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언 공부 :::

이름: 원충연
2004/5/10(월)
조회: 4219
원시인의 북미모둠살이 6- 원충연  
에이콘 공동체

더불어, 그러나 자유롭게


사진 1. 도토리 집
독한 감기가 걸렸던 나는 해먹 위에서 편한 쉼을 가질 수 있었다. 해먹 뒤의 2층짜리 공동주택에는 개인 숙소, 공동 식당, 씨앗보급회사 사무실, 공동체 사무실, 비디오 감상실 등이 있다.


11월 10일. 이제 두 달 동안의 브루더호프 생활을 마치고 다른 공동체로 옮길 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많이 아프다. 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대화는 물론이고 걷기도 힘든 상태가 벌써 일 주일째다. 스프링 밸리(Spring Valley) 브루더호프에서 머무는 동안 같은 주에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왔다. 그런데 그 곳에서 독한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할로윈 축제 전날 열린 대학가의 한 파티에 참가했다가 너무 무리를 한 것이 빌미를 주었나?
브루더호프 다음에는 펜실베이니아 아래에 있는 버지니아 주의 트윈 옥스(Twin Oaks) 공동체의 3주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로 했다. 그런데 브루더호프에서 떠나기로 한 날에서부터 트윈 옥스의 방문자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로 한 날 사이에 일 주일이 빈다. 트윈 옥스에서는 거주자들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정해진 기간 밖에는 방문객을 받을 수 없다며 근처에 있는 작은 공동체인 에이콘에서 묵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한다.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 쉴 수 있는 곳에서 지낸다면 아픈 몸을 회복하고 여행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버지니아 주의 큰 도시 중에 하나이고 버지니아 대학이 있는 샤를롯츠빌(Charottesville)의 공공도서관 앞에서 마중 나올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도서관 앞 계단에 보니 매우 자유로운 차림을 한 남녀 둘이 있다. 모두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고 해어진 청바지를 입었는데 머리와 옷에 장식들을 하고 있었다. 공동체에서 나온 사람일까? 다가가서 말을 걸었는데 활짝 웃으며 반겨 준다. 거기에다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인사까지!

