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12월의 책

원수들, 사랑 이야기

아이작 싱어 /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317쪽 / 9,800원 / 2009년.

 
〈망명자의 언어〉 이디시어를 전 세계에 알린 작가
197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대표 장편소설 『원수들, 사랑 이야기』가 도서출판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싱어는 주로 폴란드와 미국 내의 유대인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들을 발표했는데, 이 해 노벨상 선정 위원회는 그를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폴란드 출신 유대인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인류의 보편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문학"이란 찬사를 보냈다.
싱어는 동유럽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의 언어인 이디시어로 작품을 발표한 작가로 유명한데, 초기 히브리어로 쓴 글을 제외하고 거의 평생을 이디시어로만 글을 썼다. 이디시어는 유대인들의 지방어로 지금은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 언어만으로 글을 쓴 작가가 세계적인 권위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처음엔 미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들을 위한 이디시어 신문 「주이시 데일리 포워드Jewish Daily Forward」에 주로 글을 기고하여 폭넓은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1950년대, 역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솔 벨로를 비롯하여 여러 번역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여 출간하면서 미국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노벨 문학상과 전미 도서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 작가로 손꼽히게 되었다.

이디시어는 국토도 없고 국경도 없는, 그리고 그 어떤 정부도 보살펴 주지 않는 망명자들의 언어이며, 무기, 탄약, 군사 훈련, 전략 등을 가리키는 낱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언어이며, 이교도는 물론이고 해방된 유대인들마저 멸시하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게토에 갇혀 지내면서도 몇몇 위대한 종교에서 설교하는 덕목들을 날마다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성서를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p.303,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 중에서

이디시어는 아직 숨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이디시어는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디시어는 순교자들과 성자들, 그리고 몽상가들과 신비주의자들의 언어였으며, 그 속에는 인류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수많은 기억과 풍부한 유머가 담겨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이디시어는 지혜롭고 겸손한 언어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언어, 즉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류 전체의 언어입니다. --- p.305,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 중에서

유대의 종교와 전통을 지킨 작가
싱어의 작품 세계를 말할 때 유대교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늘 무신론자를 자처했지만 정신적 뿌리가 유대교였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았다. 『탈무드』, 『카발라』, 그리고 이디시어 문학의 고전들이 그가 작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의 윤리관과 인생관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가 발표한 작품에서 유대교 전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수많은 단편소설, 동화들은 유대인들의 민담, 전설, 신비주의 등을 다채롭게 담고 있다. 하지만 주로 유대인들의 삶을 소재로 했으면서도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집요하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유대 민족의 틀을 벗어나 인류 전체에 호소하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을 몸소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그 시련에서 살아남은 난민들과 더불어 오랫동안 뉴욕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결코 일반적인 난민들의 삶과 그들의 고단한 일상을 다룬 것이 아님을 일찌감치 밝혀 둬야겠다. 내 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책도 특이한 주인공과 특이한 사건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나치의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운명의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혹시 그들이 난민들의 보편적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예외 또한 규칙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 p.5, 지은이의 말 중에서

저 : 아이작 B. 싱어 Isaac Bashevis Singer
190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 랍비 신학교에서 전통적인 유대식 교육을 받았지만 『아시케나지 형제 The Brothers Ashkenazi』(1936)의 작가로 잘 알려진 형 이스라엘 조슈아 싱어와 마찬가지로 랍비보다는 작가가 되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히브리어로,후에는 이디시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디시어로 독특한 상황의 인간 조건으로부터 보편적인 인간 조건의 진실성을 추출해 낸 문학적 성취로 197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첫 소설 『고레이의 악마 Der Sotn in Gorey』는 1935년 미국으로 이주하기 직전에 폴란드에서 여러 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다.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뉴욕으로 이주한 싱어는 먼저 이디시어 신문인 〈주이시 데일리 포워드 Jewish Daily Forward〉에서 일했으며, 자신이 쓴 기사에 워쇼프스키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1943년 미국 시민권을 얻어 뉴욕에 정착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동유럽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의 빈곤과 박해, 그리고 망국한(亡國恨)을 안은 채 쓸쓸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과 경건하고 장엄한 유태인의 종교의식을 인상깊게 묘사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그는 1950년과 1956년에 걸쳐 <레미드상>을 수상하였으며 1950년에는 미국예술문학연구소 후원으로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이어 1963년에는 <다프상>을 수상하였으며 1970년과 1974년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1978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대표작으로는 『적들, 어느 사랑이야기』,『고레이의 악마』,『루블린의 마술사』, 『쇼사』, 『노예』 등이 있다.

『적들, 어느 사랑이야기』는 1950년대 이후 미국 문학을 발전시켜 온 유대계 작가 아이작 싱어의 7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아이작 싱어는 유다이즘의 전통을 강하게 이어받은 한편,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로 인해 유대인 외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준다. 그의 작품은 성격이나 모티브에 대한 추구보다는 다양한 사회생활을 뛰어난 센스로 꾸준히 설명해 주는 것이 전부다. 이 책은 그의 그러한 세계를 잘 그려놓은 작품이다. 벨로 등 많은 유대인 작가들이 활약하는 미국 문단에서도 독특한 존재로 높이 평가를 받아왔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허먼 브로더는 철학이나 종교에 대해서, 그것은 언제나 성(性)에 기초를 두고 “먼저 육욕이 있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하느님에게도 원칙은 우선 욕망이었다”라고 중얼거린다. 이 인용문은 이 작품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낡은 주제를 새롭게 구현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쇼샤』는 독일 침공 직전 폴란드의 유대인들 중, 조금 특별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랍비 집안 출신으로 작가가 되려는 아론이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쇼샤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사랑의 계산적 방식이 아닌 이성적인 인간들이 가질 수 없는 원초적인 아름다움과 지혜를 알려준다. 『삶을 찾아가는 여행』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아이작 싱어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친형과 같이 작가가 되고자 애쓰며 고뇌와 절망에 빠졌던 수많은 나날들, 귾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려는 굳은 의지, 개인적인 문학을 향한 열정과 방황, 이루지 못한 사랑에서 오는 괴로움 그리고 유태주의를 고수하는 아버지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 등이 아주 솔직하면서도 간결하고 매력적인 문장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외에 악의 운명에서 빠져 나올 수없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인간쓰레기』,잔잔한 감동과 삶의 지혜를 전해주는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등이 한국어로 출간된 바 있다.

역 : 김진준
1964년에 태어났다. 연세대 사회학과 및 영문학과를 거쳐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스플릿 스커트』, 『브루스터 플레이스의 여인들』, 『도둑신부』, 『강한 딸 만들기』, 『서른 개의 슬픈 내 얼굴』, 『푸른 꽃』, 『유혹하는 글쓰기』, 『총, 균, 쇠』, 『페넬로피아드』, 『해상시계』, 『분노』,『시라노』,『한밤의 아이들』, 『롤리타』 등이 있다.

* 예스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