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1월의 책

자기록- 여자, 글로 말하다

풍양 조씨 / 김경미 옮김 / 나의시간 / 279쪽 / 14,800원 / 2014년.

 
- 가혹한 운명, 칼 대신 붓을 들다

다만 마음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허둥대며 하늘만 우러러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차마 이 어쩐 일인고” 할 따름이었다. … 스스로 헤아리건대 ‘차마 생각지 못할 때를 당하면 마땅히 한번 급히 결단하여 시각을 늦추지 않고 좇을 따름이라. 다른 처변과 생각이 어찌 있으리오.’ 스스로 굳 게 정하고 작은 칼을 신변에 감추는데 손이 떨리고 마음이 놀라 매양 하늘만 보며 ‘차마 이 어찌 된 세상인고’ 하였다. (본문 87면)

남편이 위독해지자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당황스럽기만 하고, 칼을 감추는데 손이 떨리고 놀라 ‘이 무슨 일인가, 이를 어쩌나’만 연발하며 허둥댄다. 단호하고도 조용하게 목숨을 끊은 것으로 기록되어온 열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글의 주인공은 풍양 조씨로 1792년 자신의 삶을 기록한 글을 남긴다. 한 해 전 서울 출신의 양반인 동갑내기 남편이 스무 살의 나이로 병을 앓다가 죽은 뒤이다. 풍양 조씨가 한글로 쓴 글은 200자 원고지 500장 분량 정도로 제목은 ‘?긔록’, 즉 자기록?‘나의 기록’ ‘나에 대해 쓰다’이다.
풍양 조씨는 무반 집안 출신으로 열다섯에 청풍 김씨 집안의 외아들 김기화에게 시집갔다가 나이 스물에 자식도 없이 홀로 된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가문 보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여성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남편을 따라 죽음으로써, 소위 열녀가 되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후 성리학적 질서가 강화되면서 열녀문이 늘어갔고, 《자기록》이 쓰여진 당시와 그 전후 18~19세기 조선사회에서는 남편이 죽은 뒤에 따라 죽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었다. 그러한 열녀의 집안에는 국가에서 표창을 내리고 세금 감면, 부역 면제 등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졌다. 양반여성뿐만 아니라 평민여성에게 당연히 따라야 하는 규범으로 자리하여, 당시 남편을 잃은 여성들, 특히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피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정해진 길처럼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일단 죽음을 결심했다. 풍양 조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풍양 조씨는 결국 죽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살아남기로 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부모 형제에게 더 이상 참혹한 일을 당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과 양자를 들여서라도 가문을 보존하고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소임을 다하겠다는 유교적 윤리에 따른 결심이었다. 하지만 철저한 기억의 재구를 통해 자신이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경위와 이유를 밝히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자기록》은 남성 문사들에 의해 쓰여진 허다한 기록(열녀전)과 달리, 유교적 틀에서 벗어나 여성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보기 드문 글쓰기라 할 수 있다.

-기록의 중심/ 저자의 시선 1. 어머니의 삶
풍양 조씨는 삶을 위협하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 칼 대신 붓을 들어 자기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거기에는 자신의 부당한 처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적극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남성 중심적 가치가 내면화되어 심종지도를 낙으로 여기고 남편 죽음 이후 자신의 삶을 ‘훔친 인생’이라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기억의 재구에도 선별과 경중이 있는바 저자의 의도와 목소리가 은연중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전후의 고통스럽고 두려웠던 기억들을 되짚고, 기구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기록하기 시작한다. 15세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동갑의 남편이 병을 얻어 요절하기까지의 과정은 물론 어린 시절의 기억, 특히 당시 여성으로서 감수해야 했던 후사( 대잇기)의 의무를 다하려 애쓰다 일찍이 세상을 뜬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을 불러내는 데 여러 면을 할애한다.
조선시대 여성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주된 것 중 하나는 가문의 대를 잇는 아들의 출산이었다. 풍양 조씨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으려 했지만 끝내 대를 잇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는 후사를 위해 맞이한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만큼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각별했고 늦게 얻은 두 아들을 모두 홍역과 전염병으로 잃었기에 시름이 깊었다. 쇠약한 상태에서 다시 낳은 자식이 딸이라는 사실에 기력을 잃고 수개월 병석에서 지내다 아버지에게 재취하여 대를 이으라는 유언을 남기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저자는 대를 잇기 위해 애쓰다 생을 마감하는 기구한 여성의 삶을 곡진하게 전한다.

