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오늘 불면이다  

한국작가회의 / 아카이브 / 215쪽 / 10,000원 / 2011년.



[발문]
이제 그만 멈추시라,
이 산천이 본디 그대의 것이 아니었으니


시인과 작가들이 모였다. 살아온 내력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써온 글들이 각기 다른 글쟁이들이 한 주제로 한데 모이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반가움보다는 먼저 슬픈 감정이 앞선다. 이번에 생면부지의 여러 글쟁이들이 한 권의 책 속에 함께 모인 것은 순전히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국토 파괴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에 ‘강’이라는 주제로 모였다.

한반도 남녘에 국가가 생긴 이래 대규모 국토 파괴의 역사는 사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산림녹화를 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나라 전체를 공업 기지로 만든 박정희 독재 시절부터 이 나라 산천은 천천히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그는 굴뚝에서 푸른 하늘에 뿜어져나오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감격해 눈시울을 적시던 사람이었다. 공업화에 대한 그의 열망과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그가 흘린 눈물과 괄목할 만한 분명한 성취 때문에 그는 아직도 절반가량의 국민들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순수한 애국이었든, 턱없는 위민(爲民)을 가장한 정권유지였든 이 나라 산천을 오로지 조기 공업화 달성의 목적으로 활용해오던 그가 총탄에 사라지고, 수년 후 새롭게 시작된 이른바 민주 정권 때도 잘 자란 숲을 베고, 멀쩡한 갯벌을 메우는 일은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국토 파괴의 이력으로 볼라치면, 독재 정권이나 민주 정권이나 대차가 없었다. 자연파괴를 부국강병의 수단으로 여겼다는 점에서는 어떤 정권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나타난 ‘권력자’가 직접 원인이 되어 감행되고 있는 국토 파괴는 그 맹목성과 폭력성, 그리고 그 반민주성과 전례 없는 사기성에서 파괴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종전의 국토 파괴와는 그 규모와 진행과정이 다르다. 그가 기업인으로 살아온 내력에 대해서는 굳이 시비를 걸 건덕지가 없겠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 그가 펼치는 정책과 언동은 매일같이 황당무계한 폭거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정권’이라 부를 수도 있고, ‘이명박’이라 부를 수도 있다. 문인들이 그가 벌이는 사업 때문에 이 책에 모인 마당이라, 더욱이 강의 파괴에 이토록 무섭게 집착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의 그릇된 확신에서 비롯된 바 심대하므로 나는 오로지 ‘그’에게만 과녁을 맞춰 이 문제에 직면하고자 한다.
그는 본디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절대 권력자가 된 것은 그를 뽑아준 이 나라 ‘30퍼센트대의 사람들’ 역시 공의公義보다는 사익私益을 지키고 늘리는 데 관심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뽑지 않은 사람들이라 해서 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다른 마땅한 이를 찾아내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연유야 어찌됐든, 가히 우리 시대가 그를 선택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창조의 능력보다는 파괴의 능력이 승한 인물을 뽑을 수도 있는, 최소한 이런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그렇다. 이른바 그의 권력은 보수층의 적극 지지에 바탕했는데,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것들을 지키려는 이들이 보수층이라면, 이 나라 보수층에게 자연(잘 흐르는 강)은 지킬 만한 가치의 목록에서 제외되는 모양이다. 우려와 염려, 비판의 소리에 귀를 완전히 막고 그가 무서운 속도로 강행하고 있는 파괴의 역사役事에 이 나라 보수층들이 이토록 관대한 것을 보면, 이 나라 보수들이 ‘가짜 보수’라는 게 바로 증명된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이 시대운時代運이라면 지금 우리는 참으로 고약한 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사찰을 여전할지언정 고문과 용공조작은 그래도 없지 않느냐며, 그런 점에서는 ‘박정희 때’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자.

