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말하지 못한 진실

폴 인그램, 홍성녕 옮김 / 알마 / 566쪽 / 19,800원 / 2008



30대와 40대 중반 시절, 누군가로부터 월급을 받는 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시간이 많았던 나는 기회만 있으면 인도 네팔 등지로 배낭을 메고 헤맸다. 이때 기회란 곧 '비행기삯만 허락되면'이라는 뜻이다. 내게 히말라야는 명상과 요가의 히말라야는 아니었고, 마음 놓고 대마초를 피울 수 있는 ‘해방구 히말라야’는 더구나 아니었다. 내게 히말라야는 거기 히말라야 산군(山群)에서 누대에 걸쳐, 전에 살았던 것처럼 지금도 살고 있는 산업화 이전의 몽골리안들을 만나는 장소로서만 나를 흔들었다. 그것은 유례가 없는 급속한 산업화와 적극적으로 빠져든 광적인 물신주의로 인해 6.25 난리로도 망가지지 않았던 좋은 얼굴을 잃어 버린 우리 사회를, 그들 아직 인간의 부드러운 심성을 잃지 않고 있는 히말라야 사람들을 통해 돌이켜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빠르게 잃었으되 그들은 여전히 지니고 있는 저 넉넉한 심성의 뿌리는 무엇이고, 비록 가난하고 남루하게 보이되 놀라운 자급자족과 공생공락(共生共樂)을 유지할 수 있는 윤리적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내 한결같은 관심사였고, 내 개인적인 공부의 내용이었다.

히말라야 산군에는 인도든 네팔이든 산 아래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아리안계들이 아니라 몽골리안 소수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라다키족, 따망족, 셀파족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수렵과 채취를 하며 살고 있으며, 더러 가파른 비탈을 일궈 농사를 짓기도 하고, 양떼를 치기도 한다. 야크털로 옷을 지어 입고, 그 젖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야구루트를 만들어먹기도 한다. 거의 야생의 삶을 영위하고 있으므로 일견 거칠고 열악해 보이지만 그들은 늘 밝고, 외부에 대해 열려 있었다. 아랫동네의 아리안계 힌두 주류들과 달리 산중 몽골리안들은 하나같이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었으며, 근대국가가 만든 경쟁과 탐욕의 문화와는 상관없는 상호부조의 촌락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어떤 골짜기로 들어가려고 해도 그 길목에서는 티베탄(티베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중국령 티베트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하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1959년 중국의 포탈라 침공으로 인해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할 때 같이 티베트 고원을 떠났던 사람들이었다. 인종적으로 티베탄들은 우리 한민족과 아주 흡사하다. 근거 있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 유전인자가 일본인보다 더 우리 민족과 가깝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딱히 그래서라기보다 우리도 한때 나라를 잃었던 적이 있었기에 나라 잃은 유민으로서 남의 나라 산기슭에 의탁해서 살고 있는 그들, 밝고 활기차고 깨끗하면서도 낙천적인 사람들에 대한 호감과 친근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자주 히말라야를 찾다 보니 티베탄 친구들도 생겼고, 그들이 겪고 있는 타국살이의 고초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에서 만난 티베탄이든, 산중에서 만난 티베탄이든 그들이 고토(故土)에 돌아갈 꿈을 오매불망 잠시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고, 느끼게 되었다. 그들과 천천히 쌓인 우정은 결국 티베트 현대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풍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던 중국이 그들에게 가한 짓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 해부터 나도 모르게 ‘티베트 전사(戰士)’들을 찾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중국인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는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노선과는 다른 선택을 했던 티베트 전사들에 대한 호기심과 늙은 전사들이 당시의 저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부터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나는 북인도의 라다크, 마날리, 다람살라, 올드델리 등지에서 티베트 전사를 수소문해 찾아 만났고, 네팔에서는 카트만두와 포카라의 티베탄 캠프에서 그들을 만났다. 당시, 그들의 나이는 60대였는데, 모두 20대의 젊은 날 부모형제를 잃은 뒤 법복을 벗고, 미국 CIA에 의해 단기교육을 받고 인민해방군이 점령한 적지에 들어가 중과부적의 점령군과 싸우던 이들이었다.

늙은 전사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나는 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지금 다시 젊은 날이 돌아온다고 해도 나는 다시 총을 들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성하는 비폭력을 말씀하시지만 부모 형제를 잃은 뒤, 울면서 법복을 벗은 제가 택할 수 있는 것은 그 길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죽일 수밖에 없었던 중국인 병사를 위해 지금도 매일 아침 기도를 올리고 있지요"라고.