시선 2. 남편의 안타까운 죽음
풍양 조씨는 어머니의 정을 충분히 받지 못하여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찍이 15세에 출가하게 된다. 다행히 온유한 남편과 시댁 어른들의 보살핌으로 한동안 행복하여 평생 평안할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혼 직후 가벼운 병으로 시작해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남편을 떠나보내기까지 고통과 회한의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특히 남편의 죽음을 앞두고 격앙되고 두려운 감정이 생생하게 묘사될 뿐 아니라 병상에서의 꼼꼼한 관찰과 기록은 병상일지로 불릴 정도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풍양 조씨는 기록 전반에 걸쳐 자신이 느낀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자신이 보고 들은 일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감정과 경험한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과 사실을 적시한다. 예컨대 어머니나 남편의 죽음에 대해 서술할 때도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왜 병을 앓게 되었으며 위독한 상태에 이르렀는지 하나하나 짚고 있는 것이다.
집안의 기대를 받고 과거시험을 보러 간 남편이 사람들이 몰려 밟혀 죽을 지경인 시험장을 보고 놀란 데다, 추운 날씨에 종일 찬 자리에 앉아 있어 치질이 생긴 것이 병의 시작이었다. 저자는 초기에 남편 본인이나 집안에서 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데다 시가 어른들(시조부, 시아버지)이 평소 더운 것보다는 추운 곳을 선호하고, 극한 속에서도 꼿꼿하게 주경야독하는 학문 자세를 권장하였기에, 효성 깊은 남편의 병환이 깊어갈 수밖에 없었음을 술회한다.

어느 선비인들 밤에 책을 읽지 않겠는가마는 차디찬 방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밤이 깊도록 글을 읽다가 두 어른〔할아버지와 아버지〕이 잠자리에 드신 뒤에 자신도 잠자리에 들게 되면 … 아주 추운 날이면 한기와 허기를 면코자 시어머니가 여러 차례 국수를 말아 먹이셨다. … 추위를 막을 겸 국수를 많이 들고 두 어른이 기다리실 것을 생각하고 바삐 나가서 찬 몸에 소화를 시키지 못하 고 찬 데서 잤으니 어찌 체하지 않겠는가. … 아아, 하늘이여, 이 우연한 빌미로 차마 사람이 단명할 마디가 되게 할 수 있으리오. (61면)

병이 악화되자 조씨의 친정에서는 양즙을 보내주고, 조씨 자신도 치마를 팔아 약을 지어 남편에게 먹인다. 그러나 이를 안 시할아버지나 시아버지는 탐탁치 않게 여기고 처가 것을 좋아한다고 남편에게 핀잔을 준다. 이처럼 풍양 조씨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듯하지만, 은연중에 시가 어른들의 대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내비치고 있다.

-풍부한 어휘, 기록의 치밀성
《자기록》은 순 한글로 쓰여 있지만 실제 사용하고 있는 어휘는 한자어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이러한 문체는 《자기록》만의 특징은 아니며 조선후기 양반여성들이 많이 읽고 베꼈던 국문장편소설의 문체도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문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교육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는바 풍양 조씨가 일정한 교육을 받았으며 문학에 관심이 많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더욱이 조씨의 집안이 간접적으로나마 《한중록》의 혜경궁 홍씨와 《의유당관북유람일기》의 저자인 의령 남씨와 관련이 있는바, 《자기록》이 보여주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생생하고 절절한 표현 등은 풍양 조씨의 작가적 능력을 보여주며 이러한 능력은 풍양 조씨 집안 여성의 어문생활과 일정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조심스레 짐작해볼 수 있다. (해제 기록의 힘 참조)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풍양 조씨는 자신의 비통하고 절절한 감정토로와 사실 중심의 서술을 적절히 배치해서 쓰며 감정 전달이나 사실 전달을 효과적으로 해내고 있다. 격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애통하고 슬프도다! 하늘이여! 하늘이여!”나 “오호 통재라” “오호 하늘이여”처럼 제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용적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심장이 천 길로 무너지고 만 갈래로 찢어지니” “가운家 오?망극함과 정리의 이 원통함을 아홉 하늘을 깨치고 하늘 궁궐의 문을 흔든들 능히 견디랴” “나의 남은 해를 생각하니 푸른 머리와 붉은 얼굴이 시들 날이 멀어 남은 세월이 일천 터럭을 묶은 것 같으니”와 같이 관용적으로 보이거나 일견 과장되어 보이는 표현은 작자가 현재 느끼는 통절한 슬픔이나 기나긴 남은 세월에 대한 극도의 고통을 절절히 표현해내는 데 효과가 있다. 이러한 격한 감정의 서술이 정확한 상황 서술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려는 태도는 어머니에 대해서나, 남편의 병세를 서술할 때 잘 드러난다. 특히 남편의 경우, 병상일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짜와 음식이나 약을 먹은 횟수, 의원, 약 이름 등까지 정확하게 적고 있는 것이다.

