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여정

사티시 쿠마르, 서계인 옮김 / 해토 / 393쪽 / 14,000원 / 2008



걷는 일만으로도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사티스 꾸마르


작은 승려, 평화주의자, 걸었기 때문에 출세한 사람, 뛰어난 편집자, 자연의 스승 등 사티쉬 꾸마르는 다양한 설명으로 소개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제게 사티쉬 꾸마르는 '머리의 사람'이라기보다 '행동의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생각만 하고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 걷는 일로도 세상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두 다리가 신체에서 가장 창조적인 부분이고, 걷기가 에너지의 가장 창조적인 표현이라고 믿었습니다. 영혼은 일상으로부터 단련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좋은 사상이었지만 그 규율이 사람을 억압한다고 생각한 자이나교에서 야밤에 도망쳐 나온 뒤 마침 지주로부터 땅을 얻어 빈자들에게 나누는 토지개혁운동을 하던 비노베 바베를 따라 나섭니다. 간디는 비노바 바베에게 영향을 주었고, 비노베 바베는 사티쉬 꾸마르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90세의 나이로 핵무기 철폐를 주장하다가 감옥에 갇힌 버틀런드 러셀의 기사를 우연히 마주치고, 사티쉬 꾸마르는 격심한 부끄러움과 함께 '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바른 생각이라면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그는 무일푼으로 인도를 출발해 사막과 험한 산과 폭풍우와 눈 속을 걸어 유럽과 미국까지 8,000마일(1만킬로)에 달하는 평화순례를 감행합니다. 그런 혹독한 평화운동의 대가로 프랑스에서는 감옥에 갇히고, 미국에서는 총에 맞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면서 핵무기를 보유한 4개국 지도자들에게 '평화의 차'를 전달합니다. 그것은 '핵무기를 터뜨리기 직전에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그 짓이 옳은지 그른지 곰곰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로서의 선물이었습니다.

2004년 4월 [녹색평론사]가 마련한 ‘사상강좌’에 초대를 받아 한국에 온 사티쉬 꾸마르는 처음 걷기를 시작할 때, 파키스탄으로 들어갈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친구가 지금보다 더 날카롭게 대치중인 적국에 무일푼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그를 만류하면서 걱정했습니다. 그가 파키스탄에 들어가는 순간 목숨을 잃거나, 설사 살아서 들어갔다고 해도 굶어 죽을까봐 친구는 먹을 것이 든 보따리를 선물합니다. 사티쉬 꾸마르는 음식보따리를 거절하면서 말합니다.
"이 보따리는 파키스탄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의 보따리이다. 내가 그들을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들의 땅을 통과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답한 사티쉬 꾸마르는 파키스탄으로 들어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들어가게 되었고, 입국하자 그를 알아보는 한 파키스탄인의 집에 초대되어 그 집의 저녁식탁에 앉게 됩니다. 친구가 준 음식보따리가 두려움의 보따리였다는 것이 불과 몇 시간 후에 증명된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세상의 두려움은 내면의 두려움보다 크지 않다"고.
그가 다녀간 뒤에도 이 말은 오래도록 제 머리속에 남았습니다. '믿으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정말 믿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놀라운 일을 일으킨다는 것을 사티쉬 꾸마르뿐 아니라 많은 선각자들이 강조하곤 했습니다. 비폭력의 문화를 건설하는 데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그의 생애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고 느린 작업이지만, 그런 참을성과 비폭력의 자세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변화시킨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저는 고통스러운 일이 끊이지 않는 우리 시대에도 사티쉬 꾸마르 같은 이가 계셨고, 지금도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함석헌 선생님이나 문정현 신부님 같은 이가 그런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진리는 어렵고 복잡한 말의 잔치가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어른들입니다. 사티쉬 꾸마르의 생애가 담긴 이 소박한 책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개개인의 마음이 변화면, 삶도 변하고, 변한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마땅한 큰 물결이 되리라 믿습니다.

최성각(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