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연구소
2004/5/26(수)
조회: 5457
40년 먼저, 중국이 아메리카에 도착하다  
남쪽으로는 남극에서부터, 북쪽으로는 페루의 안데스 산맥까지 수천 마일에 걸쳐 뻗어 있는, 그토록 거대한 영역의 육지와 대양을 해도에 담는 데에는 숙련된 측량사들과 항해사들도 수천 시간이 걸렸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광대한 공간을 포함해야 하는 해도 제작 작업은 여러 선단을 이용하여 잘 조정해서 해야 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남대서양에 도달하기 전에 그러한 선단을 바다로 내보낼 능력이 있는 유일한 국가는 중국이었고, 유일하게 그럴듯한 기회는 1421년 사이의 대항해 중 '잃어버린' 2년 동안 중국의 보선단이 제공했다. 나는 내가 옳다고 확신하지만, 아직도 중국의 남아메리카 순회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가장 명백한 증거는 명나라 초기의 도자기로 가득한 보물선의 남아 있는 난파 잔해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난파선의 잔해는 세계의 다른 곳에도 중국 보선단이 존재했다는 점을 확증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남아메리카 연안에서 그러한 난파선을 찾는 일은 장기간의 과제가 될 것 같다. 바다는 난파의 잔해와 내버려진 화물들을 부수고 휩쓸어버리는, 그칠 줄 모르는 폭풍과 강력한 조류와 싸우지 않는가? 수색에 착수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내게는 임시 해결책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남아메리카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들이 그곳에 상륙했을 대 중국 고유의 식물이나 동물을 발견했는가? 아니면 최초의 유럽인들이 중국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아메리카에 특유한 식물을 보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중국의 정크선들이 그것들을 고국으로 가져왔는가? 다행스럽게도 수많은 저명한 학자들이 수 년 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왔다. 내가 그들의 연구를 찾게 된 것은 페루를 방문한 첫날 아침, 닭 우는 새벽에 잠에서 깨고 난 뒤의 일이다. 나는 말레이시아에 산 적이 있어서 아시아 암탉의 새벽 울음 소리('kik-kiri-kee')가 'cock-a-doodle-do' 하는 유럽 암탉의 새벽 울음 소리와 얼마나 다른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나는 친숙한 'kik-kiri-kee' 소리를 알아챘고, 어떻게 유럽의 암탉이 아닌 아시아의 암탉이 페루에 있게 되었을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가축이 된 아시아의 수탉과 암탉은 수천 년 전 동남아시아와 남중국, 안남,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의 밀림에서 나타났다. 그 계통은 여전히 유럽의 암탉과는 꽤나 다른 상태에 있다. 마젤란은 리오(Rio, 지금도 그렇게 불린다)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아주 많은 닭을 발견했다....그들은 낚싯바늘 한 개나 단도 한 자루에 닭을 여섯 마리나 주었는데도 그들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마젤란과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에서 발견한 닭은 사실 유럽의 '똥 더미 닭(dunghill fowl)'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다. 그것들은 완전히 다른 네 개의 주된 유형으로 구분되었다. 말레이 종은 크고 여위었다. 수탉은 식탁의 음식을 쪼아먹을 수 있었다. 그것들은 닭보다는 칠면조를 더 닮은 가는 머리를 지녔고, 목 부위에 털이 없었으며, 가슴 아래로도 때 모양의 털 없는 부위가 있었다.
중국 종은 땅딱막하고 무거운 체구, 복슬복슬한 깃털, 짧은 날개, 털로 덮인 다리를 지녔다. 수탉은 그리 많지 않은 꼬리 깃털과, 매우 작고 짧고 무딘 며느리발톱을 지녔다. 그것들은 잘 날지 못했고 쉽게 길들여졌다. 부드러운 깃털의 오골계(흑피증 닭-'흑피증'은 이 기이한 새의 온통 검은색인 깃털, 피부, 살, 뼈를 지칭한다)는 오늘날까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발견된다. 네 번째 유형의 암탉은 아시아 곱슬머리 닭인데, 깃털이 납작하게 누워 있지 않고 몸쪽으로 말려 있다. 마찬가지로, 곱슬머리 닭이 남미 곳곳에서 발견되던 1500년의 지중해 세계에서는 이 새와 닮은 동물이 전혀 없었다.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유럽 암탉의 알이 흰색이거나 담황색인 데 반해 아시아의 암탉은 푸른 껍질의 알을 낳는다는 점일 것이다. 푸른 달걀은 칠레에서 멕시코까지 어디에서나 여전히 발견된다.
또 다른 두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만일 유럽인들이 닭을 가지고 왔다면 남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유럽식 이름을 차용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 남아메리카 북부의 아라와크족은 오골계를 카라카(karaka)라고 불렀다. 인디언 이름은 카라크나트(karaknath)이다. 북서 멕시코에서 닭은 토리(tori)였고, 일본에서는 니후아토리(nihoatori)로 '마당 새'를 뜻했다. 1421년 제국이 팽창에 막 착수했던 당시 잉카의 황제들은 종종 깃털 옷을 입었으며 새의 이름을 차용했다. 그들의 케추아어로 닭은 후알파(hualpa)였는데 토팍 유팡키(Topac Yupanqui, 1440?~93)가 차용한 이름이다. 아타후알파(Atahualpa)는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전복시킨 황제의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잉카인들은 적어도 정복자들이 도착하기 40년 전에 닭에 대한 낱말을 갖고 있었다.
이 시기 닭과 달걀을 먹은 이들은 유럽인이 거의 유일하다. 동남 아시아와 중국에서 닭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쓰였다. 달걀을 이용하거나 나무 껍질 종이에 닭의 피를 떨어뜨린 뒤 태우면서 점괘를 보는 중국의 관습, 그리고 오골계가 악귀로부터 집을 보호한다는 믿음은 남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되며,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인디언들 역시 닭과 달걀을 먹지 않았다. 제물 또는 점괘를 보거나 병자를 치유하는 데 그것들을 사용했다.
아시아 닭은 아메리카의 대서양 연안과 태평양 연안 모두에서, 북쪽으로는 멀리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에서까지 발견되었다. 이 새들은 날 수 없으므로 분명 배에 실려 왔을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거리를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비유럽 선박은 중국의 것뿐이었다. 유럽인의 정복에 앞서 아시아의 닭이 확산되었음은 피리 레이스 지도 위에 그려진 땅들, 즉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 삼각주, 브라질, 파타고니아, 칠레, 스페인(또는 다른 유럽)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았던 지역에서는 엷은 파란색의 알을 낳으며 유럽의 다른 새들에게서 볼 수 없는 아시아적 특징을 지닌 닭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선단이 남아메리카로 닭을 가져온 것이라는 명백한 결론을 피할 수 없다.

