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콜린 워드(Colin Ward) 지음 / 김정아 옮김 / 260쪽 / 12000원 / 2004


이 책의 원제 ‘Anarchy in Action'은 ‘행동하는 아나키’ 또는 ‘아나키즘의 실제 혹은 실천’을 뜻한다. 제목에서처럼 이 책은 아나키즘 이론보다도 아나키적 행동, 실제, 실천, 실용, 경험을 다루고 있으며, 그 점에서 그간 국내에 소개되어온 아나키즘 관련서와 명확히 구별된다. 즉 ‘현실적으로 가능한 아나키즘’을 구체적으로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다른 이론 중심의,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공허할 수 있는 책들과 분명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박홍규(영남대 법학과 교수), 「해설」 중에서

1. 아나키 이론이 아닌 아나키적 실천, 고전적 아나키즘이 아닌 현대의 아나키즘!

1973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아나키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읽힌 이 책은, 아나키즘 이론이 아닌 아나키적 실천과 행동을, 고전적 아나키즘이 아닌 현재의 아나키즘을 다룬 대표적인 저작이다.
이 책의 저자 콜린 워드는 아나키스트 사회, 곧 권위에 기대지 않고 자율적으로 조직되는 사회가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관심사는 “혁명 전략이나 아나키스트 사회의 작동방식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사회에서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과 그 역사적 경험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인간생활에서 “상호부조의 경향이 공격성과 지배욕의 경향 못지않게 강력한 것”임을 입증하려 했던 크로포트킨 이론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워드는 아나키 조직을 “권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조직하는 사회”로 정의한다.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비공식적, 대중적 자주조직의 경험은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자율적인 조직 운동도 아나키즘의 훌륭한 실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1936년 스페인혁명, 1968년 프라하의 봄 등 일련의 민중혁명의 역사적 경험 속에 녹아 있는 아나키즘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탈학교 운동·주택점거 운동·성해방 운동·노동자 경영권 요구·공동육아와 공동가사 운동 등 1960년대 서구 사회에서 일어난 일련의 자치적 실천운동과 아나키즘의 연관성을 상세히 밝혀주고 있다.
워드는 기성 질서에 대한 반감을 전파하는 반체제론자도 아니고, 국가 전복을 꽤하는 혁명가도 아니다. 교과서를 쓰기도 하고 교육행정에도 관여한 이력이 보여주듯, 그는 이 책에서 현실에 뿌리박은 아나키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인 1장∼5장에서 그는 아나키즘의 철학적·역사적 토대를 설명하고 있고, 6장∼13장에서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아나키즘이 어떤 형태로 발현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지금, 여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서 아나키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2. 이 책의 내용

1장 아나키 그리고 국가
정부와 국가에 대한 아나키즘의 고전적 비판을 정리한 장이다. 아나키스트는 국가를 국민의 이익과 반대로 움직이는 일군의 이해관계이며, 무력을 사용하는 정치 메커니즘으로 정의한다. 아나키스트가 최종적으로 할 일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약화시키고 없애버리는 것이다.

2장 자발적 질서 이론
조직화에 대한 아나키스트 접근방식의 중요한 요소는 한마디로 ‘자발적 질서 이론’이다. 자발적 질서는 대부분의 혁명에서, 재해를 겪은 후에 생겨나는 임시 조직에서, 기존의 조직형태나 위계적 권위가 없는 모든 활동에서 목격된다. 워드에 따르면 자발적 질서는 인간 행동의 한 유형이다. 1936년 스페인혁명, 1956년 헝가리 혁명, 1968년 프라하의 봄 등 혁명적 상황에 처해 있던 대중의 경험은, 두말할 필요 없이 자발적 질서의 훌륭한 예가 될 수 있다.

