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이현경 역 / 돌베개 / 340쪽 / 12,000원


역사를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진지한 문학적 답변

프리모 레비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요소는 바로 그 역사적 중요성이다. 레비의 작품은 흥미롭고 아름답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현대 역사의 가장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장면에 관한 증언으로서 가장 빼어나다. 레비는 젊은 독자들에게 자신이 이야기가 왜 기억되어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불관용·압제·예속성 등을 내포한 새로운 파시즘이 이 나라 밖에서 탄생해 살금살금, 다른 이름을 달고 이 나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혹은 내부에서 서서히 자라나 모든 방어장치들을 파괴해버릴 정도로 난폭하게 변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지혜로운 충고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다. 저항할 힘을 찾아야 한다. 이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유럽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기억이 힘이 되고 교훈이 될 것이다.(『이것이 인간인가』 「부록1」 중에서)

레비의 작품은 개인의 경험을 다루면서도 줄곧 목격자·증언자로서의 거리를 유지하며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담아내고, 인간의 파괴와 파멸에 관한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고찰을 증류해낸다. 그는 결코 고통을 전시하지 않는다. 그것의 근본적인 조건을, 그 생생한 상황을 목격하고 기록할 뿐이다. 철저하게 냉정하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가장 생생하고 가장 가슴 아프게.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은 우리가 지금 다시 아우슈비츠를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유대인을 동정하기 위해서나 독일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생존자를 칭송하기 위해서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고통을 인간의 차원으로 보편화하여 우리의 역사적 상처로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게다가 애초에 그가 목격한 광기와 폭력의 본질은 개인적 분노를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정확히 표현했듯이, 사악한 한 마리 괴물에게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선량하고 순종적인 시민들의 집합적 힘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은 대개 비정상적이거나 어리석거나 잔인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환영받았고 그들이 죽을 때까지 수백만의 추종자들이 그들을 따랐다. 비안간적인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을 포함한 이런 추종자들은(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타고난 고문 기술자들이나 괴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위험하다. 아이히만이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었던 회스, 트레블링카 수용소 소장이었던 슈탕글, 20년 뒤 알제리에서 학살을 자행한 프랑스 병사들, 30년 뒤 베트남에서 학살을 자행한 미군 병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만일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훨씬 더 단순명쾌했을 것이다.” 토도로프의 말이다. 레비는 작품 전반을 통해서, 또 그 죽음을 통해서까지 ‘역사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역사를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들을 던져준 셈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의 증언이다. 이 책은 개인적인 체험기로도 뛰어나지만, 그 틀을 넘어서 더 근본적이고 보편적으로 현대 ‘인간’ 그 자체의 위기를 증언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책은 과거에 잔혹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증언이 전달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섬뜩한 위기에 대해서도 증언하고 있다.(『이것이 인간인가』 「작품해설」 중에서)

이러한 레비의 치열하고 섬세한 성찰은 과거의 기억, 역사의 해석을 두고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립과 갈등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저자 : 프리모 레비
191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19세기 초 스페인에서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으로 건너온 그의 조상들은 토리노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작은 유대인 공동체를 이루었다.(『주기율표』의 「아르곤」 참조) 레비는 1940년대 초중반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특별히 화학이라는 학문·기술에 매력을 느껴 토리노 대학 화학과에 입학했으며, 1941년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유대계였던 그는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동안 방황해야 했다.(『주기율표』의 「니켈」과 「인」 참조) 몇 군데의 직장을 떠돌며 마지막 광기를 내뿜던 파시즘을 냉소적으로 거부한 채 살아가던 레비는 저항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제2차 세계대전 말 정치적인 의식을 확고히 하게 되었고, 나치스의 그림자가 밀라노와 토리노를 뒤덮자 파시즘에 저항하는 파르티잔 부대에 가담했다. 하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그 부대는 별다른 활동도 하기 전에 파시스트 공화국 군인들에게 습격을 당했고, 레비는 포솔리 임시수용소를 거쳐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주기율표』의 「금」 참조)

레비가 이송된 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중에서도 화학 공장과 붙어 있는 제3수용소(모노비츠 수용소)로, 강제노역수용소인 그곳 수인들은 대부분이 헛되고 거짓된 노동으로 삶을 소진하며 죽어갔다. 하지만 그는 건강한 체력, 화학 박사라는 이점, 시기를 잘 맞춘 몇 번의 행운으로 극소수의 생존자 대열에 낄 수 있었다. 하지만 훗날 그 자신이 인정한 대로 지칠 줄 모르는 인간에 대한 관심, 단순한 생존본능이 아닌, 반드시 살아남아 목격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의지, 그리고 점차 동물화·사물화 되어가는 동료 수인들에게서 인간의 흔적을 보겠다는(그럼으로써 자신도 인간의 마지막 흔적을 간직하겠다는) 고집스런 결의야말로 그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인 요인들이었다.(『이것이 인간인가』의 「부록 1」 참조)