권좌에 오르더니 그는 가장 중요한 일이 오로지 그것이라는 듯이 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겟다고 공약한 자신을 ‘압도적 표차’로 자신을 뽑아주었으니 강이든 산이든 나라 살림살이든 뭐든 제멋대로 해도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들은 2위와의 ‘압도적 표차’를 자주 ‘압도적 지지’로 오인되도록 선전함으로써 비판과 견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우리가 이 땅에 나타나기도 전에, 이 땅에 사람이 살기도 전부터 그렇게 생겨 먹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한반도 중 그 남녘땅을 그는 자신의 임기 중에 아예 새롭게 형질 변경하려고 하고 있다. 국토는 그에게 아무런 요구도 한 적이 없었건만, 그는 국토를 “업up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나라 산천은 결단코 그의 소유가 아니건만, 그의 임기보다 오래도록 존속해야 할 산천을 그는 사유화했다. 이때 산천은 우리 삶의 기반이고 토대다. 누구도 그 기반에 함부로 도박을 걸 수 없는 존엄한 한 민족의 조건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에게 이토록 당차고 얼토당토않은 야심을 품게 했을까? 이런 야심의 뿌리는 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을까? 한강은 동에서 서로 흐르고, 낙동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데, 그 사이의 산맥을 파헤쳐 낙동강과 한강을 접붙이겠다고 그는 기염을 토했다. 온 세상을 파헤치고 뒤엎고 짓밟은 뒤, 그것을 개발이고, 발전이고, 번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무엇을 건드리든, 돈만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산정山頂에 올라 “아직 개발할 곳이 많다. 걱정 없다”고 읊조릴 때 우리는 그의 정체성에 절망했다. 자연은 아직 소비되지 않은 자원이 아니건만, 그에게 자연은 개발을 기다리는 제물로 간주될 뿐이다. 그뿐인가. 그는 자주 말을 바꾸기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당선되기 위해 무슨 말인들 못해요?”, 사람들 머릿속에 오래 기억될 그의 어록 내용 중의 하나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익숙한 이가 그분이다. 취임 직후 백만 명의 사람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자 그 위세에 잠시 짓눌려 그는 청와대 뒷산에 홀로 올라 결심한 것을 선심 쓰듯 발표했다. “(공약이긴 했지만) 대운하를 포기하겠다”고. 그리고 그는 이내 ‘4대강 살리기’라고 말을 바꿨다. 비극의 시작은 어쩌면 말 바꾸기가 완수된 이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봉헌하겠다”고 말하던 시절의 일이긴 하지만, 김대중 정권의 요구로 노태우 정권 때부터 시작되어 노무현 정권 때 물막이 공사를 마친 새만금 갯벌 죽이기 사업에서 그가 힌트를 얻었을까? 당시 갯벌을 살리기 위해 애쓰던 사람들은 10여 년에 걸쳐 ‘갯벌살리기 운동’을 가열차게 벌였다. 그렇게 바른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의사 표현을 하자 갯벌을 메워 땅장사도 하고 골프장도 지으려던 자들은 졸지에 갯벌을 ‘죽이는 자’들로 규정되어버렸다. 당시 국토파괴자들이 ‘죽임의 세력들’로 수세에 몰리면서 느꼈던 ‘깝깝함’에서 교훈을 얻었을까? 도저히 결합할 수 없는 ‘녹색 성장’이라는 기막힌 형용 모순도 그렇지만, 그가 “4대강을 살리겠다”고 하자, 4대강이 한 번도 죽어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그 말이 애당초 허구에 가득 차 있었건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의 비판과 호소에 담겨 있었던 약발이 순식간에 빠져버린 것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라도 기어이 강을 살리겠다는 기묘하고 단단한 그의 의지 앞에서 반대자들은 순식간에 잔말이 많은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실제로는 죽이면서도 살린다’는 절묘하게 도착倒錯된 말의 선점에 한 시대가 허탈과 무기력증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 성공적인 말 바꾸기는 결국, 본시 먹고살기에 쫓겨 나랏일에 대체로 무심한 우리 이웃들로 하여금 “대통령이 강을 잘 살리겠다는데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 “홍수도 막고 가뭄도 막고, 자전거 씽씽 달릴 생태공원, 좋잖아?”라는 효과까지 어부지리로 얻어내고야 말았다. 4대강 살리기라는 말을 강에 손을 대려는 이들이나 강에 손을 대지 말자는 이들이나 같이 발화해야 하는 비극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가 멀쩡한 강을 살리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순간 강은 죽어가기 시작했고, 그것을 되살리자고 외치는 순간, “이미 살리고 있잖아”라는 답변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교道敎 식으로 말하자면, 간교한 작위자作爲者와 무기력한 무위자無爲者 내지는 보존론자가 같은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 뒷산에서 내려와 강을 살리겠다고 언표한 이후 그가 임기 3년이 넘도록 벌인 일들은 가히 탈법과 위법, 초법의 연속이었다. ‘2011년 우기 전에 기본 공사를 마치겠다’는 확고한 공사 일정에 맞춰 무리수를 두고 있는 안하무인의 공사 강행은 그 탈법성과 위법성, 난폭함에서 가히 범죄라 할 만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파괴의 속도전은 과로로 사람을 죽였고, 공사하던 배를 가라앉히기도 했다.

