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책

격랑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노촌 이구영 선생의 팔십 년 이야기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심지연 / 조합공동체 소나무 / 1987 / 9,800원


'격랑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노촌 이구영 선생의 팔십년 이야기' - 부제는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노촌 이구영 선생'이라… 그리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이 이름 뒤에는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충청도의 유명한 양반의 후손이자 의병의 후예로 태어난 이구영. 그는 철저한 유학 교육과 반일 의식을 이어받은 유생의 마지막 세대였다. 열여섯에 결혼을 한 후 서울로 유학 온 이구영은 자연스레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오히려 그 속에서 유학에서 추구하는 대동(大同)세상에 이르는 현실적인 통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사회주의 실천가로서 활동하던 그는 해방이 되자 새 조국 건설에 온갖 정열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의 황금 시대는 너무나 짧았다.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 박헌영 등 당파를 초월하여 건국 구상을 함께 나눌 만큼 열린 그였지만 빨치산 사건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그는 북한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북한이 그에게 내린 명령은 '남파 간첩'. "그런 사람이 어떻게 간첩을 해!"라는 소리를 지금도 자주 들을 만큼 어울리지 않는 명령이었지만, 그는 당의 명령에 순종한다. 하지만 그의 간첩 생활은 참으로 짧았다. 남파 두 달만에 붙잡힌 것. 이후 그를 기다린 것은 22년간의 옥살이였다.

전향 공작과 고문으로 점철된 참으로 견디기 힘든 옥살이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호서(湖西) 의병들의 활약상을 번역 정리하는 등 선비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 태도는 폭압적인 정권에 의해 구금된 양심수들에게 감화를 주어 이른바 감옥 제자들이 생기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이 책을 쓴 심지연 교수와 대담을 한 신영복 교수이다.

이 책은 이렇게 '남과 북을 가르지 않고' 역사의 큰 물줄기를 건너려 노력한 노촌 이구영 선생의 파란 만장한 80년 일대기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남과 북에 따라,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 따라 선생의 삶은 다르게 평가할 수밖에 없겠지만, 과연 역사는 그리고 우리 동시대인들은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선생님의 생애는 글자 그대로 파란만장한 것으로, 우리 민족의 모든 모순이 철저하게 체화된 삶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 집안의 장손으로 개화의 물결을 맞으면서 겪은 봉건적인 모순과 일제의 침략에 맞서 고귀하고 장렬한 항일 투쟁을 전개했던 의병의 후손으로 뼈저리게 느꼈던 민족적인 모순 그리고 해방 후 질풍노도처럼 몰아닥친 계급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저자소개
심지연 - 1948년 대전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사 기자였고 1982년부터 경남대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민주당연구 1, 2>, <조선신민당연구>, <인민당연구>, <허헌연구>, <김두봉연구>, <미소공동위원회연구> 등이 있다.

추천글
이 책에서 술회하시는 노촌 선생님의 이야기는 역사를 과거의 화석 같은 존재로부터 깨워서 피가 통하고 숨결이 이는 살아 있는 실체로 복원하고 생환하게 한다. 이러한 복원과 생환이 진실로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우는 자세일 것이다. 역사를 생환하고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그 시절을 정직하게 맞서서 걸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 시절이 채워질 때 비로소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노촌 선생님이 이 책으로 여러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 참으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열어 저마다 역사를 생환하도록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신영복


미디어 리뷰

경향신문 : 친일파(親日派)이면서도 잘 먹고 잘 살아온 사람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뭐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나. 문득 사마천의 울분이 떠오른다. 사람의 살을 회쳐먹은 도척(盜척)은 천수를 누렸고 깨끗한 백이·숙제는 굶어죽었다. 이것이 천도(天道)라면, 천도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 이기환 기자 ( 2001-05-19 )

대한매일 : 그가 일생동안 만난 사람은 무수히 많다. 의병장 유인석의 종사관이 작은 아버지였기에 의병들에 대해서도 면식과 기록을 갖고 있다. 벽초 홍명희로부터 글을 배웠고, 사회주의에 빠져들면서 박헌영 등도 알았다. 광복 후에는 김구선생을 찾아가 말씀을 들었고, 시인인 육사 이원록, 지훈 조동탁 등과도 알고 지냈다. - 박재범 기자 ( 2001-05-16 )

중앙일보 : 일제시대 항일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거쳐 6.25 전쟁 도중에 월북했다 간첩으로 남하하여 체포된 후 22년간 장기수로 복역, 60세가 되던 1980년 병든 몸으로 풀려나 21년째 남한에서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체험하고 사는 노촌(老村) 이구영(81) 씨의 일대기다.
- 배영대 기자 ( 2001-05-19 )

한겨레 : 최근 나온 노촌의 일생을 그린 책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소나무)에도 제자들의 이런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쓴 심지연 경남대 교수는 신영복 교수와 함께 노촌선생의 `감방제자'다. “같은 감방에서 밤마다 선생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심지연씨가 언젠가 선생님의 삶을 책으로 쓰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셈”이라고 신교수는 말한다. - 김영희 기자 ( 2001-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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