숲으로 간 히피들
Acorn Community, 도토리 공동체!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작은 공동체다. 이미 30여 년 전에 세워진 트윈 옥스와 미주리 주의 이스트 윈드(East Wind) 공동체 사람들 중 일부가 좀더 자유로운 공동체를 실험하기 위해 1993년에 세웠다. 지금부터 방문하는 공동체들은 기독교 공동체와는 달리 일정한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지 않는 곳이다. 미국의 주류 문화에 반기를 들고 숲으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많고, 미국의 주요 종교인 기독교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반감을 갖고 있다.
이들 공동체를 처음 일군 사람들은 대부분 1960년대의 히피(Hippie)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냥 ‘1960년대 꼬뮨(1960s commune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숲으로 들어온 평화주의자 히피들은 생태주의 같은 새로운 가치를 수용했고, 나아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공동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연대하고 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세계로의 여행은 긴장과 기대를 함께 주었다.
에이콘에는 15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두 개의 공동체 집 사이와 앞뜰에 유기농 텃밭을 가꾸어서 식탁에 필요한 채소를 기르고 있고, 집과 밭 뒤로 펼쳐진 넓은 초지를 개간해서 가축을 기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30여 명이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절대 큰 규모나 틀에 짜인 규칙을 지닌 공동체로 발전해 나가지 않는 것이 목표다.
공동체 사업으로는 씨앗 보급, 깡통 공예, 해먹 만들기 등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하는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고 자신의 사정에 맞춰서 일정한 일을 하면 된다. 공동으로 하는 저녁 식사도 마음이 가는 사람이 준비하면 되고, 설거지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은 산처럼 쌓여 있는 그릇을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식당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내가 설거지를 모두 하겠다고 말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설거지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생색을 내보려는 속마음을 들켜서 낯이 뜨거워졌다.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여전히 스스로 긴장을 만들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통을 뒤지다
에이콘에 온 지 이틀이 되던 날 밤, 틀에 매이지 않는 이들의 생각을 실감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먹고 있는데 22살의 M이 ‘덤스터 다이빙(Dumpster Diving)’을 가자고 한다. “한밤중에 웬 수영이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되물었더니, “물 속이 아니라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야!”라고 말한다.
쇼핑센터마다 세워져 있는 쓰레기차에 실리는 큰 쓰레기통에는 날마다 멀쩡한 음식이 버려진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유통기한이 상점에서 물건이 팔려야 하는 시점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그 기한 안에 물건을 팔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버린다. 앞으로 한참을 더 보관해도 문제가 없을 것들도 예외가 없다. 그래서 어떤 자선 단체에서는 그런 음식을 노숙자같이 가난한 계층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것을 걱정한 회사들은 이를 꺼린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비공식적인 자선 창구인 쓰레기통을 즐겨 찾고, 어떤 젊은이들은 정기적으로 쓰레기통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 엉겁결에 M과 다른 일행을 따라 나선 나는 샤를롯츠빌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공식적으로는 쇼핑센터나 유통센터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이 불법이어서 경찰에 적발되면 외국인은 강제추방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직 많은 여행 일정을 남기고 있는 때여서 아찔했지만, 세계 식료품비 지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의 많은 민중들이 쓰레기통을 뒤져야 생존을 이어갈 수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아무튼 한바탕 쓰레기통 수색을 마치고 자동차 트렁크에 음식을 가득 싫고 온 우리는 왠지 모를 풍요를 느끼면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시작을 하는 사람들
덤스터 다이빙을 하고, 원하는 때에 일하고, 해먹에서 낮잠을 즐기는 등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이들이지만 공동체 안에서 삶을 일구어 나가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진지했다. 하루는 공동체의 미래를 의논하는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모임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이 어떻게 해서 공동체에 살게 되었고 이 곳의 삶을 통해서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온 공통의 문제의식을 함께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모두 다 이해는 못했지만 주의 깊게 들어보니 이들 중에는 획일적이고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적인 도시의 삶에서 직장에서의 부적응, 가족과의 이혼 갈등 같은 경험을 한 뒤에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온 사람이 많다. 많은 아픔이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주류 사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과 따뜻함을 함께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그들의 얘기 중에 재미있었던 것은 공동 작업과 생활을 위해 최소한의 약속은 하자고 하면서도 그것이 각자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원점에서 다시 얘기하자고 한 대목이다. 자신들의 선배 공동체들이 점점 개인들의 자유를 묶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어서 그 대안으로 에이콘을 만든 만큼 개인들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면서 모둠살이를 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서로 반대되는 것을 함께 추구하려는 이들을 보면서 미국 공동체 운동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주의적 사고체계가 기본이 되는 문화에서 어떻게 모둠살이를 실험해 올 수 있었을까, 앞으로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를 조화시켜 나갈까.
이런 궁금증과 기대 때문일까? 몸은 다 나았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다.


사진 2, 3. 깡통 공예
공동체의 주요 수입원 중의 하나인 깡통 공예. 사용한 깡통을 재활용해서 장식물을 만든다. 사진은 용접기를 이용해 모양을 만든 깡통에 물감을 칠해 말려 둔 모습.


사진 3. 쓰레기통에서 나온 양식
덤스터 다이빙(Dumpster Diving)을 해서 구한 양식들. 음식을 구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진 경험은 풍요와 빈곤이라는 현대 사회의 양면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진 4. 뜨거운 목욕통
그들은 자주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목욕통(Hot tub)에 물을 붓고 나무로 직접 불을 때워 목욕을 즐긴다. 안내판에는 ꡒ12명의 히피들이 목욕을 할 수 있다ꡓ고 적혀 있다.


*원충연 님께서 글과 사진을 제공하여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연구소







정상명: 원충현님, 오늘 연구소에 여러 자료들을 가져오셔서 고맙습니다. 저희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글도 잘 읽었구요. 특히 사진 4가 참 마음에 들어 자세히 관찰했어요. 드럼통 앞쪽에 나무때는 곳이 있나보군요. 그리고 드럼통 아래에 연통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맞나요?  -[05/15-01:39]-


원충연: 예, 드럼 통 앞 쪽 밑으로 나무를 때는 공간이 있어요. 그 끝으로 연통이 연결되어 있고요. 그리고 드럼통 안에는 발이 디지 말라고 현관 앞에 신발 먼지 털이 같은 나무로 짠 받침대가 있습니다.  -[05/15-14:50]-

정상명: 네, 그렇군요. 미국이란 나라가 참 재미있어요. 미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속에서 반환경적인 삶들을 살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또 이렇게...하긴 이래서 지구가  숨통이 끊기지 않고 겨우겨우 살아있긴 하지요.  -[05/18-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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