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언 공부 :::

이름: 서정록
2004/6/8(화)
조회: 5807
어머니 대지 - 서정록  
어머니 대지

검은호수 서정록

북미 인디언들에게 대지는 어머니와 같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우리를 실어 기를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디언들의 어머니 대지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동학의 말씀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동학의 주문(呪文)-<시천주 조하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에 나오는 '시천주'란 말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을 모신다'란 말입니다. 따라서 위의 주문의 내용을 풀면, '모든 생명을 내 안에 모시고 자연의 법에 따라 살며 늘 이것을 잊지 않고 실천하면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동학을 창건한 수운 최제우 선생은 위의 주문에 나오는 '시천주'의 '주'자를 다시 풀어 말씀하시기를 "부모와 똑같이 모시는 것이다(與父母同事者也)"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님', 곧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마음으로 모시되 부모님을 모시듯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 선생은 "밥 한 그릇이 만사지"라고 하셨습니다. 먹고 먹이는 것만 잘 해도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또 '천지부모(天地父母)'란 말씀도 하셨습니다. 천지가 곧 부모라는 뜻이지요.
인디언들은 사춘기가 될 즈음, 자신을 낳아준 부모 외에 또 다른 부모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하늘과 땅, 곧 우주가 바로 그들을 기르는 부모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의 고마움도 크지만, 우주의 모든 생명들이 자신을 길러주고 부양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하늘을 아버지로, 대지를 어머니로 일컫습니다. 그리고 천지만물이 모두 나의 형제와 친척임을 압니다. 인디언들이 개인의 욕망을 확대하기보다는 나의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런 천지부모의 관념을 일찍 터득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늘, 즉 아버지가 좀더 높은 곳에서 그들을 이끄는 존재라고 하면, 어머니 대지는 그들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살가운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엄격한 아버지보다 부드러운 어머니가 더 친근하고 따뜻한 존재이듯이... 게다가 그들이 먹고 입고 자고 쓰는 모든 것들은 어머니 대지로부터 나옵니다. 때문에 어머니 대지에 대한 인디언들의 태도는 매우 각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머니 대지에 대해서 말할 때면 늘 쓰는 말이 있습니다. 즉 "어머니 대지는 말없이 묵묵히 견딘다"라는 것입니다. 대평원에서 농사를 짓던 만단족의 상처 받은 얼굴 또한 늘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어머니 대지는 언제나 말없이 참고 견딘다(Earth always endures)"라고.... 'endure'는 우리말로 하면 '참고 견딘다', '묵묵히 견딘다', '말없이 견딘다' 정도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디언들은 그들의 고난사를 말할 때도 이 '견딘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실제로 오랜 세월 백인 치하에서 갖은 수모와 멸시와 탄압을 묵묵히 견디어 온 그들의 역사는 이 '참고 견딘다'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표현도 적합하지 않다고 할 만큼 처절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네 삶이란 인디언처럼 생존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는 시련과 갈등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인디언들의 이 '견딘다'라는 말을 자칫 그들의 수난사라든지 삶의 고통과 관련지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좀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인디언들이 이 말을 그들의 고난의 역사와 관련지어 사용했을 때조차 그들은 자신들이 어머니 대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삶이란 때론 고통과 슬픔도 있지만 기쁨과 신성함, 그리고 경이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견딘다'는 말은 그들의 고난과 역경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연과 이 세상에 대한 그들의 삶의 태도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마치 어머니 대지가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면 검은 땅에서 풀과 꽃을 피워 내듯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희망과 가르침과 다른 존재들과 하나 됨을 주듯이... 우테족의 기도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대지는 내게 말없이 있는 법을 가르칩니다.
참고 견디는 법을 가르칩니다.
겸손하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법을 가르칩니다.
늘 용기를 잃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넘을 수 없는 한계를 가르칩니다.
자유롭게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체념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다시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나 자신을 잊는 법을 가르칩니다.
다른 존재의 친절함을 기억하도록 가르칩니다.

