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책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글 김열규 외, 사진 김병훈 / 눈빛 / 2004 / 10,000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기억 속에서 들추어 꺼낸, 그러나 지금 현재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에세이집. 국문학자 김열규 님과 소설가 최성각, 시인 조병준, 미술평론가 박영택, 건축학자 임석재 씨 등이 글을 쓰고, 젊은 작가 김병훈 씨가 사진을 찍은 여덟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사람살이를 고스란히 빼닮은 우리들의 옛집 풍경과 온마을 사람들이 들고나며 정을 나누던 낮은 담장의 구멍가게와 이발소, 동네 꼬마들의 입가를 형형색색의 빛깔로 물들이던 불량식품과 세월의 소소한 흔적을 싣고 가다 지금은 그 자체가 세월의 흔적이 되어 버린 황학동 벼룩시장 이야기 등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과 사진으로 재현되고 있다. 또한 빠르고 잰 걸음으로 앞으로만 나아가는 현대사회에서 한번쯤 멈춰 서서 돌아보아야 할 푸석푸석해진 사람살이와 그 사람살이를 힘겹게 담아 내고 있는 자연의 풍경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려지고 있다.

흑백사진 속 소박한 추억 펼치기 | 조선일보 Books 김태훈 기자 | 2004-05-29 |

국문학자 김열규, 건축학자 임석재, 미술평론가 박영택, 소설가 최성각, 시인 조병준 등이 글을 쓰고 사진작가 김병훈씨가 고풍스런 사진을 찍어 곁들인 여덟 편의 사진 에세이를 모은 이 책의 주제는 ‘추억’이다. 김열규는 구멍가게를 추억하며 “풍요가 놓치고 만 이야기, 높아진 GNP가 상실한 이야기”라며 “구멍가게에는 가난하게 살아서 비로소 얻어지는 복, 가까스로 누리는 보람’이 있다”고 썼다.

마지막 쓰일 곳을 찾아 생명연장을 꿈꾸는 황학동 벼룩시장의 물건들에 대해 조병준은 “황학동에 모인 물건들과 기억들은 영원을 꿈꾼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사람과 물건이 한 세월을 살아낸 다음엔 조용히 세상을 떠나듯, 기억도 잊혀지는 것이 온당한 질서 아니냐”고 되묻는다.

김병훈의 카메라가 글과 함께 찾아간 곳은 희미한 백열등이 인적 없는 골목을 밝히는 달동네, 수영복 차림의 여성과 근육질 남성이 입맞추고 있는 싸구려 포스터를 붙인 시골 이발소, 대문만 나서면 어디나 펼쳐졌던 흙길과 그 위에서의 신나는 놀이들, 황학동 벼룩시장의 기기묘묘한 잡동사니들, 샤브레 과자를 보고 군침을 흘리지만 손에 든 것은 달고나, 번데기, 쫀디기였던 시절의 아이들….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글들과 소박한 흑백사진들이 화려함에 식상해버린 우리의 눈에는 오히려 입맛을 돋우는 씀바귀처럼 상큼하다.

잊혀지는 사소한 것들을 예찬하라 | 한국일보 책과세상 김범수 기자 | 2004-05-29 |

지난 세월을 추억하는 동안 사람들은 종종 삶의 진실을 마주한다. 모든 것을 무(無)로 끌고 가는 시간의 위력을 절감하면서도, 순간에 지나지 않는 과거의 한때, 그 삶의 진정성이 사무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회한이나 무력한 향수가 아니라면 그것이 소중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사진 에세이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는 잊혀져가는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은 옛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작가 김병훈씨의 흑백 사진과 각각 필자가 다른 8편의 글이 실렸다. ‘비 혹은 물’ ‘휴(休)’ ‘흙’ ‘세월’ 등이 시간과 사람살이 일반에 대한 반성이라면, ‘구멍가게’ ‘이발소와 이발소 그림’ ‘집’ ‘불량식품’은 추억해봄직한 구체적인 일상에 대한 생각이다.

소설가이면서 환경운동에 열심인 최성각씨는 ‘비 혹은 물에 관한 이야기’에서 틱낫한 스님의 우화를 인용해 물 또는 자연 순환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당신은 이 한 장의 종이 안에서 구름이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릴 수 없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나무가 자랄 수 없고, 나무가 없으면 종이를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다.

최씨는 나아가 ‘조금 더 종이를 들여다보면, 거기에서 숲을 키우는 눈부신 햇살도 느낄 수 있고, 나무꾼의 땀도 느낄 수 있고, 도끼를 들고 숲에 들어가기 전에 나무꾼이 어린 딸과 먹던 밥그릇도 보이고, 어린 딸이 한쪽 손에 든 숟가락에 묻은 밥알도 보이고, 그 밥그릇을 채우게 한 농부의 들판도 떠오른다’고 한다. 이쯤 되면 펼쳐 보던 책장에서 풀 냄새가 나고 숲의 벌레 소리가 들릴 법도 하다. 누군가는 폐지를 모으는 고물수집상의 땀방울이 보인다 할지도.

