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언 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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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화가 애국이다!-원충연  
원시인의 북미모둠살이 3

사진 1. 메이플 릿지 브루더호프
공동체 마을을 산에서 바라본 모습. 공동 주택, 어린이집과 학교, 공동식당 겸 모임장소, 공장, 목장과 밭, 그리고 자연을 함께 나누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마을 식당. 3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데, 한 사람이 갑자기 식탁에 올라가 외친다. “평화가 애국입니다. 당신이라면 같은 형제자매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갈 길은 오직 하나, 평화입니다!”
조용했던 식당은 순간 혼란에 빠진다. “맞아, 평화가 애국이야!”라며 지지의 함성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너 미쳤냐? 너 공산주의자지? 어서 거기서 내려오지 못해, 여기서 사라져버려!”라며 야유를 퍼붓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연설은 계속되고 지지와 반대로 식당은 혼란에 휩싸인다.
이때, 식당 출입문으로 기타를 맨 두 사람이 들어와 모든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다. 뜻밖에도 그 중 한 사람이 “여러분, 우리 이렇게 싸울 것이 아니라 함께 노래를 부릅시다!”라고 소리치더니 일행과 함께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의 허리를 잡고 기차 모양을 만들어 노래 장단에 맞춰 발을 구르며 식당 안을 휘젓고 다녔다. 아이들의 용기에 고무된 어른들도 언제 패를 갈라 싸웠냐는 듯이 자리에 일어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함께 뒤엉켜 즐거워한다.
이 일이 일어난 곳은 사실 브루더호프(Bruderhof : 독일어로 ‘형제들의 처소’라는 뜻) 공동체의 공동 식당이었다. 공동체 학교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미국의 이라크 전쟁 추진에 대한 글짓기를 했고, 그 내용을 공동체 식사시간에 대중 연설회의 형식을 빌려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예고 없이 이뤄진 일이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은 마치 실제 벌어진 일인 것처럼 열띠게 토론해 아이들과 함께 전쟁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한마음이 되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기쁨을 나누었다.

캐나다 토론토의 가톨릭 워커 공동체를 떠난 나는 8월 26일 미국 뉴욕의 기독교 공동체 브루더호프를 방문했다. 국제 공동체인 브루더호프는 미국에만 뉴욕 주에 5곳, 펜실베이니아 주에 2곳이 있는데, 나는 뉴욕의 메이플 릿지(Maple Ridge)에서 한 달, 펜실베이니아의 스프링 밸리(Spring Valley)에서 한 달을 지냈다.
브루더호프는 1920년, 에버하르트와 에미 아놀드(Eberhart and Emmy Arnold) 그리고 그들의 협력자에 의해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유럽을 휩쓴 기독교 개혁 운동인 ‘청년 운동’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초대 기독교인들처럼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 살면서 예수님의 산상 수훈을 실천하는 제자들이 되기를 원했다.
모든 종류의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브루더호프는 나치의 박해로 1930년대 말에 영국으로 옮겨갔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다시 남미의 파라과이로 옮겨가야만 했다. 이들은 1950년대부터 미국과 영국에 공동체들을 세우기 시작했고, 1960년대 초에는 남미 공동체의 문을 닫아 현재 미국 6곳, 영국 2곳, 호주 1곳, 독일 1곳, 모두 11곳의 공동체에 약 3천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시골 지역의 다른 곳과 구분된 마을에서 집과 토지 등 모든 재산을 함께 나누며 독립된 공동의 학교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공동체마다 큰 곳은 약 450명, 작은 곳은 약 60명의 사람들이 모둠살이를 하고 있다. 3세대가 함께 모여 사는 이곳은 가톨릭 워커 공동체에 비해 단일 규모가 훨씬 크고, 멤버들이 공유하는 것의 범위가 매우 넓다. 이들은 아미쉬(Amish), 메노나이트(Mennonite), 퀘이커(Quaker) 등 전통적인 기독교 공동체와 매우 유사한 정신과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보다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공동체 운동을 추구하고 있다.


사진 2. 세상에 평화를!
9․11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공동식당 입구에 설치한 장식물. 현장 사진과 꽃 가운데 가족을 잃은 아이의 마음을 담은 시가 붙어 있다.