인디언들에게 대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땅 이상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은 그들의 조상들의 뼈와 살이 묻혀 있는 곳이며, 그들이 탯줄을 묻은 곳이며, 그들이 어린 시절 뛰어놀던 시냇물의 속삭임과 바람 소리, 나뭇잎이 부스럭거리던 소리, 동물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산과 강, 해와 달, 별들과 함께 했던 모든 기억들이 함께 숨을 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지혜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대지는 그들의 삶과 분리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들의 존재의 근거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백인들이 땅을 팔라고 했을 때 시애틀 추장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늘을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대지의 온기를 팔고 산단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신선한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소유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팔 수 있단 말인가?"
인디언들에게 땅을 판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파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백인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대지란 단지 지배와 소유의 대상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에게 대지는 삶의 소중한 기억이며, 그들에게 사랑과 공경을 가르쳐 준 스승이며, 나의 정체성의 일부이며, 내가 죽은 뒤 돌아가야 할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쫓겨가던 나바호족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는 곳은 나의 희망과 염원이 있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은 사후 나의 모든 것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은 내가 땅을 알 듯, 땅이 나를 아는 곳이다.
하지만 새로운 땅은 내가 그를 알지 못하듯
그 또한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인디언들에게 대지는 그들이 영원히 돌아가야 할 어머니 품과 같은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지는 그들의 고통과 기쁨과 슬픔을 알고 그것을 함께 나누어 온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푸에블로 타오스족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삶을 이해하지 못할 때
대지는 내가 이야기하는 벗이다.
왜 내 말에 귀를 기울리지 않느냐고 말할 필요가 없다.
대지는 언제나 내게 같은 노래를 불러 주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의 눈물이 태양을 덮었을 때도
대지는 아버지를 위해 그 노래를 불러 주었다.

봄이 한겨울에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리고 죽음이 탄생과 더불어 어떻게 시작되는지
내가 잊어버릴 때마다 대지는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칭찬의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나는 가서 춤을 추어야 한다.
발 밑의 먼지가 내 걱정거리를 받아 줄 때까지 나는 춤을 춘다.
먼지는 내 걱정거리를 산으로 가져간다.
산은 내 걱정거리의 먼지들로 자란다.
산은 내 걱정거리가 쉬는 곳이다.

여기서 산은 대지와 같은 말입니다. 어머니 대지는 모든 것을 받아 줍니다. 마치 어머니가 갓난아이의 어리광을 기쁘게 받아 주듯이. 그래서 그들은 걱정거리가 생길 때 어머니 대지의 품으로 춤추러 간다고 말합니다. 춤추는 동안 어머니 대지의 창조적 에너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대지는 그들의 걱정거리를 받아 줍니다. 그리고 어머니 대지로부터 독수리처럼 높이 나는 법과 바다 밑에 잠겨 있는 거대한 빙하의 침묵을 배웁니다. 인내와 용기를 배웁니다. 라코타족의 추장이었던 두발로 선곰은 인디언들의 이런 대지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라코타 사람들은 대지와 대지에 속한 모든 것을 사랑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노인들은 너무도 흙을 사랑한다. 그래서 대지 어머니의 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땅에 앉거나 기대는 것을 좋아한다.
대지에 맨발로 서는 것은 좋은 일이다. 노인들은 모카신을 벗고 맨발로 신성한 대지 위를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 티피 역시 땅에 세워지며, 제단도 흙으로 만들어진다. 창공을 나는 새들도 쉴 때는 땅 위에 내려앉는다. 땅은 살아 움직이고 자라는 모든 것들의 마지막 휴식터다. 흙은 생명을 진정시키고 활기를 주며, 부정한 것을 정화하고 치료해 준다. 때문에 인디언 노인들은 생명을 주는 대지와 맞서 기력을 소모하기보다는 땅에 앉는 것을 더 좋아한다. 땅 위에 앉거나 누움으로써 노인들은 더 깊고 더 섬세하게 대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보다 뚜렷하게 생명의 신비를 볼 수 있으며, 그들을 둘러싼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더욱 따뜻한 형제애를 느낀다. 대지는 옛 인디언들이 듣던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그 소리를 보다 잘 듣기 위해 땅에 귀를 갖다 대기도 한다. 라코타의 선조들은 땅의 방식을 이해할 때까지 오랫동안 그렇게 해 왔다. 마치 그들이 태초에 땅의 일부였던 것처럼.