3장 리더십의 해체
4장 복잡성을 통한 조화
5장 우두머리 없는 동맹들
아나키즘 조직 이론의 기본 원칙은 무엇인가? 워드는 리더 없는 집단, 통일성보다 다양성, 중심적 권위가 부재한 동맹의 개념을 그 원칙으로 들고 있다. “사람마다 지휘할 때가 있고 지휘를 따를 때가 있다. 고정된 항구적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와 복종은 계속해서 교환되며, 상호적, 한시적, 나아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바쿠닌의 말처럼 아나키스트들은 지도자 없는 집단의 가능성을 믿어왔다.
4장에서는 인류학과 인공두뇌학 이론을 접목해 “중심도 없고 우두머리도 없고”, “부분들의 대립을 통해 느슨하게 연결되는” 아프리카 부족사회의 정치구조를 살핀다. 부족민 전체가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이 체제는 막강하고 탄력적이다.
아나키스트에게 동맹 원칙이란 현지의 단체나 모임이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중앙 당국의 개입 없이 결합하는 방식을 말한다. 워드는 성공적인 동맹의 사례로 스위스의 22개 주(州)정부를 예로 든다. 진정한 의미의 지역사회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주는 스위스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코뮌의 사안이다. 주(州) 문제와 연방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6장 누가 계획하는가?
이 장에서 워드는 도시계획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도시인의 미성숙과 폭력성을 조장하는 양상을 조명한다. 도시계획은 기본적으로 관청의 도시계획 담당자와 투기적 개발업자의 유착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빈민과의 전쟁이다. 워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도시의 쇠퇴와 재건이라는 역사적 과정이 ‘철거 후 건설’(Raze and rise)이라는 조야한 철학으로 대체되어 과거의 흔적을 말살시키듯 도시개발이 이루어진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새로운 도시 재건 정책이란 대부분 집주인이 정부 보조금으로 토지 용도를 변경하고 원래 세입자를 ‘쫓아내고’ 중산층 세입자를 들이거나 중산층 구매자에게 팔아넘기는 것을 뜻했다. 이 때문에 자립적 지역사회로 이루어진 권력 분산적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적인 방식으로 도시계획과 행정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싹터왔다.

7장 우리는 집을 준다, 당신은 집을 얻는다, 그들은 집이 없다
7장에서 워드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주택사업을 원론적으로 비판하면서, 제3세계 판자촌 운동과 유럽 세입자 운동 등의 사례를 통해 대안적 주거 양식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국가에서 엄청난 인구가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기존에 있던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엄청난 규모의 스쿼터(무단점거자) 정착지가 생겼다. 일반적으로 스쿼터 정착지는 온갖 종류의 범죄, 악덕, 질병, 사회 혼란, 가족 해체의 온상으로 여겨지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혼란과 붕괴는 없고 그들은 질서를 유지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서구사회에서 있었던 스쿼터 운동의 예는 17세기 영국에서 있었던 공유지 점거 운동, 1946년 군대막사 점거 운동, 1960년 무숙자 생활개선 운동, 시립주택 집세 납부 거부운동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 세입자들에게 시립주택을 양도한 노르웨이의 오슬로는 아나키의 한 가지 구성요소를 차용한 성공적인 예로 거론된다.

8장 열린 가족, 닫힌 가족
왜곡된 성 규범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결혼은 일정의 성교허가증 역할을 할 뿐이다. “육아를 비롯하여 가정이 구성원에게 부과하는 의무는 상류층을 제외하면 대체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임을 고려하면 가족제도의 비생산성을 알 수 있다. 경직된 결혼제도의 대안으로 생활 공동체나 공동가사 집단 실험이 일어났다. 집세 분담의 이유도 있지만 소규모 가족 단위의 경직성에 반발하는 측면이 컸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가구에서 마흔 가구 정도가 이용하는 ‘어린이집’, 현대 아나키스트 폴 굿맨(Paul Goodman)이 내놓은 ‘청소년의 집’, 테디 골드의 ‘복합가족주택유닛’ 같은 개념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공동체가 공유하고 ‘모든’ 아이가 ‘우리’ 아이라는 아나키즘의 원칙을 잘 보여주는 예로 제시되어 있다.

9장 학교는 이제 그만!
현대의 관치 사회에서 “교육제도는 현대 국가에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가장 규모가 큰 도구”이다. 9장에서 워드는 교육 체제를 조작하여 경제적 평등과 사회변화를 성취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가를 지적한다. 그 중 하나는 일부 계층만 갈 수 있는 대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이 교육비 지원을 독식하기 때문에 결국, 중하 계층이 상류 계층의 교육비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아나키즘 접근방식의 바탕이 되는 것은 배움에 대한 경멸이 아니라 학습자에 대한 ‘존중’이다. 기성권력을 옹호하고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고, 중앙정부와의 결탁 관계에 있는 공교육 전체를 비난한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탈학교론자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워드는, 권위를 없애 버린 ‘대중 학원’ ‘지역사회 학교’를 제안한다.