-기록의 힘, 그 의미
《자기록》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비절함과 애통함, 조금씩 잊혀져가는 망자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어 애도문학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죽은 이에 대한 이렇듯 애틋한 기억과 절실한 애도는 지금 읽어도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단순히 자신의 슬픔에 빠져 있기보다 남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냉정하리만큼 치밀히 관찰, 기록함으로써 살아남은 자로서의 예와 의무를 다하여 슬픔 이상의 깊은 울림을 전하기도 한다. 또한 풍양 조씨가 극도의 슬픔에서 일상으로 차츰 복귀하는 과정 또한 감동적이다. 상중에 친정아버지가 육즙을 보내오고, 시어머니는 과일을 먹이려 애쓰는가 하면 상중의 며느리의 머리와 눈썹을 자르고 정리해주고, 어둡지 않은 옅은 색의 옷과 이불을 권하는 등, 상례를 넘어선 배려를 보인다.
이는《자기록》이 남성들이 기록한 열녀전과 대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한 열녀전은 여성들의 목소리나 내면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려주지 않음은 물론 구체적인 정황과 일상은 사상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록》은 죽음에 맞닥뜨린 여성 혹은 죽음을 각오한 여성들이 느꼈을 슬픔과 고통, 막막함과 두려움과 더불어 극복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기록》은 죽어 열녀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자, 그 자신의 표현대로 목숨을 훔친 자의 증언이지만, 단지 박명한 신세 한탄에 그치지 않고 한 여성의 자전적 회고록으로서 일정한 격을 유지하고 있다. 아픈 기억을 하나하나 불러내고, 응시하며, 그 모두를 가감 없이 기록해냄으로써 자기가 살아 있는 이유를 냉정히 밝히고, 결국 스스로 삶의 긍정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서러움과 원망으로 점철된 인생이지만 기억의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치밀하고 자세하게 써내며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는 한 여성의 자기 기록은 긴 여운을 남긴다.

《자기록》은 비단으로 장정된 필사본으로, 단아한 한글로 정성스럽게 씌어져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 유일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간 고전연구에서 여성의 자기서사로 『한중록』과 함께 자주 거론되었지만 현대역이 되지 않아서 접하기 어려웠다. 고전문학자 김경미교수가 수년에 걸친 공력으로 자연스러운 현대어로 옮겨 일반 독자와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저자 : 풍양 조씨
서울 무반武班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나 1786년 시집갔다 1791년 20세에 남편을 잃었다. 당시의 관습대로 남편 뒤를 좇으려다 주위의 만류와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남기로 하고, 1792년 자신의 지난 삶과 남편의 발병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치밀하게 기록한《자기록》을 남겼다.

역자 : 김경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조선후기 소설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 선시대 여성생활에 관한 자료를 수집, 번역해왔으며 특히 여성의 글과 글쓰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 다. 현재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교수로 있다. 저서로 《소설의 매혹》《19세기 소설사의 새로 운 모색》《조선의 여성들》(공저), 역서로 《19세기 서울의 사랑《심양장계《17세기 여성생활사 자 료집 1》(공역) 등이 있다.

* 예스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