캐나다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아베나키족의 큰천둥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다. 그녀는 우리를 기르신다. 그리고 우리가 땅에 넣어 주면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돌려 주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명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를 주신다. 상처를 입으면 우리는 어머니 대지한테 달려간다. 그리고 상처 입은 부위가 낫도록 그녀의 몸에 갖다 댄다. 동물도 우리와 똑같이 한다. 그들도 상처 입은 부위를 대지에 갖다 댄다.

따라서 인디언들에게 어머니 대지는 단순히 나를 실어 기르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삶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며 나를 일깨우고 격려하고 삶을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는 존재인 것입니다. 때문에 나의 삶은 대지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런 대지와의 깊은 그들의 이야기와 신화와 노래, 언어에서 때로는 꽃처럼 피어나고, 때로는 비처럼 우리를 적십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쉼 없이 속삭이듯 바람과 시냇물이 있습니다. 해와 달이 있습니다. 새들이 있고 벌레와 동물들이 있습니다. 나무와 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 대지에게로 돌아갑니다.

낙엽들이 쌓인 곳에서
나는 땅을 바라보며 엎드린다.
그리고 순수하고 맑고 푸른 잎들의 탄생을 기도하며
떨리는 몸으로 젖은 대지의 향기를 맡는다.

나는 손가락으로 흙을 만진다.
그리고 흙이 이전의 모든 탄생과 죽음을 지니고 있음을 안다.
나는 깨어나는 대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때로는 자신만의 은밀한 장소를 찾기도 합니다. 그리고 침묵하며 자연의 수많은 존재들이 내게 들려 주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 박동 뒤로 울리는 어머니 대지의 박동 소리를 듣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어머니 대지와 하나 됨을 그리워합니다.
따라서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견딘다'라른 말은 결코 시련과 인내를 가리키는 어두운 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자식들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의 사랑과 위엄과 지혜가 있으며, 다함이 없는 '생명의 원'이 있습니다. 또 모든 존재가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자신을 낮추고 남을 공경하는 성숙과 완성을 향한 또 다른 탄생과 거듭남을 위한 삶의 태도와 기도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냥을 나간 젊은이가 봄의 아름다운 신록에 입을 다물지 못하듯이 경이가 있습니다. 또 들판에 핀 꽃을 보고 소녀가 탄성을 지르듯이 아름다움과 설렘이 있습니다. 새들이 아침마다 나뭇가지에 앉아 밤 사이에 벌어진 세상 소식을 전해 주듯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람에 든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며 부드럽게 속삭이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 대지는 말없이 묵묵히 견디며 꽃을 피워 내고 초목을 기릅니다. 또 동물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상처 입은 자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렇게 세상에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잠시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렇게 어머니 대지는 늘 경이와 신성함을 몰고 다닙니다.
그래서일까. 이런 어머니 대지를 나바호인들은 '변화하는 여인'이라 부릅니다. 겨울이 왔는가 하면 어느새 봄이 저만큼 와 있고, 여름이 왔는가 싶으면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달이 차 오르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느새 기울고 해가 쨍쨍한가 하면 순식간에 눈보라가 날립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늘 균형과 조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달픈 우리네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는 창조적인 힘이 있습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여명이 밝아 오듯이...

우리말에도 "인고의 세월을 견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디언들이 쓰는 '견딘다'라는 말과 달리, 씀바귀처럼 쓰디쓴 회한이 묻어납니다. 밝음은 좀처럼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디언들의 '견딘다'는 말에는 삶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관하지 않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과 종교와 기도를 하나로 보았던 그들의 진지한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에는 고난 속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자식과 가족들을 보살피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모르는 어머니처럼... 그러고 보면 성숙한 인디언 남성들이야말로 어머니의 이런 고귀한 마음가짐을 깊이 체득하고 있는 이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극도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전쟁보다는 평화와 양보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삶을 바라보는 이런 깊은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것입니다.
자칫 서양의 스토아 철학자들처럼 완고해지기 쉬운 이 '견딘다'라는 말 속에서 오히려 삶의 기쁨과 경이를 보게 해 줌으로써 우리의 삶을 신성하게 해 준 인디언들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4년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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