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3월의 책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

데이비드 로텐버그 / 박준식 옮김 / 낮은산 / 384쪽 / 16,000원 / 2011년.


 
“여기 정확성에 대해 애증의 관계를, 화려한 수사에 대해 의심을, 그리고 시적인 행동에 대해 깊은 존경을 가지고 있는 한 철학자가 있다. 그는 도덕적인 행동보다는 아름다운 행동을 선호한다. 삶이라는 시는 표현을 갈고닦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매혹적인 철학자이자 행동가인 아르네 네스

‘심층생태론’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아르네 네스(Arne Dekke Eide Næss. 1912~2009)는 20세기 철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르웨이의 철학자이자 산악인이다.
1937년 이래 2000미터 고지의 트베르가스타인이라는 곳에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자아 탐구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궁극적으로 하나다.’라는 자신의 명제에 답하기 위해 평생에 걸친 연구를 하였지만, 때로는 세상에 나와 자신이 생각한 정의를 실천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던 행동가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거리두기’를 하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들에 감명을 받았고, 젊은 날에는 비트겐슈타인이 지배하던 비엔나 서클에서 논리실증주의에 몰두하였으며, 병원과 학교를 오가며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며 자아탐구에 몰두하던 아르네 네스.
또한 27살의 나이에 오슬로 대학교 사상 최연소 철학교수가 되었지만 세계가 당면한 생태위기를 직감하고는 1970년대부터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생태운동에 뛰어들어, 댐 건설을 막기 위해 암벽에 자신을 묶는 등 저항운동에 뛰어드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아르네 네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였고, 전후에는 고문자와 피해자 유족의 만남과 화해를 주선하는 일을 하였으며, 유네스코의 요청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프로젝트를 맡기도 한 아르네 네스.
1912년에 태어나 97살의 나이로 2009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야말로 20세기를 관통한 아르네 네스의 삶은 심층생태론의 창시자, 산 위 오두막에 기거하며 평생을 보낸 철학자나 은둔자, 혹은 레지스탕스나 행동가… 그 어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 처음 제대로 소개되는 아르네 네스의 진면목

자연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 20세기의 격변 속에서 진행되었던 그의 생동감 넘치는 삶은, 이 시대의 큰 모순에 맞서 정확하고 명확한 사고를 옹호하려는 의지에 늘 힘을 불어넣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인 데이비드 로텐버그가 스물한 살 때, 자신과 딱 쉰 살 차이가 나는 일흔한 살의 아르네 네스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고산 지대인 트베르가스타인의 오두막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그 뒤로 대서양을 건너 편지를 교환하고, 미국에서, 다시 또 노르웨이에서 몇 차례의 만남을 이어 가며 대화를 나눈 결과이다. 결국 아르네 네스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의 사상을 꼬치꼬치 캐묻는 이 책은 아르네 네스의 독특한 사상과 20세기 철학, 역사에 대한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격동의 세기를 지나며 진실을 찾아 쉴 새 없이 움직인 한 남자, 아르네 네스!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에서 그의 사상에 대한 정리나 요약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아르네 네스가 자신의 사상을 완성해 가는 기나 긴 대장정을 목격할 수 있다. 또는 20세기에 크게 새겨진 사건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68혁명, 녹색운동……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여전히 맞닥뜨리고 있는 근대 산업사회의 물질문명에 대처하는 아르네 네스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가능성의 경이로움에서 출발하여, 이 경외심에 동참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고, 그 자리가 다른 이들과 세계 전체에 의미 있는 자리가 되도록 함으로써 기쁨을 얻는, 삶을 향한 아르네 네스의 접근법을 볼 수 있다.

생각하기의 고통스러움에서 출발하는 심층생태론

1973년 아르네 네스가 쓴 글에서 ‘심층생태론’이라는 말이 처음 소개된 이래, 심층생태론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간보다 자연을 우선시하는 급진적인 주장’ 정도로 차용되거나, 자신의 진정성을 내세우고 상대편을 깎아내릴 때 쓰이면서, 그 진의가 제대로 이야기되거나 논의된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아르네 네스와 인터뷰를 한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로텐버그가 밝히고 있듯이 심층생태론은 “환경문제에 대한 사려 깊은 접근법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와 세계관 안에서 환경문제의 뿌리를 찾”으며, 아르네 네스가 “자아실현을 위해 자신의 인격을 더욱 갈고 닦으려는” 노정에서 제안한 하나의 질문법인 동시에, “실증주의, 논리학, 가능주의, 간디주의에 기원을 두고 우리 시대의 핵심 문제 중 하나를 깊이 숙고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 사상의 깊이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는 자아탐구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아르네 네스의 삶과 그 사상의 궤적을 좇는 일은 심층생태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책 제목은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르네 네스는 그렇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피하지 말아야 할 고통이며, 파고들면 들수록 더욱 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될 괴로움이라고 아르네 네스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회는 우리가 이렇게 꼭 필요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기에, 우리는 사회의 규칙에 반기를 들고 우리 주변의 것들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아르네 네스는 줄곧 이야기한다. 그것은 의심을 향해 나 있는 오래된 길, 쉽지 않은 길이다. 허나 아르네 네스는 그 과정을 즐겨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에게 삶은 경이로움으로 충만했던 그 첫 순간부터, 완전히 즐겨야 할 것이었다. 따라서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 세계의 풍요로움과 그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고유한 위치에 대한 이러한 놀라움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르네 네스는 누구인가?|

“어떤 저널리스트들은 깜짝 놀랄 수도 있겠지만,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22세기에 대해서 낙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 22세기가 아니라 21세기를 뜻하는 거겠죠.’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21세기에 우리는 극도로 나쁜 시대를 살아야 하며, 심지어 부유한 국가들도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단기적으로는 비관론자이고, 장기적으로는 낙관론자라고요.”
― 아르네 네스

“아르네 네스는 그 어떤 사람보다 더 크고 생생하며 기쁨으로 가득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실 그가 안겨 준 깊은 인상은 내가 히말라야에서 함께 살았던 티베트 사람들이 준 것과도 아주 비슷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서 연유하지 않나 싶다.”
― 헬레나 노르베르-호지

“아르네 네스는 극도로 명석한 정신과 순수함이 섞인 모습으로 늘 나에게 감명을 준다. 보통 우리는 어느 정도는 오만하게 되고, 어느 정도는 자기중심적이 되는 지식인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순간 한 개인으로서 자유의 정신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아르네 네스는 늘 그것을 유지한다.……아르네 네스가 해 온 작업들은 그의 행동과 철학 모두 간디에게서 깊은 영감을 얻어서 이루어졌다. 아르네 네스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노르웨이에서 댐이 지어지고 있던 것과 관련이 있었다. 아르네 네스는 암벽에 자신을 묶은 채로, 댐 건설을 막기 위한 직접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간디에게서 직접 영감을 얻은 행동이었다.”
― 반다나 시바

저자
데이비드 로텐버그(David Rothenberg)는 뉴저지 공대 인문학부 조교수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보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슬로 대학교에 여러 해 동안 머물며 아르네 네스와 함께 《Ecology, Community and Lifestyle》의 영문판 번역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작곡가이자 재즈 클라리넷 주자이기도 하다.

역자
박준식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이후 미시건 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몇 년간 공부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연구자 및 번역자로 일하며 삶에 관한 고민을 이어 가고 있다.

* 인터넷 교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