수년에 걸쳐 각기 다른 곳에서 내가 만난 수십 명의 노인들은 한결같이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언젠가 나의 조국 티베트고원으로 돌아가리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꿈은 히말라야보다 높고, 더 영원할 것입니다. 로마도 사라졌고, 지금 강대국인 미국이나 중국도 언젠가는 역사의 뒤안으로 퇴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누가 멈추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티베트 전사들뿐 아니라 티베트의 젊은이들도 마치 입을 맞춘 듯이 그 비슷한 내용의 말을 하곤 했다.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힘과 난공불락의 오만한 중화주의를 떠올릴라치면, 티베트 사람들이 꾸는 꿈은 연약하고 허망하기 짝이 없는 헛된 소망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서구를 감동시킨 티베트 불교도 현실적인 약자들이 궁여지책으로 의존하는 무력한 방패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는 더 잃을 게 없는 사람들만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아마도 그런 감동 때문에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구한 것은 1998년 인도 뉴델리의 티베트하우스에서였다. 그때 탱화와 불상이 전시되어 있던 그 건물 2층 진열장에는 이 책이 딱 한 권 남아 있었다. 마침 진열장 옆에 서 있던 붉은 가사를 걸친 늙은 라마는 동양 사람이 한 권 남은 마지막 책을 손에 들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라마의 미소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 생각났고, 어쩌면 그 미소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수년간 애를 썼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말을 건넬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출판사에 이 책의 번역과 출판을 부탁했다. 적잖은 출판사들이 달려들고 싶다는 관심을 표했으나 그러나 쉽게 인연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마침내 알마의 정혜인 대표와 인연이 닿았고, 번역은 한때 내가 한 대학의 시간강사 노릇을 할 때 만났던 제자인 홍성녕씨가 맡게 되었다. 두루, 깊이 감사드릴 일이다.

한국사회는 중국이 티베트 나라와 티베트 사람들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비록 얼마 전 성화가 봉송될 때 오성홍기(五星紅旗)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던 한족 젊은이들을 한국사회도 직접 겪었지만, 그들이 1949년 건국부터 지금까지 티베트에 가한 가공할 만한 탄압과 학살에 대해서는 무심하고, 관심이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한국에게 현대 중국짝은 어떤 나라일까? 단언이 필경 무리로 간주되겠지만, '짝퉁의 중국', '광활한 시장으로서의 중국'일 뿐인 것 같다. 이곳 한반도가 오래된 불국(佛國)이기도 해서 14대 달라이 라마는 오래 전부터 방한을 요청하곤 했다. 우리 정부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지만, 그의 방한으로 인해 중국의 심사를 불편하게 할 것을 우려해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허락하지 못하는 옹졸한 대처를 하곤 했다. 나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문제에는 도무지 무심할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종교지도자 한 사람을 초대하는 일에서도 당당하지 못한 내 나라의 비인도적 현실주의와 옹졸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 책은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건국 초기부터 티베트에 가한 무력침공과 학살의 보고서이다. 초판은 텐안문 사태 이전인 1984년에 발행되었고, 내가 구한 책은 1990년 2차 개정판(3판)이다. 이 책이 견지하고자 했던 티베트 독립에 대한 신중한 태도와 유대인 학살을 능가하는 티베탄 학살과 탄압에 대한 '사실'의 정확성으로 말미암아 이 보고서는 '어떤 누구에 의해서도 이와 같은 기록은 다시 쓰여지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48년 '제노사이드 범죄 예방과 처벌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에 따르면, 제노사이드는 '하나의 나라, 민족, 인종, 종교 집단 등을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파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행위'로 정의내리고 있다(데릭 젠슨, 『거짓된 진실』, 아고라, 2008). 이 정의에 의하면, 중국이 지난 50여 년 동안 티베트에 가한 조직적인 수탈과 대량 학살은 '단순한 학살'이 아니라 제노사이드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바로 지금 인류 평화의 이름으로 올림픽에 광분하고 있다.

다시 찾아보기 힘든 이 소중한 기록이 인류가 같은 종에게 가했고, 지금도 멈추고 있지 않은 폭력과 야만의 목록에서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록으로 자리 잡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할 수 있고, 했던 짓들을 생각하면 그 한 일원으로서 늘 두려운 감정과 함께 전율이 인다. 그렇지만 우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인간의 이름'으로 인간이 멈추지 않고 자행해온 몹쓸 짓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하고, 그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든 타넘고 나아가기 위해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례에 따라, 혹은 좋은 의미로서의 책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북인도의 다람살라 망명정부로부터 이 책의 한국어판 발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받으려 노력했으나 다람살라 정부는 “한국어 발간을 내심 축하하지만, 다른 책과 달리 이 책만은 축하메시지를 표하는 일을 자제하겠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이 책의 한국어판 발간에 우리 정부가 축하메시지를 표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라는 반응을 드러냈다. 라싸에서 시작된 ‘2008년 봉기’와 그 봉기를 가차없이 무력 진압한 중국정부를 의식한 다람살라 정부의 반응은 비록 축하 메시지를 받아 싣지는 못했지만, 중국과 티베트에서 일어나고 긴장과 티베트 정부의 조심스러움을 느끼기에 족한 반응이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하고 팔리지 않을지도 모를 진지한 책의 발간에 용기있게 달려든 알마의 정혜인 대표, 수년에 걸친 힘겨운 번역 일에 고생을 한 홍성녕씨, 저작권 성사를 위해 다람살라와 참으로 어려운 소통의 끈을 맺어준 바라나시의 후배 주종원 채미정 부부, 이 책의 발간을 기다리는 동안 격려와 함께 갖가지 숨은 노력을 다해주신 다람살라의 청전스님에게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최성각(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