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연구소
2004/4/19(월)
조회: 29309
시애틀추장 연설>죽음이란 없다, 다만 변할 뿐  
“인디언들의 밤은 어둠의 징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저 하늘은 나의 동족에게 자비의 눈물을 흘려왔습니다. 저 하늘은 변함없이 영원할 것 같지만 이제 변할 것입니다. 오늘은 화창하지만, 내일은 구름이 드리워질지도 모릅니다. 나의 말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별들과도 같습니다. 워싱턴의 위대한 추장은 졌던 해가 다시 뜨고 계절이 어김없이 돌아옴을 믿듯이 이 시애틀이 하는 말을 믿어도 됩니다. 백인 추장은 우리에게 워싱턴의 대추장의 우정과 호의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친절의 표시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우정을 다시 돌려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람들은 많아 거대한 평원을 덮고 있는 목초와도 같습니다. 나의 사람들은 적어, 폭풍이 휩쓸고 간 평원에 흩어져 있는 나무들과도 같습니다. 그 위대하고 선한 백인 추장은 우리의 땅을 사들이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는 땅만큼은 기꺼이 허용하겠다는 말도 함께 전해 왔습니다. 이런 제안은 실로 정당한 것으로 생각되며, 더 나가서 관대한 것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왜냐하면 홍인은 더는 존중을 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제안은 지혜로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광대한 땅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가 조가비들이 가득한 바닷가를 뒤덮듯이, 우리의 동족들이 대지를 뒤덮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리고 이제 우리 부족의 위대함은 눈물어린 기억 속에만 남아 있습니다. 나는 느닷없이 닥쳐온 우리의 쇠퇴를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슬퍼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한 나는 우리를 더욱 빨리 쇠퇴하게 만들었던 흰얼굴 형제들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충동적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실질적인 피해를 입든 상상 속에서 피해를 입든, 화가 나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합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이 검다는 것을 나타내며, 그래서 종종 잔인하고 무자비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늙은이들은 그들을 제어할 길이 없습니다. 늘 그래 왔으며, 백인들이 처음으로 우리 조상들을 서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을 때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에게 품었던 적대감이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서로를 적대시하면, 모든 것을 다 잃을 뿐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벌어져도 집에 머물러 있는 노인들과 전장에 아들들 보낸 어머니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보복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경우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워싱턴에 있는 우리의 선한 아버지-조지 왕이 그의 경계들을 더 북쪽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당신들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도 된다고 봅니다.-는 우리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하면 우리를 보호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용감한 전사들은 우리를 위해서 가시가 돋친 튼튼한 벽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의 전함들은 우리의 항구들을 가득 메워서 우리의 숙적인 히다족과 침프시아족을 북쪽 멀리 쫓아 그들이 우리의 여인들과 아이들과 노인들을 위협하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진정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하겠습니까?
당신들의 신은 우리의 신이 아닙니다! 당신들의 신은 당신네 사람들은 사랑하고, 우리 사람들은 미워합니다. 그는 강한 팔로 백인을 사랑스럽게 보호하고 품어 주며, 아버지가 어린아이의 손을 끌어 주듯이 백인을 인도합니다. 그러나 그는 홍인 자녀들은 버렸습니다. 만일 홍인들이 진실로 그의 자녀라면 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신, 위대한 정령 또한 우리를 버린 것만 같습니다. 당신네 신은 당신들을 하루가 다르게 왕성하게 만들어줍니다. 곧 그들은 온 땅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썰물처럼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백인의 신은 우리 민족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를 보호해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어디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아와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형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당신들의 신이 우리의 신이 되어, 우리를 새로 번영하도록 만들어 주겠습니까? 어떻게 위대함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꿈을 줄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하늘에 있는 아버지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면, 그분은 편파적인 분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백인 자녀들에게만 찾아왔고, 우리는 그를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는 당신들에게는 법을 주었지만, 한때 별들이 창공을 가득 채우듯이 이 거대한 대륙을 가득 채웠던 홍인 자녀들을 위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기원과 다른 운명을 지닌,서로 다른 두 인종입니다. 우리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에게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며, 그들의 안식처는 거룩한 터전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조상들이 묻혀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왔고, 아무런 미련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들의 종교는 돌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들이 잊지 못하도록, 당신들이 믿는 신이 자신의 강철로 된 손가락으로 새긴 것입니다. 홍인들은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종교는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이며, 우리 노인들의 꿈입니다. 위대한 정령이 엄숙한 밤에 우리 조상들에게 전해 준 것이며, 또한 우리 추장의 꿈으로서 우리 부족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죽은 조상들은 죽음의 문턱을 지나서 별들 저편에서 방황하면서 곧 당신들과 자신들이 태어난 땅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금방 잊혀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죽은 조상들은 그들을 낳아 준 아름다운 세상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푸른 잎이 무성한 골짜기들과, 속삭이며 흐르는 강들, 거대한 산들, 깊은 계곡들과, 푸른 나무들로 둘러싸인 호수와 연안들을 사랑합니다. 종종 그 행복한 사냥터에서 돌아와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해 줍니다.