메이플 릿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9·11 테러 1주기가 다가오는 때였다. 공동체 사람들은 공동 식사시간과 모임시간을 이용해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시간을 자주 갖고 있었다. 그들은 가엾은 생명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와 북한 등을 향해 취하고 있는 강경한 조치에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강경파의 정책은 세계 평화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또 다른 생명의 대규모 희생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때 히틀러에게 준엄하게 충고하는 편지를 보냈던 그들은 얼마 전 부시에게 전쟁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공개편지를 보냈다.
틈이 나는 대로 토론과 대화를 즐기는 이들은 쉬는 시간은 물론이고 작업 도중에도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은 “당신 자신에 대한 탐험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남북·북미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해왔다. 또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럽에서 전쟁을 경험한 브루더호프 1세대는 종교적 신념과 양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할 수 없다며 군대 징집을 거부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투옥을 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들이 독일에 이어 영국을 떠나 남미의 파라과이로 옮겨야 했던 이유도 전쟁을 반대하고 종교적 신념을 지키길 원하는 공동체를 받아줄 곳이 당시에 그곳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 역시 선배 세대의 평화를 위한 신념과 행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20대 중반이 다 된 C는 어느 날 “충연, 만약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서 정부가 강제 군대 징집을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었다. 2년 2개월이라는 의무 군 생활을 고스란히 했고, 직업 군인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나는 사실 아무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끝내 답을 못한 나는 “그럼 너는 어떻게 할 건데?”라고 되물었다.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뜻밖에 그는 “나는 ‘아니야(No)’라고 말할 거야. 알아, 그게 힘든 일이라는 걸…. 하지만 어떻게 소중한 다른 생명을 죽일 수 있겠어?”라고 대답했다. 말은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왠지 그의 말은 진짜로 느껴졌다. 그들의 선배 세대가 그랬던 것을 생각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 중에 많은 이들이 국내외의 사회복지 기관에서 1~2년 동안 사회봉사를 자발적으로 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그의 말이 진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9월 11일, 브루더호프 사람들은 소방관과 경찰관을 포함한 이웃들을 공동 점심시간에 초대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갖기 위해서였다. 큰 규모와 형식을 갖춘 기념식을 예상했지만 행사는 매우 간단했다. 평소와 같은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했고, 그때의 아픈 기억을 나눈 다음에, 평화를 기원하는 공동체 아이들의 노래를 들었다. 감정적인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아무런 시도도 없었다. 아픈 기억을 서로 위로하고 평화를 바라는 말들만이 오갔을 뿐이다.

“포플러나무(Poplars)는 시원한 봄바람에 흔들리고
상록수(Evergreens)는 우거진 가지 위에 눈을 덮고 있고
미루나무(Aspens)는 마디진 껍질과 튼튼한 가지를 가진 채 높고 곧게 뻗어 있고
돌능금나무(Crabapple trees)는 꽃과 신맛 나는 열매를 맺고
느릅나무(Elm trees)는 중얼대며 속삭인다. 평화(PEACE)”
- Benjamin Burnett(초등학교 5학년)

평화를 기원하는 브루더호프 아이의 시들을 부시와 그의 군대가 읽기는 했는지…. 백악관에서 열리기로 했던 시낭송회를 취소하고 살육의 사육제를 즐기는 그들은 아마도 가슴이 없는 사람들인 것 같다.

*글과 사진을 원충연 님께서 제공하여 주셨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연구소 심현숙



금연못각: 인도나 네팔 등지를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더러 불화를 음악으로 극복했던 예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배낭여행족들 가운데에도 아나키스트들이 많지요. 세계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자신의 선택이 당당하지요. 그들은 때로 제도권의 언론조직이 못하는 정보를 세계에 퍼뜨리는 역할도 본의 아니게 하곤 하지요. 우리나라의 공동체들은 대개 이른바 사이비종교단체들이 하는 패들이 성공적(?)으로 운영하곤 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히 범죄적 착취와 폭력, 치부와 음탕한 사생활들이 깔려 있곤 하지요.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공동체가 성공하기 쉽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물신주의에 저항할 용기와 불편을 감수할 정신력, 인간본성의 이기주의 같은 것들이게지요. 아마!...원선생님의 공동체순례가 좋은 깨달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04/25-14:59]-
호호새: Benjamin Burnett라는 소년이 지은 시를 읽으니 프랑코 독재정권에 저항한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가 생각닙니다. 저는 다큐멘터리로 카잘스의 생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1971년 93세의 나이로 카탈로니아 민요인 '새의 노래'를 연주하기 전에 했던 짧은 연설 중에 "새도 평화를 갈구하며 피이스(peace,평화),피이스(평화)라고 노래한다"고 말했던 장면이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평화는 모두 꿈꾸는 일이건만 현실적으로는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04/26-16:37]-
원시인: 피이스, 피이스. 눈을 감고 새처럼 소리를 내어 봅니다. 눈에 눈물이 고이고, 평화로운 마음이 듭니다. 상대에게 연민을 갖고, 또 나에게 연민을 갖게 될때, 솔직해지고 낮아질때 비로소 평화의 단초가 마련되는 것 같습니다. 음악은 예술은 분명히 우리가 그런 마음이 들도록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04/27-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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