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

와카쿠와 미도리, 김원식 譯 / 알마 / 291쪽 / 15,000원 / 2007년.


인간의 공격성은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인가

공격성은 인간의 본능이며 전쟁은 그 본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라는 통설은 전쟁을 운명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정말 그럴까.
동물학자 콘라드 로렌츠에 따르면, 동물 세계에는 “같은 종種끼리 서로 상처 입히고 죽이는 것을 막는 여러 행동생리학적 구조”가 있다. 동물들은 공격 본능과 함께 동족을 살상하지 않게 하는 장치를 가지는데, 이러한 억제 장치는 자기와 같은 크기의 동물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종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큰까마귀나 늑대는 단번에 동족을 죽일 수 있는 반면 억제 장치 역시 가지고 있기에 멸종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토끼나 비둘기, 침팬지는 같은 크기의 동물을 죽이지 못하므로 억제 장치도 필요 없다.
본래 인간은 비둘기나 침팬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무기의 발명은 인간을 큰까마귀의 부리를 가진 비둘기, 손도끼를 든 침팬지로 만들어버렸다. 이와 함께 살육과 억제의 균형도 깨졌다. 무기가 도달하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는 사람의 감정에 와 닿지 않는다. 선량하고 예의 바른 한 가족의 아버지가 폭탄 투하 장치의 버튼을 눌러 수백 수천 명의 아이들을 향해 융단폭격을 가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인류가 서로 절멸을 걸고 싸우는 것은 기능 오차라고 할 수 있다. 무기를 발명하고 서로 죽이는 것을 미덕으로까지 여기게 된 인류의 부자연스러운 사회적?문화적 상황인 것이다.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는 바로 그러한 상황에 대한 탐구이며,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역사적이지도 불가피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이뤄낸 문명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무력화시킬 만큼의 공포, 인간의 의식 수준을 단박에 석기 시대로 돌려버리고 마는 단순하고 강력한 힘, 전쟁! 이런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로 기술할 만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의로운 전쟁’의 예를 들며 그 불가피함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깡패들의 폭력 행위와 달리 전쟁은 국가가 합법적으로 행하는 집단적 폭력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의 가장 커다란 위험을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와카쿠와 미도리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에서 전쟁은 역사적이지도 불가피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고 강조한다. 단지 그 같은 주장들은 철저히 ‘가부장제 남성 지배형 국가’의 산물이며, 그러한 체제에서 벗어나야만 항상적인 전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녀는 ‘젠더 이론’을 제안한다.
“전쟁을 수행하는 남성들의 전쟁론은 전쟁을 긍정하고 유지해왔다. 그것은 당연하다. 남성이 쓴 전쟁 반대론도 무력했다.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전쟁을 수행한 적이 없는 젠더인 여성들이 전쟁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전쟁은 왜 그치지 않는가, 전쟁을 계속 유발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젠더 이론을 통해 규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아우슈비츠 이후 더 이상 낭만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아우슈비츠 학살 이후 낭만시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것이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의 몰락에 대한 인간의 참담한 고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었다.
아군과 적군으로밖에 구분되지 않는 전쟁. 그런 이유로 너무도 당연히 수많은 아우슈비츠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전쟁임을 생각한다면, 그 근원을 ‘가부장제 남성 지배형 국가’로 바라보는 와카쿠와 미도리의 제안이 설혹 남성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론이라 할지라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책 속으로

왜 모계제 사회에는 전쟁이 없었을까? 아이슬러에 따르면, 크레타에는 ‘성’의 자유가 있었으며 생명과 성애가 가장 높은 가치였기 때문이다. (…) 또한 자케타 호크스는 “크레타인은 자유로운 성생활에 의해 공격성을 전화했다”고 분석한다. (53-54쪽)

이제 남녀평등에 반대하는 세력은 재군비에 찬성하는 세력과 같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쉽게 말하면 이들의 주장은, 여자는 여자답게 집에서 국민을 양육하고 남자는 남자답게 가족과 여자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젠더 분업의 궁극적인 형태는 ‘여성은 생명, 남성은 전쟁’이다. 그래야 논리적으로 인구의 균형이 유지된다. (…) 여자가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결정해온 것은 언제나 국가였다. 그러지 않으면 가장 먼저 병사가 없어지고 만다. 부지런히 아이를 낳는 여자, 부지런히 죽이는 국가, 이것이 젠더 분업이 도달한 마지막 지점이다. (93쪽)