레비는 1945년 몇 달에 걸친 힘겨운 여정 끝에 토리노로 돌아왔고, 돌아오자마자 『이것이 인간인가』의 집필에 들어갔다. 1947년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소량 출간되었던 이 책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질 뻔했으나 1957년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재출간되면서부터 수많은 독자들을 만나 전 세계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출판되었다.
그는 귀환 직후부터 이미 몇 군데 실험실과 공장을 거쳐 니스·에나멜·합성수지를 생산하는 공장에 취직을 한 상태였다.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아우슈비츠의 증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후에도 공장을 그만두지 않았고, 1977년 퇴직할 때까지 총감독으로 일하며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는 근 30년 동안 작가와 과학자, 혹은 작가와 기술자로서의 “두 가지 영혼” 중 어느 한 쪽도 놓치지 않았고, 그로써 과학자와 작가라는 두 개의 영혼이 상호보완적인 차원을 넘어 불가분의 것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주기율표』의 「크롬」, 「부록 1」 참조) 『주기율표』와 『멍키스패너』 등의 작품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이러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특별한 열정과 관심은 그의 작품 세계의 또 다른 흐름을 특징짓는다. 그리고 이는 ‘인간다움의 가장 중요한 계기로서의 노동’, 혹은 ‘거짓된 노동을 통해 파괴되는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아우슈비츠 경험을 다룬 작품들과 만난다.

1963년에 그는 수용소에서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주제로 한 두번째 책 『휴전』을 발표했다. 레비의 첫 작품에 반한 이탈로 칼비노가 표지글과 추천사를 썼고, 제1회 캄피엘로 상을 수상했다. 1975년 세번째 회고록인 『주기율표』를 발표했다. 1978년 『멍키스패너』를 출간해 스트레가 상을 받았다. 철탑, 다리, 석유시추 장비들을 제작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도는 피에몬테 출신의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책은 출간 후 곧바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프랑스어판을 접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은 서평을 남겼다.

매우 즐겁게 읽었다. 내가 특히 노동에 대한 대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프리모 레비는 위대한 민속학자다. 게다가 책도 정말 흥미롭다.

아우슈비츠를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1982년 출간되자마자 비아레조 상과 캄피엘로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언급된 것 외에도 그는 시와 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번역가로도 진지하게 활동해 레비스트로스, 프란츠 카프카 등의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옮겼다. 미국의 유대계 작가 필립 로스는 프리모 레비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작가들이 세상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 부류로 나뉘다는 사실이 〔……〕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두 부류란 바로 당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레비는 귀를 기울이는 쪽이다. 〔……〕 사람들이 항상 그에게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그 모든 것이 글로 씌어지기 전에 이미 충실하게 기록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는 놀라울 정도로 집중해서 꼼짝 않고 듣는다. 마치 저 돌 벽 너머 천장에서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엿듣는 다람쥐처럼.(『주기율표』의 「부록 1」 참조)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호기심 많고, 유쾌하고, 예의바르고, 신중하며, 인간에 대한 믿음과 자유와 합리성이라는 근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지닌 낙관주의자. 그리고 동시에 한번 뿌리가 뽑히더라도 다시 글쓰기와 일과 가족과 공동체 속에 안정적으로 뿌리 내릴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 총체적이고 소외되지 않은 완전한 인간이라는 전범(典範)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사람. 이런 그의 모습은 아우슈비츠라는 극단의 체험도 완전히 바꾸어놓지 못했다. 그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고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그는 1986년에 아우슈비츠의 경험에 대한 철저한 사유와 성찰을 집대성한 역작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를 출간했다. 토도로프는 이 책에서 거의 극한까지 도달한 레비의 성찰을 두고 그가 “장대(기준)을 너무 높이 들어올렸다”라고 썼다. 레비는 그로부터 1년 후인 1987년 토리노의 자택에서 돌연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역자 : 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제1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사랑의 학교』, 『바우돌리노』, 『반쪼가리 자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 『나무 위의 남작』, 『작은 일기』, 『권태』, 『미의 역사』, 『빗나간 내 인생』, 『Q』, 『선사시대 사랑 이야기』 등이 있다.

*예스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