있음을 노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찾아오는 것을 늘 기쁘게 맞았으며, 먹을 것을 갖다 주곤 하였는데, 그녀가 가는 곳마다 늘 행복을 선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덴스모어는 많은 인디언들을 만났고, 그들의 음악에 미쳐 평생을 보낸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녀 덕분에 많은 인디언 음악이 살아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인디언 음악과 문화 속에 담긴 그들의 영혼을 이해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20세기 초의 파괴된 인디언 문화도 그들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었을 듯하고요.
그렇긴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백인들이 원주민들의 문화를 보존하는 데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그들의 음악을 보존하기 위해 그녀가 일생을 바친 태도는 많은 점에서 특별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의 백인들은 대부분 인디언들의 보닛 모자나 전설 등에만 관심이 있을 뿐 낯설고 거칠어 보이는 인디언들의 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녀는 만년에는 국회도서관에서 왁스 실린더에 녹음된 2500여 곡의 인디언 음악들을 정리하며 보냈습니다. 그녀가 남긴 인디언 음악 자료들은 현재 스미소니언박물관에 민속음악 자료로 고스란히 남겨져 있습니다. 그 음악 자료들은 1980년대 이후 인디언 문화가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민속 음악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일부 곡들은 새롭게 리바이벌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뉴에이지(New Age)음악의 상당 부분이 인디언 계열의 음악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생태적인 세상, 아름다운 소통 「이장」, 2004년10월호.




사이풀: 새로운 글이 올라온 걸 확인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한동안 이곳을 들렀다, 그냥 나갈 때마다 적잖이 서운할 정도였습니다. -[10/16-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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