그는 날치기 국회를 통해 4대강 죽이기 예산을 증액함으로써 그 돈의 용처가 화급한 부문들을 깡그리 외면했으며, 애당초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서류조차 끝없이 조작했고, 공사와 설계가 같이 진행되는 토건사(土建史)에 유례없는 기상천외의 일을 벌렸으며, 자연을 대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양식이 담긴 모든 법률들을 헌 신발짝처럼 깡그리 묵살하고 위반했다. 그가 펼치는 홍보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멘트 어항’에 불과한 청계천 살리기가 그러했듯이 황당한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가장 큰 그의 거짓말은 그가 끝내 대운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임을.

그의 이 무섭고 집요한 고집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을까? 4대강 토목 사업을 강행하느라 발생한 모든 사회적 기회비용과 우리 당대에는 쉽사리 제 물길을 찾지 못할 자연의 훼손, 무모한 국론 분열을 간단히 무시할 만큼 그가 이 고집을 철회하지 못할 다른 커다란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오래도록 남을 그의 실책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과 이 대파괴로 인해 불 보듯 뻔하게 야기될 자연의 대재앙보다 더 두려워하는 대상이 그에게 혹시 따로 있는 것이나 아닐까?

도대체 누가 그에게 이런 절체절명의 사명감을 불태우라고 부추기고 압박하고 있을까? 마치 하늘의 소명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그는 모든 우려의 소리에 오불관언하고 있는데, 이런 미증유의 자기 파멸적인 토목 공사도 소명이라면 이보다 비극적인 소명은 따로 없을 것이다. 도대체 어찌 한 사람의 힘이 이토록 온 나라를 마구잡이로 분탕질 칠 수 있도록 클 수 있단 말인가? 봉건 시대 황제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무제한으로 허락하는 이 망할 시스템이 어찌 제대로 된 제도란 말인가? 참으로 야속한 일이다. 하느님은 본시 지상의 인간사人間事에 간섭을 안 하시기로 유명한데, ‘그의 하나님’은 왜 유독 이와 같은 해괴한 소명을 그에게 내리셨을까.

그래서 아마도 이 책에도 기꺼이 참여하신 신경림 시인께서 “지금 이 공사를 추진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막지 못하는 사람들도 천벌을 면치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느낌”이 든다고 토로하셨는지도 모른다.