낮과 밤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해가 떠오르면 아침 안개가 달아나듯이, 홍인들은 항상 백인들이 다가오면 달아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제안은 공정해 보입니다. 내 동족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당신들이 제공하는 보호구역으로 물러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평화롭게 살 것입니다. 내 동족들에게는 위대한 백인 추장의 말을 짙은 어두움 속에서 자연이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은 날들을 지내는 것은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그 날들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디언들의 밤은 어둠의 징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평선 위에는 단 하나의 희망의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바람이 슬픈 목소리로 울고 있습니다. 홍인의 길에는 우울한 운명이 드리워진 것 같습니다. 상처를 입은 암사슴이 다가오는 사냥꾼의 발자국 소리를 듣듯이, 홍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잔인한 파괴자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것이며, 서서히 최후를 맞을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몇 달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날 겨울도 몇 번 남지 않았습니다. 한 때 이 드넓은 땅에서 활동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던 강한 무리들, 한때 당신들보다 더 막강했고 희망에 부풀었던 무리들의 후손 가운데, 살아남아 동족의 무덤 앞에서 애달피 눈물 흘릴 자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왜 동족의 운명을 슬퍼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바다의 파도들처럼, 부족이 부족을 이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니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들이 쇠퇴할 때는 아득히 멀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과 함께 친구처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백인이라 해도 인간의 공통적인 운명은 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결국 형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제안을 깊이 생각해볼 것이며, 결정을 내리면 당신들에게 알려 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나는 지금 여기서 이런 조건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조상들과 친구들과 자녀들이 묻혀 있는 무덤들을 찾고 싶을 때면 언제든 아무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나의 동족들에게 이 땅의 그 어느 한 자락도 신성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슬프기도 행복하기도 했던 갖가지 사건들이 모든 언덕과 강, 모든 평원과 숲을 신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조용한 해변을 따라서 뜨거운 햇볕을 견디며 말도 없이 앉아 있는 죽은 것 같은 바위들조차도 우리 동족의 애환이 얽힌 감동적인 사건들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당신들이 지금 딛고 서 있는 흙조차도 당신들의 발걸음보다는 우리 조상들의 발걸음에 더 정겹게 반응합니다. 그 흙은 우리 조상들이 흘린 피로 기름지게 되었기에 우리의 맨발은 그 흙의 정감어린 손길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우리의 용사들, 사랑하는 어머니들, 기쁘고 행복했던 처녀들, 그리고 잠시나마 여기서 살았고 여기서 즐거워했던 우리의 어린아이들까지도 이런 우울한 고독을 사랑할 것이며, 저녁이 되면 그림자같이 되돌아오는 정령들을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홍인이 죽어 내 동족의 기억이 백인들 사이에서 신화가 되는 그 때, 이 해안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떠나간 내 부족들의 영혼으로 북적일 것입니다. 당신들의 자녀들의 자녀들이 들녘에서, 공장이나 가게에서, 길에서, 또는 길도 없는 고요한 숲 속에서 혼자라고 생각할 때,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의 땅 어느 한 자락도 고독을 위해서 바쳐진 곳은 없습니다. 당신네 도시의 거리들과 마을들이 고요하여 적막하다고 생각되는 밤에도, 한때 그곳을 가득하게 채웠고, 아직도 그 아름다운 땅을 사랑하는 영혼들로 붐빌 것입니다. 백인은 결코 혼자가 아닐 것입니다.
백인들이 나의 동족들을 정의롭고 친절하게 대하게 해 주십시오. 죽은 사람들이라고 힘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음이라고 말했습니까? 죽음이란 없습니다. 다만 변할 뿐입니다.

--W.C. 벤더워스 엮음, 『인디언 추장 연설문』, 김문호譯, 그물코, 2004,170~179




금연못각: 다시 읽어보아도 여전히 감동적인 연설입니다. 이들 추장들에게 누가 이렇듯 놀라운 지혜를 선물했으며, 이로톡 굴하지 않는 신념과 인간에 대한 관용과 명철한 비판의식이 가능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인디언공동체들의 독특한 시스템도 작용했겠지만, 자연의 힘이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자연을 잘 관찰하고, 그곳에서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한 사람들이 다다를 수밖에 없었던 지혜와 용기, 말입니다. -[04/25-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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