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연구소
2004/7/8(목)
조회: 4539
침묵과 듣기 1- 서정록  
침묵과 듣기 1


인디언들은 말보다는 침묵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로저 해머 같은 사람은 인디언들의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의 언어는 주의 깊게 선택된다. 마치 외과 의사의 칼처럼 정확하게... 그리하여 수술용 칼이 썩은 부위를 잘라내듯 삶의 부조리와 거짓을 잘라낸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눈보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잎들이 어머니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듯 부드럽고 가볍다. 그리고 간략하다. -겨우 한 생각을 말한 것처럼... 그러나 그들의 말 속에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따금 그들의 언어는 매우 길다.-담요를 짜는 이가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엮듯...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말을 할 줄 몰라서 침묵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아마도 우리 인디언들처럼 늘 생각을 하며 사는 이들도 드물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주고받은 말들은 돌처럼 가슴 속 깊이 가라앉아 결코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고...
잘 알려져 있듯이, 인디언들은 백인들과 수많은 조약을 맺었지만 한 번도 그것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조약을 깬 것은 언제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요구해서 조약을 체결하곤 늘 그들이 다시 와서 깼습니다. 인디언들이 백인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말과 행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디언 사회에서 말과 행위가 다른 사람은 거짓말쟁이로 취급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디언 사회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그만큼 인디언 사회에서 말은 무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이 그처럼 무거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침묵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우족 출신의 찰스 이스트맨은 침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완전한 균형의 증거인 침묵의 힘을 깊이 신뢰한다. 침묵은 몸과 마음과 영혼의 절대적인 균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햇빛이 비치는 수면 위에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그렇게 지식에 물들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의 마음을 갖는 것을 우리는 이상적인 삶의 태도로 여긴다.
만일 당신이 "침묵이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신령이다. 신성한 침묵은 신의 목소리다."라고...
만일 당신이 "침묵의 열매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나 자신을 다스림, 진실한 용기, 또는 인내, 참을성, 위엄, 그리고 존경심과 같은 것들이다. 침묵은 인격의 초석이다."


침묵은 그들에게 성숙한 인간의 표식이자, 훌륭한 사람이 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뉴욕 지방의 세네카인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에게 침묵은 일상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에 낀 갖가지 감정의 때를 벗어버리고 청정의 상태에 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침묵에 드는 동안, 그들의 육신과 영혼은 청정해지고 새로워진다고 말이지요. 따라서 침묵은 그들에게 일상에 낀 부정을 제거하는 일종의 정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침묵은 장차 어머니가 될 여성이 반드시 지켜야 할 생활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찰스 이스트맨은 이렇게 말합니다.

임신한 여성은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며, 가능한 한 혼자서 정적에 둘러싸인 울창한 숲이나 아무도 밟지 않은 들판의 풀밭을 거닐며 기도한다. 그녀의 시적인 마음 속에서 곧 다가올 아이의 탄생은 위대한 신령의 현신-영웅이나 또는 영웅들의 어머니-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생각은 자연의 순결한 품 속에 있거나 깊은 침묵 속에서 꿈꿀 때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소나무의 숨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시원한 폭포소리만이 그녀의 상념을 깰 뿐이다.