아시아 닭이 지중해 닭과 매우 다르고,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축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특성이 아시아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닭은 지중해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남아메리카로] 처음 도입되었다는 명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메리카의 닭에 관해 구할 수 있는 자료 전체를 검토해보면, 에스파냐인이나 포르투갈인이 아메리카에 닭을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결론은 모든 증거에 분명하게 위배된다. 지중해인들은 1600년이 되어도 아메리카 인디언이 소유했던 은하수처럼 많은 닭을 갖지도, 또 알지도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해, 과거의 틀에 박힌 생각 대신에 자료에 주목하는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그때는, 거듭 말하지만 지중해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훨씬 전에 태평양 너머로 닭이 전해졌다는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결론이리라.

두번째 계열의 증거는 아메리카가 원산이며 정화의 항해 전에는 중국에 알려지지 않았던 매우 특이한 식물인 옥수수에서 나왔다. 닭이 날 수 없듯이 옥수수도 저절로 퍼지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 발견되든지 그것은 인간이 전파한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하기 전에 옥수수가 아시아로 전래되었다는 꽤 많은 증거가 있다. 예를 들면, 마젤란의 일지 담당자였던 안토니오 피가페타(Antonio Pigafetta),sms 1520년에 필리핀의 리마사바(Limasava)에 상륙한 원정대를 기술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섬 주민들은 장군[마젤란]을 그들의 배로 초대했는데, 그 안에는 그들의 상품, 즉 구근(球根)류, 계피, 생강, 후추, 육두구(肉荳구)와 옥수수가 있었다. 피가페타가 식물을 오인했을 리는 없다. 이탈리아 원문으로 씌어진 그의 글에서 옥수수는 그가 카리브 낱말 maiz를 붙였던 것에 대비시켜 miglio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옥수수가 무엇처럼 보였는지 알았고(그것은 "인디언의 옥수수와 같은 알갱이를 가졌고, 알갱이는 뗄 수 있었으며, 라다[lada]라고 불렸다."), 리마사바로 오는 길에 남아메리카에서 마젤란과 함께 수 개월을 지냈을 뿐 아니라, 승선한 몇몇 선원들도 카리브 해에서 콜럼버스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중국 기록에 따르면, 정화의 함장들은 '유별나게 큰 곡물 알갱이'를 갖고 돌아왔다. 중국인들은 보리만한 알곡의 쌀에 익숙해 있었다. 쌀과 비교해 '유별나게 큰' 알갱이로 유일한 것은 옥수수 알갱이였다. 다른 증거들도 풍부하다. 포르투갈인들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에서도 옥수수를 발견했으며, 1414년에 건조되어 1423년 남서 필리핀의 판다나(Pandanan) 해저에서 침몰했다가 최근 발굴된 한 정크선의 배 밑 짐칸에서 메타데스(metates, 남아메리카에 특유한 옥수수 가는 도구)가 발견되었다.

나는 중국의 선단이 1421년에 남아메리카에 도달했으며 피리 레이스 지도에 나타난 땅을 마젤란보다 먼저 탐사했다는 데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웅장한 서사시와도 같은 항해를 떠난 것은 전세계를 중국의 조공 체계 속에 두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왜 황량한 파타고니아의 그 지역을, 거래할 것도 전혀 없고 버베리(burberries)와 물고기를 제외하면 자연자원도 거의 없고, 순박한 나신의 사람들만이 거주하는, 눈보라치며 혹독하게 추운 땅을 지도에 담는 데 그토록 심한 고생을 해야만 했는가?

*개빈 멘지스, 『1421』, 조행복譯, 사계절, 2004, 159~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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