일본이 전시에 중국인과 조선인, 대만인, 미얀마인,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을 대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역사적 사실로 보아 명백하며 (…) 이라크에 대한 강력한 공격도 마찬가지다.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 ‘우리’가 아니고 ‘저들’이다. 인간조차 아니다. 히틀러가 유럽 내부에서 다른 종교를 가진 다른 인종인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만들어내야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125-126쪽)

순진하고 무지한 민중의 생명과 재산을 위기에 빠뜨리면서도 전쟁을 일으키고, 그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고향을 초토화하는 것이 근대국가라는 것은 이제 명백하다. 자위대를 파견한다는 국가 지도자의 말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는 국가 지도자가 전쟁을 하겠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178쪽)

전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강간이 있었다고 역사는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야만족에게 침입당했을 때 수백 명의 수녀가 강간당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그 수녀들이 자살하지 않도록 육체의 순결보다 영혼의 순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야 했다. (199쪽)

전쟁터에서의 강간은 전시 폭력의 한 형태이며 성적 표현을 이용한 공격이다. 그것은 보통 상대에게 정신적?육체적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주기 위해 집단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지며, 적인 남성에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동시에 상대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 강간은 적군 남성들에게 정신적?육체적 손상을 입히고 그들의 우월성과 지배를 적의 ‘눈동자’에 각인시키는 의례다. (200쪽)

종군위안부 제도는 러일전쟁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 내력을 지니고 있으며, 명백히 전쟁 수행을 위한 국가적 시책으로 설치된 것이다. 파시즘 시기의 군부는 개인의 복장은 물론 화가의 붓 한 자루까지 간섭하고 점검했다. 모든 점령지에 공적으로 설치되었던 위안소에 대해서만 그 책임과 관여를 부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233쪽)

이 책의 차례

들어가는 글: 가부장제 사회와 젠더

1장 인간은 왜 싸우는가
비극의 탄생: 호메로스의 영웅들의 죽음|‘죽음’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예술|파괴의 기쁨|공격은 ‘본능’인가?

2장 전쟁이 없는 시대가 있었다
마리야 짐부타스: 여성 고고학자의 성과|모계제 시대에 전쟁은 없었다|남성 지배의 시초|가부장 가족의 탄생|가부장제와 여성 지배|국가의 형성|가족국가와 군사화

3장 ‘남자다움’과 전쟁 시스템
‘남자다움’과 내셔널리즘|남자들 간의 유대|전쟁을 만드는 남성 동맹|적의의 상상력: 친구인가 적인가|타자의 절멸

4장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국가다
남성들의 국가론과 전쟁론|전쟁과 여성의 역할|폭력 비판|자본주의와 내셔널리즘

5장 여성 차별과 전쟁
전쟁과 가부장제|폭력과 공포에 의한 타자의 지배: 전쟁과 성폭력의 관계|전쟁터에서의 강제 매춘: 종군위안부

6장 내일을 향하여
여성 병사|페미니즘과 평화운동|새로운 평화 개념의 창출

마무리 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주석

글쓴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와카쿠와 미도리는 도쿄 예술대학 졸업하고 로마 대학에 유학한 후 도쿄 예술대학 교수와 치바 대학 교수를 거쳐 가와무라가쿠인 여자대학 인간문화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4명의 소년: 덴쇼 소년 사절과 세계 제국』『공주와 젠더: 만화에서 배우는 남성과 여성의 젠더 학 입문』『장미의 이코놀로지』『마니엘리즘 예술론』『여성 화가 열전』『감추어진 시선: 우키요에와 서양화 속 여성 나체상』『전쟁이 만들어내는 여성상』『회화를 읽다』『상징으로서의 여성상: 젠더 역사로 본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 표상』『황후의 초상: 쇼켄 황태후의 표상과 여성의 국민화』 들이 있다.

옮긴이 김원식은 1923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고 국대안 반대 투쟁을 겪으며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중퇴했다. 한국 환경운동의 여명기에 공해추방운동연합에 참여했으며 지금은 반핵반전운동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어로 옮겨 소개한 책으로는 환경사상의 내용과 역사를 153항목의 키워드로 살펴본 『환경사상 키워드』를 비롯해 『환경학과 평화학』『환경정의를 위하여』『위험한 이야기』『지구를 파괴하는 범죄자들』『시민 과학자로 살다』『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들이 있다.


*알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