10장 놀이는 아나키즘의 비유이다
워드는 살아 있는 아나키의 흥미로운 사례로 모험놀이터(adventure playground: 어린이의 창의성을 살리기 위해 목수 연장, 건축자재, 그림물감 따위를 마련해둔 놀이터)를 든다. 통제하고 지시하고 제한하는 데 익숙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즉흥적이고 무질서하게 놀 수 있는 시설을 제공한다는 생각은 하나의 실험이었다. “사물을 소유하고, 만져보고, 직접 만들어보고, 창조하고, 재창조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엠드럽 놀이터, 코펜하겐 쓰레기 놀이터, 스톡홀름의 자유도시(Freetown), 미니어폴리스의 ‘마당’(Yard), 덴마크의 ‘건축놀이터’, 스위스의 ‘로빈슨 크루소 놀이터’ 같은 모험놀이터는 경쟁심과 소유욕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배울 수 없는 자유로운 가치를 분출하게 한 모범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11장 자영 사회
노동은 지겹고 여가를 즐겁다? 노동이 즐거워지려면 노동자가 자기 일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노동자 경영권 개념이 도출된다. 노동자 경영권은 그럴듯한 개념이지만, 현대 기업의 규모와 복잡성을 고려하면 실현될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워드는 효율적인 ‘노동자 경영’의 두 가지 성공적인 사례를 들고 있다. 스탠다드(Standard) 트랙터 공장의 ‘조별 체제’라는 생산방식과 더럼(Durham) 탄광 노동자들이 투쟁을 불사하며 지키려 한 ‘독자적인 작업 관리’ 시스템이 그것이다. 오늘날까지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두 예는 ‘약탈적 경쟁’으로 대표되는 경영층의 의사결정과 ‘상호의존성’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의 차이,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할 일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12장 복지의 붕괴
국가는 중세부터 있어온 상호부조 네트워크를 제도화했을 뿐, 복지제도는 국가와 무관하게 존재해왔다. 이러한 제도화 과정에서 기존의 공동체가 무너진 경우도 많았다. 국가의 제도화된 복지는 노인, 빈민, 고아, 정신병자 등 “대하기 불편한 모든 것”을 제도 안에 감춘다.
제도에 대한 아나키즘의 접근방식은, 제도를 파괴하여 사회적 차원에서 자조와 상호부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작은 단위로 쪼개는 것이다. 사회보장제도의 구도 속에서 사회복지는 사회정의의 대체물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나키즘의 대체물은 ‘청구인 조합’이다. 청구인 조합은 사회보험 체제가 제도화되고 처벌적이 되고 지나치게 관료적으로 흐르면서 ‘고객’에게 보험금이 지급되거나 보류되는 기준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이에 청구인들이 직접적으로 대응하면서 만든 조직이다.

13장 당신은 얼마나 일탈할 자신이 있는가?
사람들은 법에 오류가 있고 불완전하고 악용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각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을 법이라고 생각하고, 아나키스트들이 법·법 제도·법 집행을 거부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워드는 법률 대행기관인 경찰의 주요 목적이 ‘통치’ 기능의 수행이라면 그것을 지역사회의 ‘사회통제’가 대신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결속력 강한 공동체가 반사회적 행동을 ‘봉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저자 콜린 워드(Colin Ward)

1924년 영국 에섹스(Essex) 출생. 아나키스트 신문 「프리덤」(Freedom)의 편집자로 일했으며, 1960년대에 대표적인 자유주의(libertarian) 저널 『아나키』(Anarchy)를 창간하여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영국의 진보잡지인 『뉴 스테이츠먼 앤 소사이어티』(New Statesman and Society)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글을 쓰면서 아나키즘의 현대적 조명과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 『진보할 자유: 제약의 시대를 넘어서』(Freedom to Go: After the Motor Age) 등이 있다.

4. 옮긴이 김정아

연세대학교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고, 연세대학교와 한신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영화와 시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옥시덴탈리즘』(공역), 『걷기의 역사』, 『프리다 칼로』,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세계화와 싸운다』가 있다.

*돌베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