문화주간지 기자인 이현주씨가 쉼 또는 그침에 대해 생각한 ‘휴’는 짧은 글이지만 많은 생각이 담겼다. 글 읽는 맛도 좋다. 쉬는 것은 마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깨달음이라는 화두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화여대 건축과 임석재 교수가 쓴 ‘사람살이를 담는 집’은 마당과 꽃밭과 다락이 있는 집이 사라져가는 데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추억은 자연스레 ‘아파트 공화국’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단층은 5층으로, 5층은 다시 15층으로 높아져갔다. 그리고 15층은 어느새 성큼 30층으로 둔갑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돈이 나온다며 눈이 벌개져 돌아다녔다. 능선이고 구릉이고 앞뒷산 같은 건 뭉개버리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 왔고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다. 5층에서 15층으로, 15층에서 30층으로,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이 기다릴까.’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는 이발소 그림을 조잡하기 그지없지만 어린 시절 미감을 일깨운 단초로 소중하게 기억했다. 이동연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장이 번데기와 달고나, 쫀드기를 ‘삶의 정서의 흔적’으로 추억할 때 불량식품은 사회적 ‘수감’ 상태를 벗어난다. 무엇보다 이 글들에 세월의 아련함을 더해주는 것은 사진작가 김병훈의 흑백사진이다.

‘디카’의 보급으로 사진이 르네상스기를 맞으면서 사진 에세이집의 출간도 늘었다. 하지만 이만큼 삶을 진지하고 근사하게 곱씹어보게 하는 책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월간 ‘지오(GEO)’에 2002년부터 2년 동안 실렸던 글을 모아 낸 책이다.


불량 노인이 되자


세키 간테이 저, 오근영 역 / 나무생각 / 2001년 / 8,000원



조각가이자 떠돌이이며 불교철학에도 조예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불량 노인인 세키 간테이 씨의 '불량하게 살자'는 조언. 여든 살이 넘은 고령의 저자에게는 생기와 열정이 넘친다. 언뜻 목차만 보면 늙어갈수록 정력적으로 연애를 하고 인생을 즐기라는 메시지만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량 노인의 삶과 세상에 대한 태도는 그보다 훨씬 넓고 깊은 무엇을 보여 준다. 불량이란 '시들지 않는 삶'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타성을 경계하고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경박하지 않게 세상을 만나는 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세키 간테이
대정 8년 도쿄에서 출생한 조각가로, 1933년 고등소학교 졸업 후 14세 대 국수집에서 견습사원으로 근무했으며 17세 때 조각가 사와다 세이코 씨의 문하생이 되었다. 1949년, 태평양전쟁으로 소실된 도쿄 나카노, 모선사의 본전불상 등을 조각하여 봉납했으며, 1955년에는 산문의 금강역사를 봉납, 1951년에는 진언종 대승정으로부터 밀법 전수를 받았다. 1992년에 발원하고 나서 30여 년에 걸쳐 탈활건칠 기법으로 홍법대사상을 봉납했으며 조각 외에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나며 골동품에 대한 조예도 깊다. 작가인 고 야마구치 히토미 씨와 친교가 두터웠고 그 작가의 에세이에 도스토 씨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 저서로 『古美寶論-간테이 고미술 대담』, 『인생, 너그럽게』 등이 있다.

역자 : 오근영
1958년 서울 출생으로, 일본어 전문번역가이다. 역서로 『기습』(전 4권 공역), 『패왕 후히토』(전 3권 공역), 『한이불속 두나라』, 『르네상스의 미인들』, 『소년H』, 『악의』(전 4권 공역) 등이 있다.

* 미디어 리뷰

81세 청춘의 ‘젊게 사는 이야기’ | 국민일보 김현덕 기자 | 2001-07-03 |
저자인 81세의 일본인 조각가 세키 간테이 선생은 지금도 80명이 넘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다.평생 일년에 한명씩 사귀어도 우수리가 남는 숫자다.그래서 자신이 ‘바람둥이 영감’ ‘불량 영감’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늙은이’ ‘노친네’라고 부르면 대단히 섭섭하다.

그는 “노인은 행동을 잘해서 욕심을 줄이고 세상에나 젊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도리다”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럴 생각 또한 추호도 없다.그래서 현실적으로 그런 생각을 누르는 사람들에게 말한다.“나잇살 먹었다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절제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그건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다.마흔살이 여든살보다 항상 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고 쉰살보다 인생을 덜 즐겨야 된다고는 더더욱 생각할 수 없다”

예순이 갓 넘은 ‘중년’이 찾아와 “인생에 후회되는 일이 두가지 있다.부모님 반대로 정원사의 꿈을 버리고 월급쟁이가 된 것,또 여자를 유혹해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자 간테이 선생은 기가 막힌다는 태도로 답변을 준다.“지금 그걸 하면 되잖은가”

‘점점 더 기운이 넘쳐가는 노인’으로 평가받는 간테이 선생은 “생명이란 원래가 기운이 넘치는 것으로,넘치지 않으면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이라고 되풀이 외친다.나이를 잊고 항상 의욕적으로 사는 비법은 ‘불량하게 사는 것’이다.여기서 ‘불량하다’함은 상식,규범,세상의 이목 등 노인을 속박하는 모든 것을 털어내는 것을 말한다.팔순의 간테이 선생은 죽음의 사자를 향해서도 ‘간뎅이’ 부은 호방한 태도로 외친다.