한 마디로, 인디언들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침묵과 친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인디언 어른들은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제일 먼저 침묵과 공경을 가르칩니다. 루페르토 코스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은 그들의 후각, 청각, 시각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의 깊게 보는 법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상태에서 듣는 법을 배운다.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는 반 푼으로 치부되며, 그의 주위의 세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인디언 아이들은 일찍부터 침묵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새나 동물, 곤충, 그리고 나무, 시내, 바람, 해와 달, 별 등 자연의 친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웁니다.
이렇듯 침묵은 인디언들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루페르토 코스토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신령들의 목소리는 외딴 장소에서 홀로 고독하게 있을 때, 또는 저녁에 티피에서 조용하게 침묵하고 있을 때 들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좋은 신령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는 많다. 조용한 곳에 가서 침묵을 불러 가슴과 마음을 가르치면 많은 좋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실제로 인디언들은 대부분 자기만의 조용한 장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곳은 집 안일 수도 있고, 산이나 들, 또는 숲이나 물가일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고, 위대한 신령과 대화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 없습니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그 곳에 가서 조용히 침묵에 듭니다.
포리스트 카터가 쓴 『작은나무의 교육』(The Education of Little Tree)[국내에서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글쓴이]이란 책에는 '작은나무'가 자신의 비밀 장소를 발견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나는 실개천 위쪽으로 올라가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비밀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은 실개천 너머 산 쪽으로 올라가는 곳에 있었으며, 월계수나무들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그다지 넓지는 않았으나 사방에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특히 허리가 굽은 향내 나는 늙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곳을 처음 발견한 순간 나는 즉시 그 곳을 나만의 비밀 장소로 정했으며, 그 뒤로는 시간만 나면 그곳에서 보내곤 했다.
그 곳에 갈 때면 나는 으레 늙은 개 마우드를 데려가곤 했다. 마우드 역시 그 곳을 좋아했으며, 우리는 늙은 단풍나무에 기대고 앉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여기저기를 바라보곤 했다. 마우드는 그 곳에만 가면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우드 역시 그 곳이 비밀 장소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어느 날 늦은 오후, 내가 마우드와 함께 단풍나무 아래 앉아 여기저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내 비밀 장소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을 지나가고 계셨던 것이다. 할머니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도 숲 속을 걸어다니실 수 있었다. 뒤를 따라가 보니, 할머니는 식물의 뿌리를 캐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해 곧장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뿌리를 다 캔 후, 나는 할머니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통나무 위에 걸터앉아 뿌리들을 종류별로 나누었다. 아직 어렸던 나는 참지 못하고 할머니께 내 비밀 장소에 대해 털어놓았다. 내 얘기를 들으신 할머니는 전혀 놀라지 않으셨다. 그것이 오히려 나를 놀라게 했다.
할머니는 체로키 사람들은 누구나 비밀 장소를 하나쯤은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역시 비밀 장소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서 나도 비밀 장소를 하나 갖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육신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마음, 즉 영혼이다. 만일 우리가 육신의 삶을 담당하는 마음만 발달시켜 탐욕스러운 생각에 몰두하거나 남에게서 이득을 취할 방법을 찾는 데만 몰두한다면, 우리의 영적인 마음은 히코리 도토리 크기로 쪼그라들고 말 것이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영혼과 관계된 마음은 근육과 똑같은 성질을 지녔다고 한다. 우리가 그것을 사용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강해진다. 영혼을 크고 강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영혼에 이르는 문이 열리면 이해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해의 길을 가면 갈수록 영혼과 관계된 마음은 점점 더 커진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 영혼이 히코리 도토리 크기만해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의 영혼이 더욱 크고 깊어지게 되면 언젠가는 내 과거의 육신들이 살아 온 과정도 다 알게 될 것이며, 차츰 육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할 수 있게 될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 비밀 장소에서 그러한 과정의 일부를 엿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얼음이 풀리고 봄이 되어 만물이 탄생할 때면-그리고 하나의 생각이 탄생할 때도 그렇지만, 모든 것이 새로 탄생할 때는-태풍이 오듯이... 그리고 피와 고통 속에서 아기가 탄생하듯이... 할머니는 그런 폭풍우는 영혼이 다시 물질의 형태 속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소동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내 비밀 장소에 있는 향기로운 단풍나무 역시 영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셨다.

