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지 않는 귀농-시골에서 마을시민으로 살아가는 법  

정기석 / 소나무 / 340쪽 / 13,000원 / 2011년.



[추천사]
서둘러 난민촌을 떠나 사람답게 살라

'박정희'는 밀짚모자 쓰고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기울이는 ‘대한뉴스’ 흑백 동영상으로 농민을 사랑한다는 성공적인 이미지를 남겼지만, 정작 그가 필사적으로 추구한 일은 한 나라의 총체적 공업화였다. 오죽하면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날 때 감격해 울었다 할까! 산업강국이 오매불망 그의 꿈이었고, 그가 총에 맞아 떠난 뒤에 이어진 정권도 그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생기면서부터 시작된 길고도 긴 산업입국의 대행진 속에서 이 나라의 농업은 천천히 궤멸되었고, 농민들은 등애처럼 성가신 존재로 무참하게 추락해버렸다. 농사를 죽였으니 제대로 된 농정(農政)이 있을 리 없다. 경쟁력, 생산성 따위의 천박한 효율주의에 사로잡힌 덜 떨어진 이들에 의해 농업은 능멸당했다. 급기야, 자동차와 반도체 팔아 식량문제를 해결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농사지은 것을 사 먹으면 그만이라는 폭언을 일삼는 정권마저 출현했고, 사람들은 그런 망국적 기획 앞에 그렇게 돌아가나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것은 얼마나 철없는 포부인가. 반도체나 자동차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입에 들어가는 것을 자기 땅에서 산출하지 못하고 영위되는 삶은 허방을 짚는 위태로운 삶이라는 것을 그들이 외면했으니.

농촌을 죽인 대가로 살찌운 도시는 그렇다면 과연 살 만한 곳이 되었는가? 연일 공사중인 도시는 하수구 냄새로 들끓고, 공해에 찌들어 있으며,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늘 좌절하고, 헤쳐나갈 삶의 방도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은 매일같이 자살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쓴 정기석은 서슴없이 도시를 ‘난민촌’이라 부른다. 더 이상 난민촌에서 생을 탕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제정신 가진 사람이 갈 곳은 농촌마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돈도 없고 땅도 없는 이 탈도시 유민들이 어떻게 농촌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농사를 짓지 않고도 농촌에서 삶을 가꿀 수는 없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절박한 물음에 대한 정기석 식(式)의 진지한 해법서이다. “농촌으로 가라, 그곳이 출구다”, 라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그런 권고에 빠진 게 있었다. 땅이 없고 지닌 돈이 변변찮은 이들은 번번히 도시 난민으로 되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정기석의 주장은 의외로 간단하다. 도시에서 정처를 찾지 못한 난민으로 살 때 익힌 각자의 재능과 체험을 마을에서 되살리면 이 나라 농촌은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땅도 돈도 없는 귀농자들이 곧 시골의 자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 확신은 정기석이 직접 십수년간 이 나라 구석구석의 시골에서 구르는 돌처럼 뒹굴고 헤맸기 때문에 가능한 확신이다. 그의 방황은 얼추 적응불능자의 개인적인 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고, 그가 보여준 비타협적 모색의 치열함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그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을기업' '마을시민'이라는 그가 만든 신조어가 곧 그의 확신의 산물이다. 그가 꿈꾸는 마을기업은 노동의 열매를 독식하지 않는 기업이며 가장 낮은 곳에서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업이다. 그가 소망하는 '마을시민'은 무슨 일을 하며 어디에 살든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각된 개인이며 어떤 힘으로부터도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이며 자유로운 개인이다.

옛 사람들은 말하기를 달이 차면 기울고, 극(極)하면 반(反)한다고 했다. 멀지 않은 앞날에 우리는 우리가 매몰차게 버린 농촌으로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살 길이 그 선택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골은 도시적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안전판이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은 엉망진창의 ‘지금 이 대로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농촌을 다시 발견하고, 한때 이농(離農)을 할 때처럼 다시 대규모로 농촌으로 삶의 터를 옮겨가기 시작할 때 정기석이 애써 가꾼 마을기업, 마을시민은 난민촌을 떠난 우리를 어머니처럼 위로하고, 원군(援軍)처럼 부축하고 나침반처럼 방향을 잡아줄 것이다.

정기석의 노력은 본인 자신도 모르게 박정희의 성취가 간과한 틈새를 메우고, 그 폐해를 회복하는 일에 기능하게 된 셈이다. 난민촌을 떠나 자신의 온당한 삶을 찾으려는 용기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교과서 구실을 하리라 믿는다.

나는 정기석처럼 치열하고 정기석처럼 정직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최성각(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