문인들은 흔히 잠수함의 토끼나 광산의 카나리아에 비유되곤 한다. 그 비유는 연하디 연한 생명의 지표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문인들이 지니고 있는 생명과 통증에 대한 감수성이 그만큼 남다르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 귀한 지면에 너무나 많은 분량을 할애해 4대강죽이기에 무섭도록 집착하는 바로 그 권력자를 집중해 거론하고 있는 까닭은 앞서 말했듯 이 미증유의 산천파괴가 바로 한 사람의 그릇된 확신에 의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듣기로, 그의 집권으로 이익을 얻고 있는 세력들조차 ‘4대강 살리기’는 ‘살리는 일’이 아니라 앞날의 예측하지 못할 재앙의 뿌리로 작용할 것이라 내심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권력자의 토목 전체주의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것은 비단 산하山河만이 아니다. 우리 시대 모든 구성원들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약화되고 증발해버린 것이 더 불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전체주의는 꼭 적극적인 동조자들에 의해 지탱되는 게 아니라 다수의 무관심이라는 혐조에 의해 기승을 부리곤 했다는 것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문학이 더 이상 당대의 핵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지리멸렬의 시대이긴 하지만, 만약 어떤 이가 정녕 한 시절의 참다운 문인이라면 잠수함의 토끼나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다른 이들보다 먼저 산천의 파괴에 몸을 떨며 신음을 토하고, 통증을 느끼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모인 문인들은 연령대도 전념하는 장르도 각기 다른 분들이시다. 내가 태어날 때 이미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한 노시인도 계시고, 젊은 날 그 산문집에 박혀 있는 긴 머리의 흑백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곤 했던 『추억제』의 시인도 참여하셨다. 내 흑석동 시절 니체와 테리 이글턴을 열강하시던 낚시광 선생님도 참여하셨다. 그뿐인가, “정 삽질을 하려거든 고비사막에 나무나 심으라”고 권고하는 친구의 기개 넘치는 분노의 글도 보이고, “한 이만 년쯤 뒤에, 폐석 조각들로 변해 있을” 댐의 미래를 처연한 문체로 상상하는 오래된 벗의 글도 담겨 있다. 어떤 작가는 강의 뿌리가 곧 하늘이라는 자연사상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고, 어떤 평론가는 풍수라는 시각으로 이 산천이 있는 그대로 존재해야 할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밝히기도 했다. ‘섬진강 시인’은 강에 비추어진 자신의 탁해진 얼굴을 슬퍼했으며, 뒷산에 올라 파괴되고 있는 강을 생각하며 불길한 미래를 염려하는 작가도 있다. 만나 인사 나눈 적이 없는 젊은 작가들은 강을 따라 걸으면서 강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 자신의 삶도 똑같이 망가질 것이라는 동병상련의 감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글들은 비장하면서도 처연하다. 모든 글에는 곧 사라지겠지만 아직은 무소불위의 권력에 도취되어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무서운 일에 대해 잘 이해하려 하지 않는 저돌적인 토목 권력자에 대한 혐오와 안타까움, 그리고 정당한 분노가 직정直情의 문체에 담겨 있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앞설 수밖에 없었기에 여기 묶은 이 글들보다 정직하고 겸손한 글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분노이면서 또한 기도이다.

이 기도 소리는 자칫 무력한 하소연으로도 들릴 수 있겠지만, 그 간절함과 그 밑에 깔려 있는 근거 있는 항변으로 인해 아름답다. 이 책에 참여한 모든 문인들은 여기 이곳에 누대에 걸쳐 살다간 이들에게 그러했듯이 강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낮은 목소리로 추억한다. 이 책에는 작위에 대한 반성이 있고, 무관심과 무기력에 대한 한탄이 있고, 그러면서도 연약해보이지만 질긴 거미줄 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강이 제대로 흐르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도 제대로 흐르지 못하리라는 예감 때문에 생긴 희망, 말이다.

비록 이 나라 글쟁이들 가운데 너무나 적은 수효의 분들이 이 기획에 참여했지만, 거짓을 혐오하고 그 힘에 저항하는 것이 문인의 원초적 책무라는 것을 외면하지 않은 여기 이분들로 인해 우리 문학이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것마저 이 작은 책은 증거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이 시기에 이와같은 주제로 참여하신 이 문인들의 이름과 글들이 더할나위없이 귀하고 소중하고 느껴진다.

지금 우리 시대의 약자는 말없는 자연과 절멸되고 있는 동물이다. 살처분되고 있는 가축들이다. 진작에 매장된 보통사람들의 무관심과 양심이다. 문인은 약자에 대한 연민과 그들에게 품는 사심없는 동지감(同志感)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문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끔찍한 폭력 사태에 직면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한 글쟁이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죄를 짓는 일과 같은 일이라는 데 동의한, 이 몇 안 되는 글쟁이들의 미약하고 낮은 목소리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위엄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책의 발간으로 이 정권의 난폭함이 갑자기 멈춰지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일은 공사의 진척상황과 관계없이 이 작은 생명의 목소리들은 파괴와 죽임의 목소리보다 오래 남게 되리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강처럼 흘러갈 태무심한 시간은 험한 세월을 만나 잠시 헝클어진 이 물줄기를 반드시 순리에 맞게 바로잡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 거대한 파괴의 힘에 짓눌려 하루하루가 숨이 막힐 것처럼 고통스럽다.

                           최성각(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