“60에 저승에서 날 데려오라거든 지금 안 계신다고 여쭈어라,70에 데려오라거든 아직은 이르다고 여쭈어라(중략) 99에 데려오라거든 글쎄… 내가 알아서 가겠으니 자꾸 보채지 말라고 여쭈어라”

책의 나머지 부분은 나이답지 않게 최대한 ‘불량하게 사는’ 각종 비법들과 실천방법 그리고 자신의 불량노인 철학을 심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 젊음의 원천은 술, 여자, 여행
| 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김정수 기자 | 2001-06-30 |
매일 저녁 석양이 깔릴 무렵, 그 남자의 변신은 시작된다. 지장보살.관음보살 등을 그리는 일로 하루를 시작, 낮에는 창작에 몰입하던 조각가는 어느새 술집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아슬아슬한 농담을 주고받는 `멋쟁이 노인` 으로 변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불량노인` 이라고 언급하지만, 실은 나이와 사회적 통념을 거부하려는 `젊은 노인` 을 역설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이몸은 여전히 성장 중" 이라며 걷기와 여행을 즐기는 남자, 또 "색기(色氣)는 바로 생명력" 이라며 버스 한대를 가득 채울 정도의 여자친구를 자랑하는 남자, 바로 여든한 살의 세키 간테이 얘기다.

『불량노인이 되자』는 그러나 가벼이 웃어넘길 책이 아니다. 상식적인 잣대를 가지고 저자의 `불량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어림짐작해선 안된다. 그가 내세우는 불량함에는 젊은 시절 불도(佛道)에 이르기 위해 전국 산야를 방황하며 수행한 끝에 깨우친 `시들지 않는 삶` 에 대한 노하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즉 술.여자.여행 등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 속엔 단 한번뿐인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현재의 시간.장소에서 불성(佛性)을 발견하는 이의 지혜가 담겨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가 술집에 가는 것은 사회와 접하며 생활의 때를 벗기고, 사람을 관찰하고 자신을 단련하는데도 좋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그에겐 `벗기는 재주` 가 있다. 다름아닌 상대방이 갖고 있는 경계심이라는 `마음의 갑옷` 을 벗기는 능력이다. 그는 자신의 집착과 욕망을 먼저 벗어던지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쉽게 사귀는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또 "남자들이여, 죽을 때까지 색기를 갈고 닦아라" 고 외치지만 가만 보면 그 색기란 것이 세상의 반을 이루고 있으면서 `이치로는 알 수 없는` 여성,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경외(敬畏)임을 알 수 있다.

유쾌하게 읽히는 이 책은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사회의 실버세대들에게 수요가 많을 듯싶다. 물론 `늙은 젊은이` 들을 위한 조언으로도 손색이 없다.

"노인들이여 色氣를 갈고 닦자" | 한국일보 하종오 기자 | 2001-06-28 |
“불량스럽게 살자.” 81세 노인의 이 제안이 일본 노인 사회를 흔들어놓았다. 불교 조각가 세키 칸테이가 쓴 『불량노인이 되자』(나무생각 발행)는 “남자들이여, 죽을 때까지 색기(色氣)를 갈고 닦자”는 도발적 제안을 한다.

증손자까지 볼 나이지만 세키는 “여자들이 만지고싶어하는 몸을 만들자”며 매일 밤 술집 카운터에 앉아 젊은 여자들과 ‘늘그막의 연애’를 즐긴다.

“나잇살이나먹어가지고…” 하는 주위의 핀잔에 그의 별명은 ‘불량 노인’이됐지만, 그가 제시하는 노년의 삶의 방식은 실버 사회가 눈앞에 다가온 우리 사회 나이든 분들에게도 훌륭한 참고가될 만하다.

그가 말하는 ‘불량’은사실은 ‘시들지 않는 삶’이다. 불교 연구자이기도 한 그는 부처가 고행으로 얻었던깨달음은 바로 “안주하면 생명이 혼탁해진다”는 진리였다고 해석한다. 생활의 때를 벗어내고 번득이는 생명력을 찾는 것이야말로 노인이 가져야 할 태도라는 것이다.

생명은 늙으나 젊으나 똑같이아름답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색기를 갈고 닦아라,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니 늙더라도 타성에 젖지 말고 죽을 때까지 아마추어의 정신으로 살자고 말한다.

[예스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