작은나무에게 그의 비밀 장소는 그의 영혼을 만나고 자연의 다른 존재들의 영혼을 만나는 신성한 장소입니다. 동시에 그 곳은 그와 우주가 만나는 신성한 곳인 동시에 우주의 중심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마릴루 아위악타가 정리한 것으로, 착토족 할머니 이쉬토우아가 손녀인 '작은사슴'에게 침묵과 그것을 통해서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 법에 대해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너는 씨옥수수를 골라야겠다."
나무 테이블의 한 편에 작은사슴은 껍질에 싸인 옥수숫대를 수북이 올려놓았다. 어떤 옥수수는 짙은 오렌지 빛깔이었고, 어떤 것은 황금빛 바탕에 적갈색과 옅은 검정색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밭에 심을 씨옥수수를 고르는 일을 맡았다. 네 아버지와 오빠는 씨옥수수를 담을 자루를 만들 사슴 가죽을 가져왔다. 모피는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아 씨앗이 건조한 상태로 있게 해 줄 것이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넓은 들판에 옥수수를 심으려면 씨앗을 넉넉하게 골라야 할 게다. 옥수수는 우리 부족의 친척이다. 옥수수는 그들 옥수수부족으로부터 힘을 끌어온단다. 줄기 하나로는 아무것도 맺지 못하는 법이거든."
할머니는 옥수수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할머니가 옥수숫대를 양 손으로 붙잡고 비틀자 옥수수 알갱이들이 테이블 위에 후드득 떨어졌다. 작은사슴은 재빨리 낱알들을 버드나무 바구니에 담았다. 바구니가 가득차자 작은사슴은 낱알들을 테이블 위에 쏟았다. 두 사람은 씨앗의 빛깔이 너무 검거나 단단해 싹이 트기 어려운 것들을 골라 내었다.
"할머니, 서쪽에는 새로운 하늘이 있겠지요? 옥수수를 심을 시기를 알려 주는 북두칠성도요?"
그녀의 질문은 할머니를 웃게 만들었다.
"물론 있고말고. 오직 땅만 바뀐단다. 하늘은 똑같아. 북두칠성이 한 바퀴 돌아 국자 모양이 거꾸로 돼서 물이 쏟아지는 형태가 되면, 우리는 안다. 어머니 대지가 씨앗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위대한 신령은 모든 것을 조화롭게 만드셨거든. 위대한 신령의 지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 속에 다 들어 있단다."
할머니는 말씀을 마치고는 동그란 황갈색 씨앗 하나를 작은사슴의 손바닥에 꼭 쥐어 주셨다.
"씨앗의 가슴은 신성한 불의 조그만 불꽃과 같단다. 하지만 느껴 보거라.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너는 씨앗을 들판에 던질 수도 있고,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고, 네 손에 가지고 다닐 수도 있지만 씨앗을 오직 따스한 토양에서만 싹이 튼단다. 너무 일찍 싹이 돋아도 그만 죽고 말지. 그래서 씨앗은 안전하게 싹을 틔울 수 있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다. 그것이 씨앗의 지혜다. 그렇게 씨앗은 싹이 트기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자신의 영혼 속에 깊이 들어가 산다."
옥수수 알갱이들 쪽으로 작은사슴의 손을 가져간 할머니는 나무의 뿌리처럼 생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조그만 주먹을 꼭 쥐셨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힘들게다. 그리고 많은 인내를 감내해야 할 거야. 씨앗처럼 해라. 그리고 너 자신을 지켜라.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네 영혼 속에 깊이 들어가서 살아라."
작은사슴은 할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말했다.
"네 안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거라. 그 곳에서 위대한 신령이 네게 말씀해 주실 게다."
"그럼 할머니도 불 앞에서 기도하실 때, 귀를 기울이고 계신 거예요?"
"불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태양의 친척이란다. 불은 위대한 신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도와 주거든. 기도할 때 나는 귀를 기울여 듣는다. 내 영혼의 눈과 귀로..."
작은사슴은 화덕의 불을 쳐다보았다.
"불꽃을 보고 있지만, 탁탁 튀는 소리와 불길이 치솟을 때 나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그건 네가 네 몸의 눈과 귀로 들으려 하기 때문이란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손가락 끝으로 작은사슴의 가슴을 톡톡 치셨다.
"네 영혼의 눈과 귀로 들어야 한단다."
"제게 듣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할머니는 머리를 가로저으셨다.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조용히 침묵하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네 스스로 불의 신성한 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거라."
그날 밤, 작은사슴은 할머니 곁에서 조용히 침묵하면서 기도하려고 노력했다. 작은사슴은 눈을 화덕의 불꽃에 고정시켰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방 안의 이곳 저곳을 옮겨다녔다. 문가에 쌓아둔 옥수수를 담을 두꺼운 사슴 가죽 자루들, 오빠가 잠자고 있는 건너편 다락,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무시고 있는 구석의 침상, 설탕과 옥수수 가루가 담긴 호로박, 물레와 아버지의 총, 과실과 콩, 호박 주머니, 구슬이 장식된 그녀의 모카신 위에서 춤추는 화덕의 불빛, 그녀의 붉은 옷에 장식된 뱀가죽 무늬, 그녀의 목에 걸린 씨앗이 든 조그만 주머니, 할머니의 눈.
작은사슴이 마주친 할머니의 눈은 무언가를 말씀하시려는 듯 가만히 미소짓고 있었다.
"불의 신성한 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단다. 너는 아직 어리다. 때가 올 거다."
할머니가 주무시기 위해 다락으로 올라가신 뒤에도 작은사슴은 한참 동안 담요 위에 앉아서 가만히 불길을 바라보았다. 몸이 따스해지자 잠이 오기 시작했다.

위의 이야기에서 할머니는 침묵을 단단한 껍질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씨앗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씨앗이 발아하려면 흙과 물, 그리고 따스한 온기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들의 영적인 씨앗이 발아하려면 적당한 기다림과 집중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침묵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 침묵과 듣기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4년7월호.



정상명: 언제나 그렇듯이 서정록님의 '침묵과 듣기'에 대한 이번 글도 깊이 음미하며 읽게됩니다. 요즘은 모두들 소리높여 제 주장을 하느라고 세상이 더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침묵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우리는 사람들이 적다는 게 문제일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침묵하는 시간에 마음의 키가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침묵의 시간이 전보다 훨씬 줄어든 것을 느낍니다. 좋은 글은, 좋은 생각은 사람을 좋게 만듭니다. 서정록님이 다음에 올리실 글이 기다려지는군요. -[07/09-03:57]-
소금쟁이: 매달 '이장'을 받으면 검은호수님의 글을 사이트에 올리기 위해 입력을 먼저 하는데, 입력하면서 먼저 맛보는 검은호수님의 글에서는 늘 특별한 고요가 느껴진답니다. 마치 제가 숲에 와 있는 그런 느낌요. 고마운 인사를 이제야 드립니다. -[07/09-13:54]-
김형찬: 한참을 돌아다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드는 글입니다.. 다음글 기다려집니다.. -[07/21-09:42]-
행복한사랑: 저도 기다려집니다 -[03/03-06:48]-
  이름   메일   관리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자동등록방지 86.00 를 숫자부분만 입력해 주세요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